[[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연일 정씨]][[분류:인천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888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정기인(鄭基仁) || || 본관 ||[[연일 정씨]][* 지주사공파, 포은공파.][* 홍순석, 「포은가문의 절의(節義)와 계승」, 『용인향토문화연구』 제13집, 용인향토문화연구회, 2013, 106쪽.[[https://memory.library.kr/files/original/ca453ca5c1bd1f505f698b1a37ffc456.pdf|#]]] || || 생몰 ||[[1888년]] [[10월 17일]] ~ ? || || [[출생지]] ||[[경기도]] [[인천광역시|인천도호부]][br](현 [[인천광역시]])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연일 정씨]] 포은공파로 [[정몽주|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다. == 생애 == 정기인은 1888년 10월 17일 경기도 인천도호부(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선대의 세거지인 경기도 [[용인시|용인군]] 모현면 쇠래(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 새래)로 이주하였다. 그는 1907년 11월경 이익삼(李益三)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1908년 1월 2일 신순용(申順用) 외 10여 명의 의병과 함께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능동 원촌에서 이장 이병기(李秉箕)로부터 광목 2필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15일 포곡면 둔전리에서도 광목 2필, 현금 2엔을 모집했으며, 같은 해 4~5월 수여면 방축동리와 금량시, 하동면 삼배울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했다. 1907년 11월에는 김재천(金在天)·이윤빈(李允賓) 등과 함께 용인군 포곡면 두계울리, 광주군 상동막리, 실촌면 상열미리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10년 1월 24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에 의해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정기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