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img_judge12.jpg]] 鄭京植 [[1937년]] [[3월 21일]]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법조인. 본관은 [[동래 정씨|동래]](東萊). == 생애 == 1937년 3월 21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동래 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정윤희(독립운동가)|정윤희]]·[[정태희(1923)|정태희]]도 이 마을 출신이다.][[http://m.kmtoday.co.kr/view.php?idx=36222|#]]에서 태어났다. 1957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61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검찰 공안계통에서 요직을 거쳤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출범 전후 [[국가보안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1992년 부산지검장으로 있을때에는 지역감정 조장과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른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좌천되었다가 그때의 공로 덕분인지 [[김영삼]] 정권 때인 1993년 9월에 대구고검장의 직위에 올랐다. 1994년 9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지명되었다. 지명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과거 헌법을 유린하는데 적극 참여하고 인권을 억압한 반개혁적 인사'라는 이유로 지명반대의견을 표시했다. 그래도 무사히 재판관으로 취임했으며, 6년의 재판관 임기를 마친 후 2000년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분류:고령군 출신 인물]][[분류:동래 정씨]][[분류:1937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경북고등학교 출신]][[분류:고려대학교 출신]][[분류:검사장]][[분류:문민정부/인사]][[분류: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