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신라 국왕)] ||<tablealign=center><:><#4A2D5B><table bordercolor=white>'''{{{#FFD700 시호}}}'''||<-2><(><white> '''정강왕(定康王)''' || ||<:><#4A2D5B>'''{{{#FFD700 성씨}}}'''||<-2><(><white>김(金) || ||<:><#4A2D5B>'''{{{#FFD700 휘}}}'''||<-2><(><white> 황(晃) || ||<:><#4A2D5B>'''{{{#FFD700 부왕}}}'''||<-2><(><white> [[경문왕]] || ||<:><#4A2D5B>'''{{{#FFD700 모후}}}'''||<-2><(><white> [[문의왕후]] || ||<:><#4A2D5B>'''{{{#FFD700 생몰년도}}}'''||<white><:> 음력||<white>?[* 형인 헌강왕이 861~864년생으로 추정되고 동생인 진성여왕이 865~869년생으로 추정되므로 정강왕은 863~867년생 정도로 추측이 가능하다.] ~ [[887년]] 7월 5일 || ||<:><#4A2D5B>'''{{{#FFD700 재위기간}}}'''||<white><:> 음력||<white>[[886년]] 7월 6일 ~ [[887년]] 7월 5일 (365일) || [목차] == 개요 == [[신라]]의 제50대 [[국왕]]. [[경문왕]]의 차남으로 [[헌강왕]]의 남동생이자 [[진성여왕]]의 둘째 오빠, [[효공왕]]의 숙부다. == 치세 == 형인 헌강왕이 아들을 [[서자]] 김요(훗날 [[효공왕]])만 남기고 죽었는데 서자를 [[왕위]]에 올릴 수는 없어 동생 정강왕이 왕위에 올랐다. 887년 1월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마련해 정강왕 스스로도 행차하고 강의를 들었다. 887년 1월 [[한주]](漢州)의 [[이찬]] 김요(金蕘)[* 나중에 효공왕이 되는 김요와는 다른 사람으로 [[한자]]가 다르다. 이 당시 효공왕은 2살 남짓한 나이로 반란은커녕 말도 제대로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가 [[반란]]을 일으켜 정강왕은 군대를 [[파병]]해 김요를 죽였다. 한주는 지금의 [[경기도]] 지방으로 수도 [[서라벌]]에서는 먼 북방이지만 진성여왕 시대에 일제히 반란이 일어나고 중앙 정부가 통제를 못 해 [[후삼국시대]]가 사실상 시작되었음을 감안하면 정강왕 시기만 해도 이때까지는 수도 서라벌에서 지방의 반란을 통제할 여력이 있는 상태였다고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즉위한지 1년도 안 되어 887년 5월에 병이 들어 [[시중]] [[준흥]]에게 여동생 김만이 왕위를 잇게 하라고 부탁하고[* 병이 위급하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불행히 사자(嗣子)가 없으나 나의 누이 김만(曼)은 천자가 명예하고(재능이 명석하고) 골상이 장부와 같으니 경들은 옛날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고사를 의방하여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887년 7월 5일에 [[승하]]하였다. [[재위]] 기간이 딱 1년 365일이며 2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정강왕릉]]은 [[삼국사기]]에서는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53에 있는 능을 정강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다. 경주시 [[시내버스]]가 많이 다니고 [[남산(경주)]]을 [[등산]]할 때도 기점으로 많이 가는 통일전 바로 옆 100m 거리에 있어서 찾아가려고 하면 가기는 쉬운데 가는 길에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거쳐야 한다. 300m 거리에 형이자 선왕인 [[헌강왕릉]]도 있다. 양식이나 크기는 거의 똑같지만 정강왕릉이 비교적 초라한 편이다. == [[삼국사기]] 기록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722&cid=49625&categoryId=49798|《삼국사기》 신라본기 정강왕]]''' 一年秋七月 정강왕이 즉위하다 一年秋八月 준흥을 [[시중]]으로 삼다 一年 나라 서쪽이 가물어 흉년이 들다 二年春一月 [[황룡사]]에 백좌고를 설치하다 二年 이찬 김요가 반역을 꾀하다 목베이다 三年夏五月 정강왕이 [[진성여왕|만]]으로 왕위를 잇도록 [[유언]]을 하다 三年秋七月五日 정강왕이 죽다 [[분류:신라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