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제8대 국회의원]][[분류: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분류:완도군 출신 인물]][[분류:언론인]][[분류:1922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교육인 출신 정치인]][[분류:니혼대학 출신]] * [[정치인/목록]] [[파일:external/rokps.or.kr/979.jpg|width=150]] 鄭幹鎔 1922년 5월 9일 ~ 2003년 8월 30일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1922년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에서 태어났다. 완도약산보통학교, [[일본]] [[교토]] 헤이안중학교, [[도쿄]] 니혼대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였고, [[8.15 광복]] 후 교육자로 광주서중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사]], 완도중학교 교사, [[완도수산고등학교]] [[교감]] 등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전라남도지구에서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69년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추진할 때, 처음에는 [[이만섭]] 등과 개헌에 반대하다가 나중에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10월 [[윤재명]]의 뒤를 이어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장흥군 출신의 [[길전식]]과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전라남도 완도군-[[강진군]]-[[영암군]]-[[장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민주공화당 길전식 후보와 [[신민당(1963년)|신민당]] [[황호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에 같은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역시 길전식에 밀려 탈락하였다. 1980년 말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1년 한국국민당 농어촌분과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김종필]]이 정계복귀하자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