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34년 출생]][[분류:2006년 사망]][[분류:북한의 남성 아나운서]][[분류:안변군 출신 인물]][[분류:강원도(북한) 출신 인물]] [[파일:Screenshot_2016-09-17-16-34-58-1.png|width=500]] [[1934년]] [[8월 28일]] ~ [[2006년]] [[9월 7일]] (72세) [목차] [clearfix] == 개요 == 90년대 북한을 대표했던 [[아나운서]](방송원), 북한의 이고르 키릴로프[* 소련의 대표 뉴스 프로그램 [[브레먀]]를 1968년부터 1991년까지 진행한 전설적인 소련의 아나운서, 현재도 매년 [[승리의 날]] 열병식 진행을 맡고 있으며 2014년에는 소치 올림픽 개, 폐회식 진행도 맡았다.]. 1934년 8월 28일 [[강원도(북한)|강원도]] [[안변군]] 안도면 오계리[* [[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함경남도]] [[안변군]] 안도면 오계리]에서 가난한 농민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1950년 원산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에 평양사범대학을 통신으로 졸업하였다. [[6.25 전쟁]]시기인 1951년 4월부터 함흥철도관리국 철길복구대에서 전시철도수송임무를 맡았고 1954년 3월부터 함흥철도관리국 지도원, 1955년 3월 철도국 지도원으로 일하다가, 1956년 5월 1일부터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방송원으로 활동하였는데 1963년에 [[조선중앙TV]]가 개국하자마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고전적 명작~~이라 읽고 개소리 모음집이라 부른다.~~과 조선로동당, 북한 정부의 중요 문건과 성명, 호소문, 정치보도, 북한의 정치적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 방송원으로써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보도와 [[2000 남북정상회담]] 보도도 담당했다. 1981년에 인민방송원 칭호를 받았으며 1995년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791073_19530.html|2000년 남북정상회담 보도 영상(2000년 6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 내용 중에서, 이 방송 내용에는 리춘히 방송원의 보도도 나온다.)]] 2006년 9월 8일에야 국내 언론에서 [[http://m.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7712|김정일이 전형규의 영전에 헌화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사망이 확인되었다.]] == 울지 않아서 처벌? ==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에서 윤아영 씨의 증언에 의하면 전형규 방송원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보도 당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기사가 저게 전부여서 상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물론 그 다음에도 방송활동을 멀쩡히 한것을 보면 그리 큰 처벌은 아닌듯하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33078_19434.html|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보도 영상(1994년 7월 9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 내용 중에서, 자세히 보면 눈물을 안흘린다.)]] 하지만 반대로 울면서 방송한 [[리춘히]]는 승승장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