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전주시)] [목차] == [[삼국시대]]-[[후삼국시대]] == 전주의 옛 이름인 '''온고을'''이란 단어는 먼저 마한시대 [[호남]]지방의 규모가 큰 읍인 마한의 '원산성(圓山城)'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온'은 일백(一白)을 뜻하는 순 우리말로 언어의 의미 확대가 일어나면서 '완전하다, 완벽하다'는 뜻이 된다. 원(圓) 역시 온의 음차였으며 후에 [[백제]]는 원산성을 '완산(完山)'이라고 불렀다. 완산이란 지명은 현재 전주시 하위 행정구역인 [[완산구]]와, 옛 전주군에서 시가지를 제외하고 군으로 분리된 [[완주군]]의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온고을이란 말 자체가 현대에 들어서 복원해본 옛 이름이라는 것이지 삼국시대에도 온고을이라고 불렸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온~어쩌구 이런 식의 발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는 있다.] 백제 멸망 후 [[웅진도독부]]가 지배하다 [[나당전쟁]] 과정에서 [[신라]] 땅이 되었고 [[9주 5소경]] 중 전주(또는 완산주)의 주치(州治)가 이곳에 두어진다. 현대의 전북도청 소재지 기능은 이미 신라 때 완성된 것. [[통일신라]] 756년(경덕왕 15)에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완(完)을 의역해 현재의 이름인 '전주(全州)'라고 고치게 된다. 이후 신라가 서서히 [[국가 막장 테크]]를 타자 900년([[효공왕]] 4)에 신라의 장수였던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면서 36년간 전주를 [[수도(행정구역)|수도]]로 삼았다. 이때 옛 신라의 완산주 관청이 있던 현재의 시내 지역을 벗어나 새로 전주성을 쌓았는데, 이 전주성은 동고산(승암산, 치명자산)을 왕궁으로 삼아 북서쪽으로 뻗어나간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그 규모는 현재의 오목대 길 건너편으로 해서 전주고 부근까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시기 한옥마을, 풍남문 등이 있는 현재의 시내 지역은 [[전주천]]이 흐르는 습지대였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고려왕조가 철저히 파괴해서 그런지 후백제 도성의 흔적이 거의 발굴되지 않고 있다. == [[고려]] == * 983년: 전주목 설치 * 1005년: 전주에 절도사를 둠 * 1018년: 안남도호부 재설치 * 1022년: 전주목 설치 * 1182년: 관노비와 군인이 합세해서 폭동을 일으킴 * 1355년: 원의 사신을 잡아 가둔 죄로 부곡으로 강등 * 1366년: 전주목으로 환원 * 1388년: 전주부성 축성 [[고려]]의 [[태조(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는 도시가 완전히 작살이 났다. 이후 중심도시 자리에서 벗어난 건 아니고 안남도호부도 설치되어 있었지만 1010년 고려에 거란이 침입해서 [[현종(고려)|현종]]이 나주까지 피난할 때 일부러 전주를 피해 갔다는 것을 보면 고려 초기 전주가 얼마나 안습이었는지 짐작할 만 하다.[* 이 때 전주를 피해 가자고 주장한 신하의 논리는 '전주는 태조께서 싫어하셨던 곳이니 주상께서는 행차하지 마소서'였다. [[훈요 10조]]가 위작되었다는 설과 별개로 왕건은 전북 지역(후백제 중심지역)을 싫어했다는 증거이다.] 파괴 이후 시가지는 다시 천변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1022년에는 12목의 일원이 되었다. [[공민왕]]때 [[원나라]] 사신을 가둔 일로 부곡으로 강등됐다 다시 '완산부'가 되었다. == [[조선]] == [include(틀:조선의 계국백)] * 1392년: 완산유수부 설치 * 1403년: 전주부로 개칭 * 1895년: 23부제 실시로 전주부 전주군으로 개편 * 1896년: 13도제 실시로 새로 설치된 전라북도의 도청을 전주에 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 곧 [[전주 이씨|이씨]] [[왕조]]의 [[본관]]이므로[* 태조 이성계는 고려 장수시절에도 스스로 자신은 고려인이자 전주사람이라고 자처했다. 물론 이는 이성계의 태생적 고향인 [[함길도]]가 당시엔 반쯤 오랑캐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완산부'로 승격시켰다가 1403년(태종 3) 다시 '전주부'로 개칭했는데, 이는 관찰사와 동급인 종2품 부윤이 통치하도록 되어 있는[* 엄밀히 말하면, 전주는 전라감영 소재지라 전라도관찰사가 전주부윤도 겸임했다.] 최상급 기초행정구역으로, 조선시대에 새로 설치된 것이자 전통적으로 수도로 여겨졌던 동네가 아닌 것으로는 최초이다.[* 고려시대로부터 이어져온 것까지 세면 한성, 평양, 경주부 세 개가 더 있어 전체 순서로는 네 번째가 된다.] 이 때 굳어진 '전주'라는 이름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태종시기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고려시기에 관할하던 속현과 향, 소, 부곡들이 전주에 모조리 통합됐는데, 이 때문에 조선시대 내내 대규모의 [[월경지|비입지]]를 관할하고 있었다. 1906년 행정구역 정리가 있기 전까지 전주가 비입지로써 관할하고 있던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옛 양량소: 현재 논산시 양촌면 일부 * 옛 옥야현: 현재 익산시 동 지역 대부분과 오산면 일부 * 옛 이성현[* 利城縣,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본래 발음은 리성현이나 두음법칙에 의해서 이성현이 된 거다.] 및 관하의 몇몇 향, 소: 현재 김제시 공덕면, 청하면 일대 다음은 비입지가 아니었던 옛 속현들이다. * 옛 이성현[* 伊城縣,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위의 이성현과는 다르게 두음법칙과 상관 없이 본래 발음이 이성현이다.]: 현재의 완주군 이서면 및 전주시 동산동, 조촌동, 효자4동의 이서면과의 접경지 부분 * 옛 우주현: 현재의 완주군 삼례읍, 봉동읍, 익산시 왕궁면의 각 일부분. 이 중 왕궁면 부분인 우북면 지역은 조선시대 익산군과 고산군의 경계에 끼어들어가 두입지[* [[땅거스러미|견아상입지]]라고도 하는, 타 군현과의 경계에서 비정상적으로 깊게 돌출된 부분.]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입지와 두입지였던 우북면은 1906년에 모두 정리되어 타 군으로 넘겨지면서 현재의 전주시와 봉동-소양을 경계로 하는 완주군 남부 지역 정도로 관할구역이 줄어들었다. == [[일제강점기]] == [[파일:attachment/전주시/역사/jenju1914.jpg|width=500]] 1914년 현 전주시 일대의 행정구역 상황. * 1914년 : 전주군과 고산군을 통합하여 '''전주군'''으로 개편 * 하위 면 : 전주면, 이동면, 이서면, 우림면, 난전면, 구이면, 상관면, 소양면, 용진면, 초포면, 조촌면, 삼례면, 봉동면, 고산면, 삼기면, 비봉면, 운선면, 화산면, 동상면, 운동하면 * 1930년 : 이동면 9개 리(노송리, 인후리, 중산리, 화산리 등)를 전주면에 편입 * 1931년 : 전주면을 '''전주읍'''으로 승격 * 1935년 :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어 분리되고, 전주군의 잔여지역을 '''[[완주군]]'''으로 개칭. 우림면·난전면을 우전면으로, 삼기면을 고산면·화산면에, 운선면·운동하면을 화산면·운주면에 합면. 우림면 청도리를 [[김제시|김제군]] 금산면에 편입[* 위의 지도에서, 금산면 시가지(원평) 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곳.] * 1940년 : 완주군 이동면(홍산리는 우전면으로 이관), 조촌면 일부를 전주부에 편입 == [[대한민국]] == [[파일:attachment/전주시/역사/jonju1945.jpg|width=500]] 1945년 8.15 광복 당시 전주부와 완주군의 행정구역 상황. * 1949년 : 전주부를 '''전주시'''로 개칭 [[파일:attachment/전주시/역사/jonju1957.jpg|width=500]] 1957년 전주시 확장 당시 행정구역 상황. * 1957년 : 완주군 초포면(하리는 삼례면에, 상운리는 용진면으로 이관), 우전면(중인리, 용복리, 석구리, 원당리는 구이면으로 이관) 및 조촌면·용진면 일부를 전주시에 편입[* 이 시기에 편입된 리들은 특이하게 외곽 지역이면서도 법정리들을 묶어 XX동n가 방식으로 되어있다. 원래 리마다 이름이 따로 있었으나 여러 리들을 한 이름으로 통일한 다음 숫자를 붙였다.][* 위에 말한 것도 그렇고, 시기 상으로 미루어 보아 이는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게리맨더링]]으로 보인다. 실제로 같은 시기에 [[대구광역시|대구시]], [[광주광역시|광주시]]에서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1280020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1-28&officeId=00020&pageNo=3&printNo=20406&publishType=00020|이런 일이 있었다.]] 다만 위에서 말한 대구와 광주의 사례의 경우 이때 편입된 지역 중 일부가 나중에 인근 군으로 환원되다.] * 1983년 : 완주군 상관면 대성리·색장리, (1973년에 일부가 편입되었던) 용진면 산정리를 전주시에 편입 [[파일:attachment/전주시/역사/jonju1987.jpg|width=500]] 1987년 완주군 조촌읍 편입 당시 행정구역 상황. * 1987년 : 완주군 조촌읍을 전주시에 편입 * 1988년 : 전주시에 완산출장소와 덕진출장소가 설치됨 * 1989년 :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금상리와 구이면[* 해당 지역들은 1957년 대부분 전주시에 편입된 우전면의 잔여 지역이다.] 중인리, 용복리[* 위의 지도에서 보이듯 이서면 이성리와 살짝 이어져 있었는데, 여기가 전주시로 넘어가면서 이서면은 완주군의 다른 지역과 완전히 분리된 [[월경지]]가 됐다.], 석구리, 원당리를 전주시에 편입, 완산출장소와 덕진출장소가 각각 완산구, 덕진구로 승격 * 1990년 : 완주군 이서면 상림리, 중리를 전주시에 편입 * 1994년 : [[김제시|김제군]] 백구면 강흥리, 도덕리, 도도리, 남정리를 전주시에 편입 * 1995년 : 완산구에 효자출장소 설치 * 1998년 : 효자출장소 폐지[[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281504|#]] [각주] [[분류:전주시]][[분류:향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