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울진군 출신 인물]][[분류:1910년 출생]][[분류:194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전원강(田元江) || || 일본식 성명 ||松田範秀 || || 이명 ||전범수(田範秀) || || 생몰 ||[[1910년]] [[11월 13일]] ~ [[1943년]] [[9월 8일]] || || [[출생지]] ||[[강원도]] [[울진군]] 상군면 용당동[br](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용제마을)[* 독립유공자 [[주유만]]도 이 마을 출신이며, [[주영석]]은 호월리 고원동 출신이다.]|| || 사망지 ||대구형무소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전원강은 1910년 11월 13일 강원도 울진군 상군면 용당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용제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9년 10월 1일 [[남원수]], [[남복이]], [[노하순]], [[주영석]], [[남정성]], [[전만수]]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모으고 1939년 10월 28일 남복이의 집에서 회합해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했다. 창유계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계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일제의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반드시 일제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을 예상하고 이를 이용해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전원강은 창유계를 조직한 후 다섯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조직의 강화와 반일선전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1943년 3월 일제에 발각되어 조직이 와해되었고, 그는 경찰에 체포된 뒤 대구재판소에서 예심을 받던 중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대구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전원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