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정선 전씨]][[분류:용천군 출신 인물]][[분류:1888년 출생]][[분류:1925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 || 성명 ||전덕명(全德明) || || 호 ||죽파(竹坡) || || [[본관]] ||[[정선 전씨]] || || 생몰 ||[[1888년]] [[1월 25일]] ~ [[1925년]] [[2월 25일]] || || [[출생지]]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용주리 || || 사망지 ||[[만주]] 집안현 고마령 || || 위패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 || ||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전덕명은 1888년 1월 25일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용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의병장 [[전덕원]]의 사촌동생으로, 1919년 독립단과의 연락 및 폭탄 밀수입에 연루되어 용천경찰서로부터 잇달아 체포되어 고문당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단에 가입했다. 1921년 6월에 남만통일후원회(南滿統一後援會)를 조직하고 각 단체와의 타협을 추진 중, 토병(土兵)에게 체포되어 관전현에 구금되기도 했다. 1923년, 전덕명은 백광운(白狂雲)·[[최석순]]·최지풍(崔志豊)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제2중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그러나 1925년 3월 16일 집안현 고마령에서 열린 참의부의 국내 진입을 위한 작전회의에 참가하던 중 밀정 이죽파(李竹坡)의 밀고를 받은 일제 경찰의 기습을 받고 맞서 싸웠으나 끝내 중대장 최석순을 비롯하여 전창희(田昌禧)·최항신(崔恒信)·안정길(安貞吉)·김용무(金用武)·김학송(金鶴松) 등 29명과 함께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전덕명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