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김제시 출신 인물]][[분류:1893년 출생]][[분류:1931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전기환.jpg|width=300px]] || || 성명 ||전기환(全崎煥) || || 생몰 ||[[1893년]] ~ [[1931년]] [[8월 16일]] || ||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시|김제군]] 김제면 신풍리 || || 사망지 ||[[전라북도]] [[김제시|김제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전기환은 1893년생이며 전라북도 김제군 김제면 신풍리 출신이다. 그는 1927년 무렵 김제노동조합 회장을 맡았고, 그해 4월 15일 메이데이 기념일을 맞아 <세계무산계급운동과 메이데이> 등 강연활동과 성산공원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이후 시내로 내려와 또 다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었다가 4월 23일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후 1927년 7월 16일 [[신간회]] 김제지회 회의에서 상무간사(常務幹事)로 선출되었으며, 9월에는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의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으로 선임되어 노동자의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1930년 7월 김제합동노동조합의 회장으로서 평양이발직공조합 창립대회에 보낸 축문의 문구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곽홍문]]과 함께 7월 14일 김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전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뒤 출옥했지만 1931년 8월 16일에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전기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