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wjsrPfus.jpg]]|| || 출생 || [[1936년]] [[9월 28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현 [[공주시]]) || || 사망 || [[2019년]] [[12월 20일]] || || 직업 || 영화배우, 연극배우, [[성우]] || || 활동기간 || [[1955년]] ~ [[1972년]] || || 학력 || [[충청남도]] [[공주교육대학교|공주여자사범학교]] 졸업 || || 가족관계 || 배우자 [[조경철]][* 모두 재혼이다] [br]자녀 1남 1녀 || || 종교 || [[개신교]]([[오순절교회|순복음교회]])[* 배우자 [[조경철]] 박사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였다. [[https://news.v.daum.net/v/20100308200804984|출처.]]]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여배우. 당시 명문대인 공주여자사범학교를 나온 재원이었다.[* 비슷하게 사범대 출신이었던 [[방성자]]도 있었지만, 이쪽은 비운의 인생을 보냈다.][* 동국대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청강생]]으로 다니며 당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였던 [[양주동]] 박사가 그녀를 상당히 아꼈다는 후문.] == 활동 == 최초의 TV탤런트 출신 영화배우로 원래 1956년 [[HLKZ-TV]] 1기 TV 탤런트로 데뷔했다가 [[1958년]] 영화 어디로 갈까로 데뷔하여 이듬해 가는 봄 오는 봄으로 큰 흥행몰이를 하였지만 그 후로는 딱히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 주지 않았다. [[1960년]]에는 질투, [[1963년]]에는 단종애사 등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당시 정점을 찍은 여배우들이랑 비교했을 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68년]]에 [[미워도 다시한번]]에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하여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흥행배우로 인식되기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혼]]한 뒤였는데, 조경철 박사가 미워도 다시 한번에 출연한 그녀에 반했으며 결국 [[결혼]]까지 이어져 백년해로하게 된다. 맡은 배역의 상당수가 첩이나 애인에게 남자를 뺏기는 부인 역이 많았다. 심지어 20대에는 맨발의 청춘이나 초우에서 엄앵란, 문희에게 신성일을 빼앗기고, 미워도 다시 한번 이후로 정점을 이루면서 [[화녀]], [[충녀]]에서도 그러한 역을 맡았다. 그녀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는 했어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상당수가 흥행 1위를 기록했다는 점[* 무려 [[1968년]]에서 [[1972년]]까지!]에서 현대의 [[오달수]]와 닮았다고 할 것이다.[* 그녀만큼 5년 연속으로, 몇 회에 걸쳐 흥행 1위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는 없다. ] 물론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 이후에 그녀의 단독 주연으로 흥행시킨 영화도 없지는 않았다. [[1969년]]에 흥행몰이를 한 잊혀진 여인이 그 대표작이다. === 영화 === * 가는 봄 오는 봄 * 단종애사 * 맨발의 청춘 * [[미워도 다시한번]] * [[미워도 다시한번(속)]] * [[미워도 다시한번(3편)]] * [[벽속의 여자]] * 어디로 갈까 * 잊혀진 여인 * 질투 * 초우 * [[충녀]] * [[화녀]] [[분류:1936년 출생]][[분류:1955년 데뷔]][[분류:2019년 데뷔]][[분류:공주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여배우/ㅈ]][[분류:대한민국의 오순절교회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