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3 在野史學}}} 주류 사학계와 주류 사학자에 대비되어 재야 사학계와 [[재야사학자|재야 사학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재야라는 낱말의 어감 때문에 언뜻 사학계의 은둔 고수를 일컫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처럼 [[정보]] 교류와 발표가 쉬운 [[인터넷]] 시대에 재야가 되는 데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이다. == 특징 == 재야 사학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류는 이른바 향토사학으로서 주류 사학으로 다루기에 지나치게 미시성을 띠거나 주류 사학으로써 다루기에는 중요도가 떨어지기에 주류 사학계의 [[관심]]을 벗어난 것이다. 이런 향토사학자는 자기가 사는 지방의 토착 [[역사]]나 사회사나 경제사나 민속학에 속하는 [[전설]]과 민담과 야담을 위시한 [[소위]] '로컬 히스토리(Local History)'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지역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이용해 이런 재야 사학자들의 깨알 같은 족적을 음미할 수 있다. 이분들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의 전설과 민담과 씨족별·가문별 역사 정리도 중요하다. 이런 미시사와 향토사의 연구는 주류 사학의 연구에도 필요한 작업이다[* '왜 필요한지' 덧붙이면, 전근대 시대의 역사서들은 철저히 왕과 귀족층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 보통사람의 처지나 시선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이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극히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백성 아무개가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는 사회에서 상당한 물의를 빚거나 크게 칭송받은 일이 아니면 나오지 않고 [[삼국사기]]는 그보다 더하다. 향토사. 즉 지방사의 연구는, 이렇듯 중앙 위주로 서술되어 온 역사의 균형을 맞추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제대로 된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는 주류 사학계와 서로 존중하며 협력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고 주류 학계가 미시사에 기초한 연구에 돌입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향토사학처럼 매우 세세한 범위를 다루는 것 말고도 주류 사학계와 학벌이나 사관 등의 차이로 말미암아 인정받지 못한 여러 비주류 사학을 재야 사학이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쪽도 제대로 된 학문이고 주류 사학과의 교류를 이용해 정식 사학으로 인정받을 때가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존재의 가치 자체는 인정받는다.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를 저술한 [[이이화]] 선생, 친일파 연구가인 [[임종국(1929)|임종국]] 선생, 또는 우리 주변의 시군구 문화원 같은 곳에서 ~~개량한복 입고 믹스커피 타먹는 영감님들~~ 오늘도 조용히 우리 고장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재야사학자의 제대로 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 경향 === 재야 사학의 특성상 여러 가지 경향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다음들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찾아볼 수 있다. * 탈정치사적 경향 - 제도권 사학의 정치사, 국가사, 민족사 위주 경향에서 탈피하여 사회경제사, 문화사 등 정치사 이외의 분야를 다룬다. * 탈거시사적 경향 - 제도권 사학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는 향토사, 문중사, 교사(校史) 등 미시적인 분야를 다룬다. * 탈지배층적, 민중적 경향 - 아무래도 제도권 사학 연구에서 중시되는 기록된 사료들이 기록 당시의 지배층이나 기득권층, 식자층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 많은 만큼 그들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피지배층이나 평범한 민중, 당대의 지배질서 하에서 소외, 핍박받는 자들 등 아웃사이더의 관점에서 사실을 뒤집어 보거나, 지배층이 남긴 사료, 문헌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후술할 환단고기 기반 유사역사학에서는 이러한 경향들 중 어느 한 가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 재야 사학의 탈을 쓴 [[유사역사학]] == 어느 새인가 [[환빠]]와 같은 '''[[사이비]]'''들이 재야 사학을 '''사칭'''한다. 이 사이비들이 스스로 '재야사학자'라고 칭하는 만행을 벌이는 탓에 '재야 사학'이라는 단어마저도 ''사이비 사학''으로 [[왜곡]]되는 일이 일어났다. 환빠들은 [[정치]]와 야합한 [[어용]] [[학자]]들이고 [[파시즘]]에 토대한 환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자들이 인터넷 같은 매체를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퍼뜨리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것. 지방에서 향토사를 진짜로 연구하는 재야 사학자분들에겐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이처럼 [[나름]]대로 인지도(악명)가 있는, 재야 사학자를 참칭하는 사이비들 대부분이 환빠라는 사실 때문에 재야 사학 자체 이미지는 극단으로 갈린다. 환빠들은, 식민 사학에 넘어가지 않은 진정한 학자라고 근거 없이 주장하면서 추종하지만 [[정신줄]]이 제대로 박힌 역사학도라면 환빠와 한데 묶어서 경멸하는 때가 잦다. 하지만 재야 사학 사이에서도 다양한 사관이 공존하고 재야 사학자라고 해서 모두 [[환단고기]]를 무비판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재야 [[민족주의]] 사학자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사학자인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에서도 환단고기가 언급되는 부분이 있지만, 저자 이이화는 환단고기가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신빙성 있는 사료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 후의 인터뷰에서도 환단고기를 '''책값을 주기에도 아까운 책'''이라고 대차게 깠을 정도였다. 사실 이이화 본인이 어렸을때 한학을 전공했기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과 [[규장각]]에서 번역을 맡았던지라 사료해석 능력에 있어서 환빠와 비교도 하기 민망할 정도이고, 재야사학자이기는 한다지만 애초에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계기가 [[천관우]] 등 여러 역사학자들과 만나서부터였고, 이후로도 [[서중석]]. [[박원순]][* 지금이야 서울시장으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역사학을 전공해서 논문을 내거나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등 시민단체 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등 이름있는 역사학자들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들어서 소장을 맡았을 정도로 유명 역사학자와 교류도 했던 인물이었다. 주류 사학계에서 관심하지 않는 역사의 각 요소에 천착하여 학문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재야 사학이 유독 [[한국]]에서 멸칭으로 변질된 원인도 환빠가 사학계에 끼친 악영향인 것이다. 이 사이비들은 '''재야 사학'''이라 함부로 자칭하고 자신들과의 대척점으로서 '''강단 사학'''을 든다. 그런데 일단 강단 사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호하다. 그 사이비들은 음모론 마냥 자신들의 학설이 '''특정 조직'''에 의해 부정되고 수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 조직으로서 강단, 즉 사학계를 든다. 그런데 당초 그 사이비들이 자신들의 대척점이라는 그 "강단 사학계"가 딱히 하나의 역사관으로 통일되어 "체계 있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당연하지만 매번 각각 학론에 의해 토론하는 게 사학계고 그것이 역사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공식으로 학위를 받고 제대로 연구 중인 전공자들, 즉 '''제대로 된 그 분야의 전문가'''를 "강단"이라는 희한한 단어로 지칭하는 것 자체가 해괴한 일이다. 재야 수학, 재야 과학, 강단 수학, 강단 과학 같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듯이 역사학이라는 학문에 내재한 개방성을 '''아무나 무엇을 말해도 그게 학설이다'''라는 '''비전문성'''으로 곡해했을 뿐 '''엄연히 역사도 전문성에 기초한 학문이고 당연히 전문가가 존재한다.''' 자신들의 학설이 전문성이 없고 학문상 성립되지 않아 인정되지 않는 것을 본인들이 부당하게 배척당한다는 피해망상급의 음모론으로 풀어놓았을 뿐이다. 보통 이 "재야사학"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역사학 전공자가 아닌때가 흔하다.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강단 사학과 재야사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지 이 부분에서도 명확히 보인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론이나 학계에서는 2008년 말부터 이런 사이비 사학을 재야 사학이 아닌 '[[유사역사학]]'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유사역사학은 서구에서 나치 옹호론자들 등에게 사용해 오던 용어로서 용어 자체는 유사 과학에서 유래된 듯하다. 한국에서 이 용어를 제안한 사람은 이글루스의 역사 블로거인 '[[초록불]]'이고 나치 옹호론과는 무관하게 [[유사과학]]에서 따온 용어였다. 인터넷 상에서 유사 역사학이란 용어가 급속히 퍼졌지만 하도 재야 사학이란 말이 입에 붙어서 이 용어도 아직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16년에는 [[식민사학]]을 규탄한답시고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라는 집단을 결성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32117025&code=960100|#]] == 여담 == * 요즘은 [[중국]]에서도 이것에 관심을 보인다. * 이 문서는 본 위키의 모체인 [[엔하위키]](현 [[리그베다 위키]])의 최초 작성문서였다. '''즉, [[나무위키]]에 있는 [PageCount]개의 문서 중 최고(最古)의 문서라는 것.''' 다만 당시 리그베다측의 서버 사정으로 인해 로그를 지웠던 적이 있어 당시의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진 않아 나무위키의 문서 역사에서 이를 확인할 순 없다. 참고로 나무위키에서 최초로 수정된 문서는 ([[나무위키:대문|FrontPage]] 제외하고)[[음차]], 최초로 작성된 문서는 [[나무위키]]다. == 관련 문서 == * [[역사 관련 정보]] * [[인터넷 관련 정보]] * [[환빠]] * [[유사역사학]] * [[재야사학자]] * [[환단고기]] [각주] [[분류:사학]][[분류:유사역사학]][[분류:로그 누락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