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章懷太子 李賢 655년 ~ 684년 [목차] == 소개 == [[당나라]]의 태자이자, 황족. [[당고종]]과 [[측천무후]]의 아들. 시호는 장회태자는 사후에 [[당예종]]이 추존한 시호이다. 이름은 이현(李賢). 측천무후에게는 두 번째 아들이자 의종의 동복동생이다. == 생애 == 655년에 태어나서 노왕에 봉해졌다가 657년 2월 12일에 주왕이 되었으며, 660년에는 패왕이 되었다가 671년에 옹왕이 되었고 이름을 이덕(李德)으로 고쳤다. 673년에는 다시 이현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동복형 이홍이 죽자 [[675년]] [[6월 5일]]에 황태자가 되었다. 장회태자는 학문을 즐겨 [[후한서|후한서주]]를 지었다.[* 이 장회태자 주석은 [[2014년]]에 민음사에서 후한서 본기를 번역하면서 모두 빠짐 없이 번역됐다. 번역자는 민음사 대표 장은수. 그리고 2018년에 명문당 출판사가 지를 제외한 후한서 본기와 열전을 진기환 씨가 번역한 것을 출판했다.[[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91188020447&orderClick=JAH|해당 홈페이지]] 지가 번역되지 않은 점은 아쉬우나 원문 역주본에 [[장회태자]] 이현의 주석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다.] [[측천무후]]가 총애하는 명송엄이, "태자는 승계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영왕(이현, [[당중종]])의 모습과 흡사하고 이윤([[당예종]])의 상이 제일 귀하다"고 했다. 측천무후는 북문학사에게 소양정범, 효자전을 편찬해 장회태자에게 이를 하사하면서 자주 편지를 써서 나무라자 장회태자는 스스로 편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명승엄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측천무후]]가 이를 의심했으며, 장회태자는 색을 좋아해 노비인 조도생과 친해 금, 비단을 많이 내려줬다. 위승경이 편지를 올려 간했지만 듣지 않았으며, 측천무후가 사람을 시켜 그 일을 고발하게 했다. 결국 장회태자는 폐위되어 서인이 되어 장안으로 옮겨져 유폐되었으며, [[681년]] [[11월 8일]]에 파주(巴州)로 옮겨졌다가 684년 3월에 측천무후가 보낸 구신적으로 인해 별실에 유폐되고 자살했다. == 여담 == 파주에 유배되었을 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황대과사(黃臺瓜辭, 황대의 오이)라는 노래를 지은 적이 있는데, 이 노래 때문에 [[측천무후]]가 분노하여 장회태자가 죽고 말았다. 가사가 이렇다. >황대 밑에 오이를 심었더니(種瓜黃台下) >오이가 익어 열매가 축 늘어졌네(瓜熟子離離) >한 개 따갈 때는 오이도 좋았지만(一摘使瓜好) >두 개 따갈 때는 오이도 드물어지고(再摘令瓜稀) >세 개 따갈 때는 아직 희망이 있었는데(三摘尚自可) >네 개 따가고 나니 넝쿨만 남았네(摘绝抱蔓歸) 장회태자의 묘벽에 그린 벽화는 당대 복식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쓰인다. [[파일:external/i.jjang0u.com/144830612412017.jpg|width=400]] == 창작물 ==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 안신우가 연기했다. 생모 측천무후와 대립하며 독단으로 보장왕을 암살하려고 하고 어머니에게 "저는 절대 홍 형님처럼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각주] [[분류:당나라의 황태자]][[분류:655년 출생]][[분류:68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