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인동 장씨]][[분류:단양군 출신 인물]][[분류:1836년 출생]][[분류:1901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 장충식(張忠植) || || 자 ||<(> 사이(事以) || || 호 ||<(> 열은(洌隱) || || [[본관]] ||<(> [[인동 장씨]] || || 생몰 ||<(> [[1836년]] [[11월 9일]] ~ [[1901년]] [[8월 16일]] || || [[출생지]]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기촌리 || || 사망지 ||<(> [[충청북도]] [[단양군]]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장충식은 1836년 11월 9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기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선공감 감역관, 사헌부 감찰 등의 직책을 제수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향리에 은거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잇달아 발발하자, 그는 이에 격노해 의병 봉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돌렸다. 또한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이 단양으로 진군하자 노구를 이끌고 종군했으며, 의병대가 영남으로 이동할 때 함께했다. 1896년 2월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대가 강원도 영월로 진군하자, 그는 아들 [[장익환(1866)|장익환]]과 함께 가담하여 연장자로서 유생들을 맞이하는 사객(司客)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아들 장익환은 유인석 의진에서 중군장에 이명되었다. 그 후 8도에 격문을 발송하고 청풍, 평창, 안양, 원주, 풍기, 영월 등지에서 관군과 교전했지만 제천성 전투에서 패전한 후 유인석이 서간도로 이동하기로 결정했을 때 병에 걸려 따라가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했다. 그 후 1901년 8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장충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