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張震 == 생몰년도 미상 장군으로 [[조상#s-2|조상]] 일파가 사마씨 일족에게 제거당했는데, 이들과 친하게 지내던 [[제갈탄]]이 신변에 위협을 느껴 양주 일대에서 민심을 모으려 하자 이 낌새를 눈치채 [[사마소#s-1|사마소]]가 제거하려고 했으며, 257년에 [[제갈탄]]이 이에 대해 봉기하면서 오나라에 투항하자 [[문흠]], [[당자]], [[전단(삼국지)|전단]], [[전역(삼국지)|전역]] 등이 있는 오군 3만이 파견되었다. 오군에서는 [[주이(삼국지)|주이]]도 3만을 이끌고 갔지만 패했으며, 이에 [[손침]]이 대규모로 출동시켜 주이, [[여비]], [[정봉#s-2|정봉]] 등 5만을 인솔해 위나라를 공격했다. 주이가 여장에 주둔하자 장진은 임도와 함께 용감한 사람 6천을 모집해 주둔지 서쪽 6리에 부교를 만들고 밤에 건너 반달 모양의 보루를 쌓았지만 [[주태#s-2|주태]], [[석포]]의 공격으로 격파된다. === 창작물에서 === [[진삼국무쌍6]]에서는 제갈탄의 난에서 등장해 전편에서 수춘성의 포위를 풀기 위해 남동쪽에서 오군이 원군으로 나타나는데, 주이가 원군으로 두 번 나타난다. 처음에는 [[육항]]과 함께 나타나지만 두 번째는 혼자서 나타나고 두 번에 걸친 주이의 원군을 격파하면 손침과 함께 원군으로 등장한다. [[진삼국무쌍7]]에서는 제갈탄의 난에서 손만, 손침, 왕조와 함께 동쪽의 두 개의 성 중에서 동남쪽에 있는 성에 위치하고 있다. == [[후한]] 말의 교주자사 張津 == 생몰년도 미상 자는 자운(子雲). 남양 사람으로 [[주부(삼국지)|주부]]가 죽자 교주자사로 파견되었다가 자신의 부장인 구경(區景)에게 살해당했으며, 이 일로 인해 [[유표#s-1|유표]]가 [[뇌공#s-1|뇌공]]을 보내 장진을 대신하게 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장진이 죽은 것을 알고 [[사섭]]에게 황제의 봉인이 찍힌 조서를 내려 사섭을 수남중랑장으로 임명해 교지의 7개 군을 다스리게 했다. [[허정(삼국지)|허정]]이 교주에 있을 때 [[조조]]에게 보낸 탄원서에 따르면 이전에 낙양에 있을 때 왕실을 도울 뜻이 있었다고 언급된다. 강표전에서 [[손책]]이 [[우길]]을 죽일 때 "옛날 장진이 성인의 가르침을 버리고 한나라의 법률을 폐하며, 도가의 책을 읽고 제사를 지내면서 교화를 돕는다고 운운하다가 끝내 남이(南夷)에게 살해당했다"고 언급했다. 지림에서 손책이 우길을 죽인 것과 함께 [[손분#s-1|손분]]을 장사태수에 제수하면서 장진의 영릉, 계양으로 업으로 삼게 했다고 언급하는데, [[배송지]]가 이를 보고 287년에 왕범이 이주준추를 올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201년에 장진이 오히려 교주목이 되었으며, 강표전의 허망함은 지림에서 운운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손책이 장진보다 먼저 죽었다는 것이다.[* 다만 사섭이 이전부터 교지태수로 친족을 태수로 임명하는 족벌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손권에게 종속되기 시작한 것이 201년이라는 점에서 충돌된다는 점이 있다.]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인물 張進 == (? ~ 220)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반란자. 220년에 장액군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액태수 두통을 억류하고 장액태수를 자칭하면서 [[황화(삼국지)|황화]]와 함께 국연에게 호응했으며, 옹주와 양주의 여러 호족들은 강족과 호족 사람들을 체포해 장진 등을 따랐기에 금성군의 백성들은 장진에게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장취가 주천을 공격하고 장액의 북쪽으로 나아가 [[윤봉]]을 맞이하자 이 때 장진은 황화의 원조에 의지하고자 했으며, 황화가 장진을 도우려 했다가 서쪽에서 장공에게 기습당할 것을 우려했고 [[소칙]]에게 항복했다. 소칙이 국연을 죽이고 그 무리를 달아나게 한 후에 장액군을 포위해 공격하자 격파되어 장진은 참수되었고 그 무리들은 항복했다. === 창작물에서 ===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사마의전(중)의 2번째인 무위 반란 진압전에서 적으로 등장해 무위를 공격하며, 능력치는 무력 70, 지력 55, 통솔 55, 민첩 65, 행운 55, 성격은 보통이다. 적의 원군이 도착하자 공격을 지체할 수 없다면서도 학소에 대해 무명의 장수가 지키는 것이라 최적의 조건이라 여기고는 돌격을 지시한다. 학소가 침착한 태도를 보이자 무위를 함락하고 학소의 목을 내걸기로 하는데, 퇴각하면 적의 원군이 빨리 온 것에 대해 탄식하면서 사망한다. [[분류:동오의 인물]][[분류:한나라/인물]] [[분류:삼국시대(중국)의 반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