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jangjaegu1.jpg|width=300]] 출생: [[1947년]] [목차] == 경력 == * 1969~1981 미주한국일보 사장 * 1978~2013 한국일보 이사 * 1981~1986 한국일보 사장 * 1985~1986 한국일보 발행인 * 1993~1997 한국일보 명예회장 * 1997~1998 한국일보 회장 * 1998~2016 서울경제신문 회장 * 2002~2013 한국일보 대표이사 회장 == 개요 == 1968년에 한국일보에 입사한 그는 1969년에 초대 한국일보 LA지사장을 시작으로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81년에 한국일보 사장으로 승진하여 1986년까지 재직한 뒤 이사로 지내다 1993년, 큰형 [[장강재]] 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명예회장직에 추대됐다가 1997년에 작은동생 장재국 회장이 도박 사건으로 물러나 [[1998년]]에 회장직을 맡다가 그해 장재국이 한국일보 회장으로 돌아오자 자매지인 [[서울경제신문]] 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2002년부터 [[한국일보]] 회장을 겸임했다가 한국일보 사태의 주범으로 2013년에 경영권이 완전히 상실되었고, 서울경제 회장직도 2016년에 동생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에게 넘겼다. 선친 [[장기영(1916)|장기영]]과 많이 닮았다는 그는 한 때 기울어 가는 회사를 살리고자 나름의 참신하고 파격적인 전략과 추친력으로 잠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시대적인 변화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고집과 한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과거 선친이 한국일보를 창간하며 ''''누구도 신문을 이용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창간사를 남기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 했던 그가 오히려 편집국 폐쇄라는 시대를 역행하는 구태의 모습을 보여줬다. == 2013년 한국일보 사태 == [[한국일보#s-11|자세한 사건 항목 참고]] 그는 한국일보 옛 사옥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신축사옥에 대한 우선매수 청구권을 포기함으로써 회사에 190억원대 손해를 끼치는 등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에 총 456억원의 피해를 입힌 혐의등으로 고발 되었고 결국[[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5334495|2013년 8월 구속 기소 되었다.]] 1심선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배임액이 50억 이상 300억 이하로 낮아지면서 2년 8개월 형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6817046| 상고 끝에 2015년 10월이 돼서야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2년 8개월이 확정됐다.]] == 그 이후 == 2016년 1월에 출소 예정이던 그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2&aid=0000161386|2015년 12월 24일 모범수로 성탄 특사를 받아 가석방되었고]], 2016년에는 서울경제 회장직을 동생 장재민에게 넘겼다. [[분류:1947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