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서울대학교의 총장)] [[파일:장이욱.jpg]] * 張利郁 * [[1895년]] ~ [[1983년]]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교육자, 교육학자, 관료. == 상세 == 1895년 [[평안도]] 평양부 예안부 돌곶방 벽지도[* 碧只島.]동(현 [[평양직할시]] [[낙랑구역]] 벽지도리)에서 장동상(張東商)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유신소학교, 1912년 [[숭실중고등학교|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 진학해 일어와 영어를 배웠다. 1914년 귀국하여 유신소학교에서 일어를 가르치다 미국 유학을 모색하고 1916년 [[상하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안창호]]를 만나 [[흥사단]]에 입단했다. 1918년 [[더뷰크 대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 졸업하고, 1926년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6년 모교인 [[더뷰크 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8년 귀국하여 신성학교[* 信聖學校. 평안북도 선천군에 위치한 기독교 계열의 중등학교로 1905년 설립되었고 1942년 선천중학교로 개칭되었다. 1980년 경기도 안양의 [[신성고등학교|신성중고등학교]]로 재건되었다.]의 교장으로 부임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석방되었으나 교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945년 광복 직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경성사범학교 교장에 임명되었고 1946년 서울대학교 초대 사범대학장, 1948년 제3대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 고위층의 압력이 작용하여 결국 이듬해 사표를 제출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나, 외부의 정치적 압력으로 국립대학 총장이 사임을 강요당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1960년 [[제2공화국]]에서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사임하였다. 이후 [[흥사단]] 활동과 강연, 집필에 전념하였다. 1983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장녀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88세 [[분류:서울대학교 재직]][[분류:국공립대학 총장/장관급]][[분류:교육인 출신 정치인]][[분류:사회과학 교수]][[분류:1895년 출생]][[분류:1983년 사망]][[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장관급 대사]][[분류:평양직할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