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행정안전부장관)]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3478><bgcolor=#003764> '''{{{#FFFFFF 장석윤 관련 틀}}}'''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경찰청장)] [include(틀:제1공화국의 국무위원)]}}} || [[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3611461.jpg|width=150]] 張錫潤 1904년 4월 13일 ~ 2004년 1월 16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경찰공무원]], [[정치인]]이다. 1904년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유평리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지질학과 및 동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락을 지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정보조정국(COI) 및 전략첩보국(OSS)에 속하여서 추축국을 상대로 참전하였다. 이때 워싱턴 [[OSS]]에서 한국인 스파이 침투 작전이었던 [[냅코 프로젝트|냅코작전]]을 수행하는 한국인 모집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관료로 근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안상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6월부터 7월까지 [[행정안전부|내무부]](오늘날의 [[행정자치부]])의 치안국장(1950년대~1960년대의 [[공무원/계급|이사관]]급 경찰총수)을 역임하였다. 이후 1951년 11월부터 1952년 1월까지 내무부 차관을, 1952년 1월부터 같은 해 5월까지 내무부 [[장관]]을 재임한 뒤에는 국도신문사의 [[사장]]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무소속 안상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5년 [[자유당]]에 입당하였고, 1956년 자유당의 중앙위원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상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으나 [[공천]]에서 [[황호현]]에 밀려 탈락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국민당(1971년)|국민당]] 후보로 강원도 횡성군-[[평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우현(1923)|이우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경찰공무원]][[분류:횡성군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1904년 출생]][[분류:2004년 사망]][[분류:경찰 출신 정치인]][[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무소속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내무부 장관]][[분류:경기고등학교 출신]][[분류:이승만 정부/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