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선수단)]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d1c24><tablebgcolor=#ed1c24> '''{{{#fff 장병철 관련 틀}}}'''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V-리그 남자부 감독)] ---- [include(틀:프로배구 컵대회 남자부 MVP)] ---- [include(틀: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역대 감독)] ---- }}} || ---- ||<-3><table align=right><table width=500><table bordercolor=#ed1c24><table 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ED1C24 0%, #ED1C24)" '''{{{+1 {{{#ffffff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감독}}}}}}'''}}} || ||<-3><height=40><bgcolor=#003355> '''{{{#ffcc00 Suwon KEPCO Vixtorm}}}'''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병철.jp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ed1c24> '''{{{#ffffff 이름}}}''' || '''{{{+1 장병철}}}[br]張秉哲''' || ||<-2><|2><height=40> '''{{{#ffffff 출생}}}''' ||[[1976년]] [[10월 30일]] ([age(1976-10-30)]세) || ||경기도 [[인천광역시|인천시]][* 현재의 [[인천광역시]]] || ||<-2><height=40> '''{{{#ffffff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대한민국]] || ||<-2><height=40> '''{{{#ffffff 신체}}}''' ||[[키(신체)|키]] 194cm|[[체중]] 85kg || ||<-2><height=40> '''{{{#ffffff 직업}}}''' ||배구선수(라이트 / ^^은퇴^^)[br][[감독|배구감독]] || ||<-2><height=40> '''{{{#ffffff 학력}}}'''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2 (졸업)}}}[br][[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2 (졸업)}}}[br][[성균관대학교]] {{{-2 (학사)}}} || ||<-2><height=40> '''{{{#ffffff 프로입단}}}''' ||[[1999년]]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 배구단]] || ||<|3><width=15%><height=40> '''{{{#ffffff 소속}}}''' ||<width=15%><height=40><colbgcolor=#ed1c24> '''{{{#ffffff 선수}}}''' ||<width=70%>[[파일:Bluepangs_Logo.png|width=20]]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1999~2009) || || '''{{{#ffffff 감독}}}''' ||[[파일:external/oi66.tinypic.com/15572ia.png|width=30]]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9~ ) || || '''{{{#ffffff 코치}}}''' ||[[파일:external/oi66.tinypic.com/15572ia.png|width=30]]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5~2019) || [목차] [clearfix] == 소개 == [[대한민국]]의 前 국가대표 배구 선수이자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감독이다. 포지션은 라이트였다. == 선수 경력 == [[파일:attachment/장병철/Example.jpg|width=450]] 1976년생 동기동창인 [[최태웅]], [[석진욱]]과 함께 인하부중, 인하부고를 졸업한 장병철은 당시의 관행을 깨고[* 당시 인하부중-인하부고를 나왔다면 거의 반자동적으로 인하대로 진학했고 인하대 졸업 후에는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 배구단]]에 입단하고 배구를 그만 두면 대한항공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코스처럼 여겨졌다. 인하부중-인하부고-인하대-대한항공 배구단까지 모두 [[한진그룹]] 소유의 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V리그 드래프트가 정착된 지금은 옛날 얘기.] 인하대가 아닌 성균관대로 진학하였으며[* 결론적으로 76년생 인하부고 3인방 중 인하대로 간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장병철만 성균관대로 갔고 [[최태웅]]과 [[석진욱]]은 나란히 한양대에 진학했다.]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뛴 1994~1995 슈퍼리그에서 1학년이지만 당당히 주전 라이트 공격수로 출장해 [[신진식]] 다음가는 넘버 2 공격수의 위치로 맹활약하고 슈퍼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 때만 해도 [[김세진]] 이후 최고의 라이트 공격수 유망주였으며 약간 키가 작은 것만 빼면 국가대표 에이스급 선수로 손색이 없던 선수였다. 김세진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정통파 왼손잡이 공격수와는 거리가 먼 김세진과 달리 장병철은 운동능력과 스피드, 스파이크 테크닉를 겸비한 공격수인 데다 왼손잡이 특유의 스타일[* 야구의 투수도 마찬가지지만, 자연스러운 왼손잡이는 팔 스윙만으로 자동 역회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때린 볼이 요상하게 휘어서 디그나 블로킹 때 꽤나 까다롭다.] 때문에 블로킹하기 매우 까다로운 공격수였다. 1995~1996 슈퍼리그 4강을 이끈 이후 무릎 수술로 1년동안 쉬게 되고[* [[최태웅]], [[유광우]] 등 인하부중, 고, 인하대를 거친 선수들의 숙명과도 같은 부상이다. 그때만 해도 중, 고, 대학 심지어 실업팀 대한항공까지 막장 도원체육관을 홈경기장으로 썼고 도원의 열악한 시설 및 콘크리트 바닥으로 인해 [[무릎]]이 맛이 가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1999년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프로리그 전환과정에서 발생한 드래프트 합의 실패로 인해 일명 95학번 싹쓸이 사태가 발생하여(자세한 건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문서 참조) 계약금 3억 원을 받고 삼성화재로 입단하게 된다. 입단 당시에는 [[김세진]]이 버티고 있어서 김세진의 백업밖에 하지 못했지만, 김세진은 2000년대 이후 하향세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주전은 장병철이었다.[* [[몰빵배구]], [[신치용/비판]] 항목에도 일부 서술되어 있지만 신치용 감독은 장병철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고타점주의자인데다 김세진을 각별히 아꼈기 때문에 하향세인 김세진을 쓰느라 장병철을 찬밥취급하기도 했다. 김세진&장병철 조합은 그 자체로 시너지가 나는 조합이다보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한국 국가대표 배구의 암흑기인 2000년대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로 선발되어 이경수와 함께 좌우에서 공격을 이끌었고, 실업 전환기인 V투어 시즌, [[V-리그]] 초기인 05~06시즌까지는 장병철이 주전 라이트였다. 이 시기는 아는 사람만 알던 아쉐나 잠깐 알바뛰고 간 윌리엄 프리디가 주전 레프트였기 때문에 공격을 분담했으며, 2007년 레안드로 다 실바가 왔을 때는 레안드로가 라이트로 뛰면서, 당시 외국인 선수가 없었던 [[상무 배구단|상무]]와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한국전력]]과의 경기때 레안드로의 휴식일 차원에서 장병철이 주전으로 나와서 공격을 책임졌다. 이후 [[안젤코 추크|안젤코]]가 레프트 포지션에서 뛸 때는 주전 라이트, 중요한 상황 수비 강화를 할땐 안젤코를 라이트로 돌리고 손재홍과 [[석진욱]]이 주전 레프트가 되는 [[몰빵배구]]시스템을 썼기 때문에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플래툰 멤버 위치가 되었다. 프로 커리어 내내 풀타임 주전을 차지한 시즌은 한 시즌도 없는 셈이다. 선수 시절 큰 부상을 당해서 고교 시절이나 대학 신입생 때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고, 프로에서는 김세진과 외인 용병의 벽에 가로막혀 출장시간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그 댓가인지 꽤나 오래 선수 생활을 했다. 30대가 지난 2008~2009시즌 챔피언 결승전 4차전에서는 12득점을 올렸고, 그 중에서도 2세트에서는 좌우전후를 가리지 않고 맹타를 퍼부었고 무려 62.50%의 공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10득점을 올렸다. 2009년에는 [[KOVO컵|부산 IBK 국제배구대회]]에서 MVP에 뽑히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발목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게 된다. == 은퇴 이후 == 은퇴 후 실업팀 현대제철 배구단을 거쳐 부산시체육회에서 뛰고 있다가 [[2015년]] [[9월 3일]] 부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기존 김영래가 수원전산여고의 코치로 옮기자 빈 자리에 세터인 [[권준형]]의 부족한 세팅 능력보다 [[서재덕]]과 [[전광인]] 쌍포가 부상으로 인해 기용이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비슷한 처지인 [[주상용]]과 박성률의 기량 상승이 시급한 팀 상황상 영입을 한 듯하다. [[2019년]] [[4월 9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한 [[김철수(배구)|김철수]] 전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내부 승격되었다. == 감독 생활 == === 2019-20 시즌 === 시즌 초반부터 [[가빈 슈미트]]에게 [[몰빵배구]]를 시키며 욕을 들어먹고 있다. ~~팀의 레프트가 영 신통치 않은 것도 있지만...~~ 시즌 10경기 기준 2승 8패를 기록 중인데, 이 중 2승은 모두 현대캐피탈에게만 거둔 승리였다. 그 말인 즉슨 타 팀에게는 모두 패배하였다는 얘기. --이런 팀에게 계속 발목잡히는 현캐는 도대체...-- 그러다가 [[11월 26일]], KB를 상대로 3: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드디어 시즌 최초로 타 팀에게 승리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11월 29일 경기에서도 OK저축은행을 접전 끝에 3:2로 잡으면서 첫 연승을 이어감과 동시에 2라운드를 5할 승률로 마쳤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을 뿐 시즌 내내 부진한 모습만을 보이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경기 진행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고, 3월 23일에 연맹이 남녀부 모두 시즌 종료를 선언하면서 한전의 시즌 최종 성적은 6승 26패에 전체 [[꼴찌]]인 7위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 2020-21 시즌 === [[프로배구 컵대회/2020년|2020 제천 MG새마을금고컵]]에서 우승을 이끌면서 이제 정규 시즌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정작 시즌 개막 이후로는 1라운드 6전 전패를 하는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철우(배구)|박철우]]를 사 놓고 외국인 선수로 라이트인 [[카일 러셀]]을 뽑으면서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는데, 러셀을 레프트에 넣고 개고생을 시키면서 러셀 탓만 하고 있다. 러셀이 리시브도 받고 기량 미달 세터 때문에 블로킹을 달고 사는데도 꾸준히 득점을 내 주지만, 장병철은 여전히 유독 러셀한테만 뭐라 한다. 안 그래도 1라운드 전패라는 창피한 기록만 봐도 기가 찰 지경인데, 약점을 보강하겠답시고 [[김광국(배구선수)|김광국]]을 데려오면서 [[김인혁]], [[안우재]], [[정승현(배구선수)|정승현]]을 내주는 희대의 조공 트레이드로 한전 팬들의 멘탈을 무참히 박살냈다. 아무리 세터가 급해도 그렇지 악명높은 [[김광국(배구선수)|ㄱㄱㄱ]]를 데려오면서 김인혁에 안우재까지 퍼주는 짓은 감독이 어디 머리라도 부딪혔나 싶을 정도의 호구딜. 기사를 보면 중간에 현금이 낀 듯 한데, 아무리 돈이 꼈어도 그렇지 이건 미래를 내다버리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후 현대캐피탈과의 트레이드에서 [[신영석]]을 데려오며 상황이 급반전하게 되었다. 이후 11월 15일, 대한항공을 3:1로 꺾고 드디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사흘 후인 11월 18일, KB손해보험과의 4세트에서 연속 9실점 하는 가운데 4세트를 내줬으나, 5세트 극적인 역전승으로 3:2로 승리하며 2연승을 거뒀다. 이 승리로 팀은 '''356일'''만에 연승을 달리는 중이다. 11월 22일 삼성화재 상대로 1,2 세트를 내주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3,4,5세트를 내리 따내는 기적을 보이면서 3연승을 거뒀다. 11월 26일 OK금융그룹 상대로 3:0 승리를 하면서 4연승을 달렸다. 12월 2일 현대캐피탈과의 2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트레이드 보낸 김명관의 속공 범실로 3:1로 승리하며 팀 역사상 2번째 5연승을 기록했다. 3라운드 첫 경기인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1세트를 따내며 6연승을 노렸다. 하지만 2~3세트를 모두 내주면서 패색이 짙어졌고, 4세트를 땄으나 5세트에서 11:15로 패배하며 아쉽게 연승 행진이 끊겼다. 12월 11일 우리카드를 상대로 1~2세트를 맥없이 내주며 다시 연패행진에 들어가나 싶더니, 3~4세트를 내리 잡아내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5세트에서는 넉넉하게 승리하며 이번 시즌 전 구단 상대 승리를 달성했다! == 기타 == * [[최태웅]]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석진욱]]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감독과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친구다. 셋 다 [[인천광역시]] 출신이고 주안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란히 배구를 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갈 때만 서로 흩어졌고 대학 졸업 후에는 나란히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 배구단]] 유니폼을 입고 다시 뭉치게 됐다. 선수 은퇴 이후에는 다시 흩어졌는데 장병철이 2019-2020 시즌부터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감독을 맡게 되면서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 사이에 76년생 동기 감독 매치가 성사됐다. 여기에 [[석진욱]]까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감독을 맡으면서 76년생 동기 감독 매치는 삼각 시리즈로 확장됐다. 그리고 2019년 [[http://www.dailysportshankoo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300|부산에서 열린 친선전]]에서 만났다. * 성균관대 4학년 시절, 해외에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volleyballman&no=343593|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장병철은 "병역문제 등이 남아있는 만큼 해외진출은 시기상조"라며 "국내 실업팀에서 경험을 쌓은 후 국제무대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관련 문서 == * [[배구 관련 인물]]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감독]][[분류:1999년 데뷔]][[분류:인천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6년 출생]][[분류:병역특례자/배구]][[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