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2C1574><tablewidth=100%><tablebordercolor=#2C1574> {{{#e4cd4d,#b29b1a '''장도영 관련 틀'''}}} || ||<bgcolor=#FFF,#1f2023>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대한민국 역대 국방부장관)] [include(틀:군사혁명위원)] ---- [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include(틀:대한민국 역대 육군참모총장)] ---- [include(틀:제2작전사령관)] ---- [include(틀:대한민국 역대 육군참모차장)] ---- [include(틀:역대 국방대학교의 총장)]}}} || ||<-2><tablebordercolor=#2C1574><tablewidth=420><tablealign=right><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ff0000 50%, #ff0000 50%);" '''[[대한민국 국방부장관|{{{#ffffff 대한민국 제12대 국방부 장관}}}]]'''}}}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C1574, #2C1574 20%, #2C1574 80%, #2C1574)" '''[[국가재건최고회의|{{{#e4cd4d,#b29b1a 대한민국 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br]{{{#e4cd4d,#b29b1a {{{+1 장도영}}}[br]張都暎 | Chang Do-young}}}'''}}}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도영.jpg|width=100%]]}}} || ||<width=100><|2><colbgcolor=#2C1574><colcolor=#e4cd4d,#b29b1a> '''출생''' ||[[1923년]] [[1월 23일]]|| ||[[평안북도]] [[용천군]] (現 [[평안북도]] [[룡천군]])|| ||<|2> '''사망''' ||[[2012년]] [[8월 3일]] (향년 89세)[*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 ||[[미국]] [[플로리다|플로리다 주]] [[올랜도]]|| || '''본관''' ||[[인동 장씨]] 상장군계|| || '''호''' ||강룡(岡龍)|| ||<|6> '''재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14대 [[육군참모총장]]|| ||[[1961년]] [[2월 17일]] ~ [[1961년]] [[6월 5일]]|| ||<bgcolor=#f5f5f5,#2d2f34>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겸직]|| ||[[1961년]] [[5월 20일]] ~ [[1961년]] [[7월 2일]]|| ||<bgcolor=#f5f5f5,#2d2f34>제12대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장관|| ||[[1961년]] [[5월 20일]] ~ [[1961년]] [[6월 6일]]|| ||<-2><:><bgcolor=#fff,#1F2023><color=#373a3c,#ddd>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 width=100%><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colbgcolor=#2C1574><colcolor=#e4cd4d,#b29b1a> '''배우자''' ||백형숙 || || '''자녀''' ||아들 장효수, 장경수, 장진수, 장완수[br]딸 장윤화 || || '''친인척''' ||처종숙부 [[백인제]], [[백붕제]][br]6촌 처남 [[백낙환]] || || '''학력''' ||신의주고등보통학교 {{{-2 (졸업)}}} [br][[토요대학]] {{{-2 ([[철학]] / [[학사]])}}}[br]육군보병학교 {{{-2 (졸업)}}} [br][[미시간 대학교]] {{{-2 ([[정치학]] / [[석사]]·[[박사]])}}} || || '''종교''' ||[[개신교]] {{{-2 ([[감리회]])}}} || || '''경력''' ||'''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br]내각수반[br]제12대 [[국방부 장관]][br][[위스콘신 대학교]] 교수[br][[웨스턴]] [[미시간 대학교]] 교수 || ||<-2> {{{#e4cd4d,#b29b1a '''군사 경력'''}}} || || '''임관''' ||군사영어학교 {{{-2 (1기)}}}[br][[육군사관학교]] {{{-2 (8기)}}} || ||<#2C1574><|4> {{{#e4cd4d,#b29b1a '''복무'''}}} ||<#f5f5f5,#2d2f34>[[일본제국 육군]] || ||<(> [[1944년]]~[[1945년]] || ||<#f5f5f5,#2d2f34>[[대한민국 육군]] || ||<(> [[1946년]]~[[1961년]] [[8월 22일]] || || '''최종 계급''' ||중장 {{{-2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 [[육군참모총장]] || || '''주요 보직''' ||육군 [[제6보병사단|제6보병사단장]][br]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br] 육군 [[제2군사령부|제2군사령관]] || || '''참전''' ||[[6.25 전쟁]] ||}}}}}}}}}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 제국]]과 [[대한민국]]의 [[군인]]. == 생애 == === 초기 === 1923년 1월 23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토요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했다. [[일본군]] [[학병]]으로 [[장준하]]와 함께 [[중국]]에 주둔했던 쓰카다 부대에서 복무하였다. 장준하의 일본군 [[탈영]]과 [[독립운동]] 여정을 담은 [[수필]] '돌베개'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책에는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모 [[장군]]'이라고 칭하고 실명을 밝히지는 않는다. 당시 일본군 병사였던 모 장군은 일본인 고참병들이 남긴 음식을 혼자 먹기 위해 더러운 손을 밥그릇에 넣어 뒤돌아 혼자 먹는 추태를 보인다. [[조선인]] 탈주병이 생겨 부대 내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생활이 고달퍼지자 조선인들이 모여있는 내무반 안에서 조선인 동료들을 향해 칼을 뽑아들고는 "이제 또 누가 도망치겠느냐? 이제 도망가는 놈은 내가 찔러죽일테다!"라고 호통치는 등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반면에 장도영의 [[자서전]] '망향'에서는 같은 부대의 장준하가 탈영병 1호였다며 탈영 당시 성공하기를 기원했다고 나온다. === 군인의 길에 들어서다 === 1945년 [[8.15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인 신의주동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이 발생한 후 [[월남]]하여 [[미군정]]청 군사 고문으로 있던 [[이응준]]의 권유로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해 1946년 3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었는데 그 아래 북한반장 [[김종필]]과 문관 [[박정희]]가 있었으며 [[38선]]이 위험한 상태인 것을 알고 계속 경고는 했지만 위에서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6.25 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박정희의 결연한 인품과 불쌍해 보이는 어깨를 보고 상부에 건의하여 현역으로 복귀시켜 준다. 숙군 작업 중 걸려 총살형에 처해질뻔한 것을 구해준 것은 같은 [[만주군]] 라인인 [[백선엽]]이였고 박정희를 데리고 있다가 현역으로 복직시켜 준 것은 장도영이였다. 이 때를 포함하여 [[5.16 군사정변]]까지 장도영과 박정희는 총 5번 상하 관계로 함께 근무한다. === 6.25 전쟁: 6사단장 시절 === 1950년 10월 [[준장]]으로 진급하여 부상을 당한 [[김종오]] 장군의 뒤를 이어 [[제6보병사단|제6사단]]장을 맡았다. 제6사단은 전쟁 초기 [[춘천-홍천 전투]]부터 선전한 정예 부대였으나 1951년 4월에는 부대의 가장 [[흑역사]]인 [[사창리 전투]]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일격을 받아 참패를 당했다. 사창리 전투의 패배로 완전히 체면을 구긴 장도영은 [[절치부심]]하여 1951년 5월 중공군의 공세 당시 사창리 전투의 패배에서 특히 책임이 컸던 제2연대의 주 저항선 후퇴를 불허하고 [[북한강]] 남안 고지에서 사주 방어에 나서도록 한다. 이는 자칫하면 연대 전체를 포위 섬멸당할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과도 같은 용병술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제2연대의 방어 진지를 주 저항선으로 오인하고 전 [[병력]]을 쏟아부은 중공군 제63군의 실책이 겹치면서 [[한국군]]의 최대 대승으로 꼽히는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반전되었다. 이 시기는 군인으로서 그의 최전성기였으며, 6.25 전쟁 중 사단장으로서 최고의 전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3년 [[휴전]] 후 육군참모차장, 2군 사령관 등을 지냈다. === 5.16 당시의 행적 ===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출범 이후 [[장면]] [[국무총리]]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후임인 김종오 [[중장]]이 육군참모총장 임기 중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육군참모총장은 대장이 부임하게 된다. 마지막 중장 육군참모총장인 셈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앞두고 장면은 장도영에게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고 하였으나 장도영은 장면에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김종필의 증언에 의하면 박정희가 장도영을 포섭하고자 직접 [[혁명]] 계획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5.16 군사정변이 터지자 진압하는 것도 아니고 적극 가담하는 것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보여[* [[중앙일보]] 2015. 4. 6 김종필 소이부답 기사 '거사를 준비하고 있던 4월 10일에도 그는 박정희 소장을 통해 내가 작성한 혁명 계획서를 전달받았지만 끝내 반환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정변 세력의 편을 들어준 줄 알았더니 갑작스럽게 5·16 새벽이 되자 [[한강]] 다리를 건너던 혁명군에 발포를 명령하더니 갑작스럽게 오후에는 혁명 지지 쪽으로 돌아서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등.] 사실상 군사정변을 방조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https://www.whoim.kr/detail.php?number=4810&thread=38r01r07|당시 군사정변에 가담했던 장교의 평가]] 본인은 훗날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이에 대해 극구 부인했는데 특무대장 [[이철희(범죄자)|이철희]]가 계속 해서 박정희 쪽은 아니며 오히려 [[조선민족청년단|족청]] 세력에서 쿠데타 위협이 있다는 역정보를 보고해서 상황 판단을 잘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도영의 주장은 [[윤보선]] [[대통령]]이 "[[계엄령]]은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하며 아군끼리 피를 흘리지 말라!"라고 하여 쿠데타 세력이 주장한 계엄령을 합법적이 되도록 지원하고 무력 진압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이에 따랐다는 것이다. 아군끼리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만 외치다가 결국 사태 수습을 위해 쿠데타 세력의 [[얼굴마담]]으로 추대된다. 사실 [[주한미군]]과 [[이한림]] 제1야전군사령관은 쿠데타 진압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가 거부한 상황이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진압을 거부한 마당에 그들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할 게 없었으며 오히려 이한림 사령관 등을 다독이는 역할을 맡았다. [[서울]]로 밀고 들어온 [[대한민국 해병대]]는 [[대한민국 해군]] 소속이고 [[제5군단]] 포병대는 주한미군 소속이었으며 그들의 진퇴를 주장할 명령권도 없었다. 반대로 주변은 전부 쿠데타군이었지만 장도영의 지시에 따르는 병력은 [[헌병대]] 일부와 30사단 내 1개 중대 정도였다. 5.16 군사정변 직후 장도영은 박정희 세력에 의해 포섭되어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 수반, [[국방장관]]으로 추대되었다. 명목상으로는 박정희보다 높은 5.16 군사정변 주요 인물이었지만 민심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1961년 7월 2일 김종필 등 [[육군사관학교]] 8기생 주도로 정변 주체 세력들에 의해 전격 체포되면서 [[숙청]]되었다.[[http://news.joins.com/article/17520151|#]] 1962년 3월 10일 [[http://www.law.go.kr/법령/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00633,19610622)|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상 반혁명 행위죄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으나 1962년 5월 2일 형집행 면제로 풀려났고 바로 [[미국]]으로 떠난다. 1968년에 잠시 귀국하여 박정희와 만났다고 전해진다. [[http://ilyo.co.kr/?ac=print&entry_id=38601|#]] === 만년 === 도미 후 [[미시간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69년 [[위스콘신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가 1971년부터 1993년 정년을 맞을 때까지 [[웨스턴미시간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1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진과 직접 [[인터뷰]]를 했으며 2011년 [[서울신문]]과 인터뷰도 했었다.[[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601500006|#]] 은퇴한 후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517006018|#]] 2012년 8월 3일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향년 89세로 [[사망]]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052203185&code=100402|#]] == 대중매체에서 == * 1989년 [[MBC]] 드라마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에서 배우 [[김동현(1950)|김동현]]이 연기했다. 그냥저냥 미적미적하는 걸로 묘사되었으며 스스로 박정희의 [[꼭두각시]]라고 발언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 1993년 MBC 드라마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에서 배우 [[노주현]]이 연기했다. 비열한 인물로 역을 맡았으며 장도영이 전작보다 더 깎아내려진 제3공화국의 경우 장도영 본인이 직접 인터뷰한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는데 장도영이 인터뷰에서 한 해명을 [[나레이션]]이 직접 비판하는 장면까지 있다. * 1994년 영화 [[증발(영화)|증발]]에서 배우 [[남석훈]]이 연기했다. *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배우 [[이경영(1958)|이경영]]이 연기했다. [각주] [[분류:1923년 출생]][[분류:2012년 사망]][[분류:용천군 출신 인물]][[분류:실향민]][[분류:6.25 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 국무총리]][[분류:국방부 장관]][[분류:군사혁명위원]][[분류: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분류:상장군계 인동 장씨]][[분류:토요대학 출신]][[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전신 학교]][[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제2작전사령관]][[분류:미시간 대학교 출신]][[분류:국방부 장관]][[분류:장면 내각/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