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조선]] [[분류:한국의 옛 수도]] ||명칭 ||장당경(藏唐京) || || 이칭,별칭 ||당장경(唐藏京),장장평(庄庄坪) || ||시대 ||고조선 || ||유형||도읍지|| ||위치||현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문화(文化)면(?)|| 장당경(藏唐京)은 [[고조선]]의 도읍지로 알려진 곳이다. 당장경(唐藏京)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고조선조에서는 고기(古記)를 인용해 [[단군]]이 요임금 즉위 50년된 해인 경인년에 [[평양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조선이라 일컬었다. 그후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서 1500년을 다스리다가, [[무왕(주)]](周武王)이 즉위하고 [[기자(중국)|기자]](箕子)를 조선후에 봉하자 도읍을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기자조선이 실재하였다고 가정할경우 기존에는 기자가 오면서 단군조선이 끝나는것으로 이해됐지만, 이기사를 보면 기자가 온후에도 단군이 따로 도읍을 옮겨간것이 되므로 기자와 단군이 양립했을수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장당경이라고 하였으나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문헌에는 당장경으로 기록되어있다. 삼국유사의 기록대로라면 고조선의 도읍지는 평양성→아사달→장당경 순으로 옮겨졌으므로 장당경은 3번째 도읍지가 된다. 그위치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서는 고려사의 장장평은 단군이 도읍했던 당장경의 잘못전해진 지명이라 하여 문화현[* 현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으며 중국의 대릉하유역이나 유주[* 하북성북부및 요동성서부일대를 가르키던 고대중국의 지명]일대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고고학계의 통설을 보면 고조선은 초기에는 요서에 위치해있었다가(십이대영자 문화) 점차적으로 요동반도와 한반도 일대로 세를 확대하며 영역을 넖히고 중심지도 요하로 옮긴것으로 보이는데(정기와자 문화) 이 설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면 장당경도 선양 근교에 위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유적이 발굴되기에는 여러가지 난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