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목포소방서장 역임 소방공무원, rd1=장경숙(소방공무원))] ||<-2><table align=right><bgcolor=white> [[파일:장경숙.jpg|width=300px]] || || 성명 ||장경숙(張京淑) || || 생몰 ||[[1903년]] [[5월 13일]] ~ [[1994년]] [[12월 31일]] || || [[출생지]] ||[[평안남도]] [[대동군]] || || 사망지 ||[[인천광역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 생애 == 장경숙은 1903년 5월 13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김영준(金永俊)과 결혼한 뒤 남편과 함께 상하이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했다. 그 후 1943년 5월 대한광복군 제2지대 1분대에 배속되어 간호, 정보 수집, 초모 활동 등을 수행했다. [[8.15 광복]] 후 남편과 함께 서울 청파동 독립군 거처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인천으로 이사가서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94년 12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경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고, 1995년에 그녀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 여담 == 장경숙과 남편 김영준은 상하이에서 최문식(崔文植)과 친분을 맺었고, 최문식이 광복 후 서울 인근 사글셋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와 부인 손효숙 씨가 청파동 독립군 거처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왔다. 그 후 두 집안은 서로 가족처럼 지냈는데, 특히 장경숙과 김영준의 딸 김봉춘 씨와 손효숙 씨는 여섯 살의 나이 차이에도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손효숙 씨가 경기도 성남시의 유공자 주택을 분양받아 두 딸과 함께 청파동을 떠났고 김봉춘 씨도 결혼해 독립 생활을 하면서 수십년간 소식이 끊겼는데, 2017년 두 사람이 서울 [[보훈병원]]에 요양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재회할 수 있었다. 보훈병원 측은 사정을 전해들은 뒤 두 할머니를 한 방에 배정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0814045200061|#]]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대동군 출신 인물]][[분류:1903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