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aaaaaa><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ianluca pagliuca.jp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이름 ''' }}} || {{{+1 ''' 잔루카 팔리우카 '''}}}[br]''' Gianluca Pagliuca ''' || ||<-2><height=40> {{{#000000,#e5e5e5 ''' 출생 ''' }}} ||[[1966년]] [[12월 18일]] ([age(1966-12-18)]세) / [br] {{{-1 [[이탈리아]] [[볼로냐]] }}} || ||<-2><height=40> {{{#000000,#e5e5e5 ''' 국적 ''' }}}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28]] || ||<-2><height=40> {{{#000000,#e5e5e5 ''' 신체 ''' }}} ||[[키(신체)|키]] 190cm || ||<-2><height=40>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 ||<width=15%><height=40> {{{#000000,#e5e5e5 ''' 소속 ''' }}} ||<width=15%><height=40><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선수 ''' }}} ||<width=70%>볼로냐 FC 1909 (1984~1986 / ^^유스^^ ) [br] '''[[UC 삼프도리아]]''' (1987~1994) [br]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4~1999) [br] '''[[볼로냐 FC 1909]]''' (1999~2006) [br] [[아스콜리 칼초|아스콜리 칼초 1898 FC]] (2006~2007) || ||<-2><height=40> {{{#000000,#e5e5e5 ''' 국가대표 ''' }}} ||39경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 1990~1998)^^ || [목차] == 개요 ==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리즈시절 [[UC 삼프도리아|삼프도리아]]와 1990년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였다. == 생애 == [[볼로냐 FC 1909|볼로냐 FC]] 유스 출신이었으나, [[부야딘 보슈코브]] 감독의 눈에 띄어 1987년 삼프도리아로 이적.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하였다. 특히 팔리우카는 90/91 시즌 리그 31라운드에 1위를 달리던 삼프도리아를 승점 4점 차이로 맹추격하던 리그 2위팀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를 상대로 치룬 경기에서 [[로타어 마테우스]]의 PK를 비롯해 14개의 슈팅을 선방해내는 인생경기를 벌임으로써 팀의 2:0 승리를 이끌어 팀의 해당 시즌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팔리우카는 [[UC 삼프도리아|삼프도리아]]의 창단 첫 [[스쿠데토]]와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하며 1994년까지 삼프도리아에서 활약했다. 1994-95 시즌을 앞두고, 팔리우카는 이적료 700만$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로 이적, 97-98 [[UEFA컵]] 우승과 2년 연속 UEFA컵 결승 진출에 기여한다. 그러나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안젤로 페루치]]가 인테르에 입단하자 고향팀 볼로냐 FC로 이적해 세리에 B로 강등되는 2005-2006시즌까지 뛰며 노익장을 보여줬고, 2006-07시즌 [[아스콜리 칼초|아스콜리 칼초 1898 FC]]에서 '''역대 최고령 출장기록'''을 갱신한 뒤 현역에서 은퇴한다. == 국가대표 경력 == 삼프도리아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인정받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처음 아주리 군단에 합류한다. 하지만 [[발테르 쳉가]]의 그늘에 가려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1991년 6월 소련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다. 이 후 치열한 주전 경합 끝에 [[1994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주전 골키퍼 자리를 굳힌다. 그리고 대망의 [[1994 미국 월드컵]]. 팔리우카는 여기서 극과 극을 오가는 플레이로 아주리 군단을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다.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레이 휴튼]]의 그림같은 왼발 로빙슛의 희생양이 되더니, 노르웨이와의 2차전에서는 아크까지 뛰쳐나와 상대의 역습을 막아내려다가 핸드볼 파울을 범해 '''퇴장'''당한다.[* 참고로 이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골키퍼 퇴장이라고 한다(...) --기록의 사나이--]. 하지만 [[아리고 사키]] 대표팀 감독은 출전정지가 풀린 스페인과의 8강전부터 팔리우카를 재신임했고, 팔리우카는 사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120분을 무실점으로 넘긴 뒤, [[승부차기]]에서도 브라질 1번 키커인 [[산투스]]의 킥을 막아내며 자신의 진가를 가감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프랑코 바레시]]와 [[로베르토 바조]]의 킥이 홈런(...)이 되면서 2-3으로 패배, 다 잡은 우승컵을 놓친다. 이 후 [[안젤로 페루치]]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설상가상(?)으로 [[잔루이지 부폰|부폰]]과 [[프란체스코 톨도|톨도]]가 대두하면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 [[와일드 카드]]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아주리 군단의 부름을 받지 못하다가 [[1998 프랑스 월드컵]] 직전에 페루치가 전치 1개월 부상을 입으며 국가대표에 재합류, 4년 전과 달리 안정적으로 수비진을 지휘하며 팀을 8강까지 이끈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또 승부차기로 패했고[* 여기서도 프랑스의 4번 키커 [[비셴테 리사라수]]의 킥을 막아내며 제 몫은 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와 작별한다. == 플레이 스타일 == 190cm의 장신에 운동능력까지 겸비한 이상적인 골키퍼였다. 아울러 [[페널티킥]] 방어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세리에 A]] 순혈(?) 골키퍼 중에는 최고 기록인 24세이브를 기록했다. [[분류:1966년 출생]][[분류:이탈리아의 축구선수]][[분류:골키퍼]][[분류:볼로냐 FC/은퇴, 이적]][[분류:UC 삼프도리아/은퇴, 이적]][[분류: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분류:아스콜리 칼초/은퇴, 이적]][[분류: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분류: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분류:이탈리아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