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任忠贇 (1121 ~ 1186) == 개요 == 고려의 인물. [[임원후]]와 파평부대부인 윤씨의 아들로 외조부는 [[윤관]]이다. == 생애 == 어려서는 품성이 순수했으며 [[음서]]로 관직에 나간다. [[의종(고려)|의종]] 즉위년(1146) 장생서승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관직이 바뀌어 통사사인에 이른다. 운주방어사로 나갔다가 임기를 마치고는 장작주부에 올랐으며 대부승, 문하녹사, 사재승 등을 역임하고 수령으로 나가서는 청렴한 모습을 보인다. [[명종(고려)|명종]]이 즉위한 뒤에 수령 임기를 마치고 합문지후에 오르며 또 여러 번 관직이 바뀌어 고공낭중 겸 전중소감에 이른다. 소부감에 이른 해에는 태자찬선대부를 겸한다. 명종 14년(1184) 시(試, 임시) 전중감에 오르고 명종 16년(1186) 3품의 진(眞) 전중감에 오른다. 이 해에 가벼운 병을 앓았는데 조열(潮熱)이 심해져 66세의 나이로 죽는다. 금오지(金烏池)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봉령사(奉靈寺) 남산 기슭에 장사된다. == 평가 == 임충빈은 친가도 외가도 당대의 대문벌이었는데, 임충빈묘지명에 따르면 그는 낮은 관직에서 전중감에 이르기까지 [[문벌귀족|벌열]]이나 작위의 높음을 드러내지 않았고 베옷을 입고 [[나물]]반찬을 해먹으며 검소하게 생활한다. 이와 같은 품행을 묘지명에서는 천부적 자질과 집안에서 내려오는 가르침의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 가족관계 == * 부: [[임원후]] * 모: 파평▨대부인 윤씨 * '''본인: 임충빈''' * 처: 장흥 임씨 처 임씨는 임원후의 형 임원준의 딸로 임충빈과는 [[사촌]]간이다. 임씨와 사이에서 2남 4녀를 두는데 묘지명의 훼손으로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분류:고려의 인물]][[분류:1121년 출생]][[분류:1186년 사망]][[분류:장흥 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