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왕자/목조 ~ 연산군)]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94153E> {{{#gold '''조선 세종의 왕자'''[br]{{{+1 '''임영대군[br] 臨瀛大君'''}}}}}} || ||<-2><width=30%><#94153E> '''[[군호|{{{#gold 군호}}}]]''' ||<(> 임영대군(臨瀛大君)[* 군호는 [[강원도]] [[강릉시|강릉]]의 별칭인 '임영(臨瀛)'에서 따왔다.] || ||||<:><#94153E> '''[[시호|{{{#gold 시호}}}]]''' ||<(> 정간(貞簡) || ||||<:><#94153E> '''[[본관|{{{#gold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94153E> '''[[이름|{{{#gold 이름}}}]]''' ||<(> 구(璆) || ||||<:><#94153E> '''[[자(이름)|{{{#gold 자}}}]]''' ||<(> 헌지(獻之) || ||||<:><#94153E> '''{{{#gold 부왕}}}''' ||<(> [[세종(조선)|조선 세종]] || ||||<:><#94153E> '''{{{#gold 모후}}}''' ||<(> [[소헌왕후|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94153E> '''{{{#gold 부인}}}''' ||<(> 군부인 [[의령 남씨]](宜寧 南氏)[br]제안부부인 [[전주 최씨]](全州 崔氏)[br]부부인 [[안(성씨)|안동 안씨]](安東 安氏)|| ||||<:><#94153E> '''{{{#gold 자녀}}}''' ||<(> 9남 6녀 || ||||<:><#94153E> '''{{{#gold 묘소}}}''' ||<(>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 ||<|2><:><#94153E> '''{{{#gold 생몰[br]기간}}}''' ||<:><#94153E> '''[[음력|{{{#gold 음력}}}]]''' ||[[1420년]] [[1월 6일]] ~ [[1469년]] [[1월 21일]] || ||<:><#94153E> '''[[태양력|{{{#gold 양력}}}]]''' ||[[1420년]] [[1월 20일]] ~ [[1469년]] [[2월 2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조선)|세종]]과 [[소헌왕후|소헌왕후 심씨]]의 4남이며[* [[문종(조선)|문종]]과 [[세조(조선)|세조]], [[안평대군]]의 친동생이고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의 친형이며 [[단종(조선)|단종]], [[의경세자|덕종]], [[예종(조선)|예종]]의 숙부이다.] [[구성군]] 이준의 아버지이다. [[전주 이씨]] 임영대군파의 파시조이다. == 생애 == 평소 성격이 꾸밈이 없고, 검소하였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아버지 세종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다. 또한 둘째형인 [[수양대군]]과 같이 무예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경복궁 경회루|경회루]]에서 승마 시범을 보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자를 밝히는 데 흠이 있어 궁녀를 겁도 없이 겁탈하였다. 오죽하면 세종이 "임영은 왜 [[양녕대군|양녕 형님]]을 닮았는가..."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아버지인 세종이 총통 제작을 맡겨 동생인 [[금성대군]]과 함께 군기감에서 일하며 총통과 화차를 제작했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는 맏형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문종 사후에는 세조를 두둔했고 그가 죽을 때까지 보좌했다. 묘는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인근에 있고 [[이인좌의 난]]을 일으킨 [[이인좌]]는 그의 9대손이다. == 가정사 == 큰형인 [[문종(조선)|문종]]처럼 첫째 부인과 사별하지 않은데도 재혼을 한 경험이 있다. 이는 막내동생인 [[영응대군]]도 마찬가지. 첫 번째 부인인 남씨는 [[남은]]의 손자인 남지의 딸이었으나,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1433년(세종 15년) 6월 14일 [[세종대왕]]은 [[영의정]] [[황희]], [[좌의정]] [[맹사성]], [[우의정]] [[최윤덕]] 등을 불러 "임영대군의 아내 남씨는 나이가 12세가 넘었는데 아직 오줌을 싸고 눈빛이 바르지 못한 데다가 혀가 심히 짧고 행동이 놀라고 미친 듯한 모습이기에 내쳐야 되겠다" 는 뜻을 밝혔다. 슬하에 아들을 많이 두어서 사후에 후손들이 번창했다. 두 번째 부인 전주 최씨에게서 5남 2녀를 두었고, 3번째 아내 안동 안씨에게는 4남 5녀를 두었다. 이 중 한 명이 훗날 [[이시애의 난]]에서 활약하여 20대에 병조판서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르는 [[구성군]]이다. [[분류:조선의 대군]] [[분류:전주 이씨 임영대군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