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1911년 출생]][[분류:1975년 사망]][[분류:울진군 출신 인물]][[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임시헌(林時憲) || || 이명 ||임시덕(林時德) || || 생몰 ||[[1911년]] [[3월 13일]] ~ [[1975년]] [[12월 17일]] || || [[출생지]] ||[[강원도]] 울진군 상군면 용당동[br](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2리 용제동)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임시헌은 1911년 3월 13일 강원도 울진군 상군면 용당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2리 용제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울진읍 읍내리로 이주하였다. 그는 1938년 2월경부터 평소 뜻을 같이하던 [[남원수]]와 함께 독립운동을 펴기로 뜻을 모으고 그해 4월경에는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 울진군을 중심으로 [[노하순]]·[[최효대]]·전찬문(田燦文) 등과 함께 비밀결사 준향계(準香契)를 조직하였다. 준향계는 일본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하여 계 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일제가 반드시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을 예상하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국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또 그는 1939년 4월 준향계와 유사한 목적과 조직형태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하여 동지 22명과 수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갖고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중 1943년 3월 19일 조직이 발각되어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 5월 31일 대구지검의 예심에서 공판에 회부되었으며[[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723&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41293&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6563&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04798&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 공소하였으나 공소가 기각되었으며, 또한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4881&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18101&actionType=det&flag=3&search_region=|#]]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아 곧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여생을 보내다가 1975년 12월 17일 별세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