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2007년 은퇴]][[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LG 트윈스 은퇴/이적]][[분류:현대 유니콘스 은퇴/이적]][[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휘문고등학교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출신]]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7f55><tablebgcolor=#007f55> '''{{{#fab93d 임선동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bgcolor=#007f55> '''[[2000년 한국시리즈|{{{#fab93d 2000}}}]]''' || ---- ||<table align=center> '''올림픽 야구종목 메달''' || ||<bgcolor=#004687> '''[[김응룡호/2000년|{{{#FFFFFF 2000}}}]]''' || ---- [include(틀:KBO 골든글러브/투수)]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gcolor=#151b54> [[KBO 리그 역대 타이틀홀더/투수#s-1|[[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width=150]]]] [br] '''{{{#ffffff 2000 KBO 리그 다승왕}}}'''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gcolor=#151b54> [[KBO 리그 역대 타이틀홀더/투수#s-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width=150]]]] [br] '''{{{#ffffff 2000 KBO 리그 탈삼진왕}}}''' || ---- ||<-5><table align=center><bgcolor=#c30452> '''[[LG 트윈스|{{{#ffffff LG 트윈스}}}]] {{{#ffffff 등번호 33번}}}''' || || [[이광은]](1990~1996) || → || '''임선동(1997~1998)''' || → || [[김상호(1965)|김상호]](1999~2000) || ||<-5><bgcolor=#007f55> '''[[현대 유니콘스|{{{#fab93d 현대 유니콘스}}}]] {{{#fab93d 등번호 54번}}}''' || || 김형남(1996~1997) || → || '''임선동(1999~2007)''' || → || 팀 해체 || }}} || ---- ||<-2><table align=center> [[파일:/image/295/2013/01/07/152635721_20130107_151327.jpg|width=450]] || ||<-2><bgcolor=#ffffff,#191919>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등학교]] 시절 || ||<-2> [[파일:external/file.thisisgame.com/20110424230916_2916.jpg|width=450]] || ||<-2><bgcolor=#ffffff,#191919> 특급시절이'''었던''' [[LG 트윈스]] 시절[* 자세한 건 아래 프로 시절 이야기에서 후술.] || ||<-2> [[파일:external/www.busanilbo.com/1021195vi3u.jpg|width=450]] || ||<-2><bgcolor=#ffffff,#191919> 그의 '''잠깐이였지만 3년동안 전성기를 펼쳤던 [[현대 유니콘스]] 리즈시절''' || ||<-2> [[파일:/image/241/2014/01/10/htm_20140110167261006110_59_20140110160904.jpg|width=450]] || ||<-2><bgcolor=#ffffff,#191919> 2014년 모습. 오른쪽은 조성현 [[연세대학교]] 감독. || ||<-2> [[파일:external/photo.hankooki.com/ljh566220160511135921_P_02_C_1.jpg|width=450]] || ||<-2><bgcolor=#ffffff,#191919> 2016년 모습. || || '''이름''' || 임선동(林仙東 / Sun-dong Lim) || || '''생년월일''' || [[1973년]] [[8월 4일]] ([age(1973-08-04)]세) || || '''국적''' || [[대한민국]] || || '''학력''' || 서울사당초 - [[휘문중학교|휘문중]] -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 사회체육학과 (1992학번)]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소속팀''' || ~~[[현대 피닉스]] (1996)~~[* 애초에 뛴 적도 없고 그냥 실업 야구팀인 현대가 지명권을 주장했었다.] [br] [[LG 트윈스]] (1997~1998) [br] [[현대 유니콘스]] (1999~2007) || || '''지도자''' ||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학교]] 투수코치 (2014~2019) [br] [[진영고등학교 야구부|진영고등학교]] 감독 (2020~) || [목차] == 소개 == 前 [[LG 트윈스]], [[현대 유니콘스]] 소속 야구 선수, 現 부천 진영고등학교 감독. [[한국프로야구]]계에서 풍운아로 일컬어지는 선수들 중 한 명이자 짧고 굵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선수다. 2014년부터 [[연세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조성현 연세대 감독의 제의로 모교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조성현 감독은 임선동에게 대학 선배이며, 덕수중 감독 시 임선동이 투수 인스트럭터로 근무했다.] == 아마추어 시절 ==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84회)[* 같은 학교의 농구부 1년 후배가 서장훈, 2년 후배가 현주엽이다.] 시절 신일고 [[조성민]], 경기고 [[손경수]]와 함께 서울 [[팜]]의 초고교급 [[투수]]였고 대학 시절에는 [[박찬호|3]][[임선동|인]][[조성민|방]]의 선두주자였다. [[박찬호]], ~~[[정민철]]~~,[* 대학을 거치지 않고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했다. 동기생으로 구분될 뿐, 92학번으로 불릴수는 없다. 또한, 정민철은 1년 유급한 72년생으로, 9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보다 1살 연상이다. 편의상 92학번으로 보는 듯.] [[박재홍(야구)|박재홍]], [[송지만]], [[김종국(야구선수)|김종국]], [[홍원기]], [[손혁]] 등과 함께 소위 '''황금의 92학번'''이라 일컬어지는 세대 중 한 명. 당대 최고의 유망주였던만큼 [[잠실 야구장|잠실]] 라이벌 [[OB 베어스]]와 [[LG 트윈스]] 양 팀 모두가 임선동을 노리고 있었는데, 1991년말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신인 지명]] 때 OB와 LG 중 주사위 던지기에서 이긴 LG가 결국 임선동을 1차 지명으로 뽑았다. 여담으로 이 때 [[조성민]]은 "나는 [[고려대학교]]를 갈 거니까 LG나 OB는 괜히 나를 지명해서 1차 지명권 날리지 마라"고 공식 선언한 상태였고, 결국 당장 투수가 급했던 OB는 [[손경수]]를 지명한다. 허나 당시 2억 원의 계약금을 제시했던 OB의 기대와 달리 손경수는 장학금을 제시한 [[홍익대학교]]에 입학해 버리고, 거기서도 가정사와 사생활 문제로 1993년 말 자퇴한 후 1995년 OB에 입단했다. 하지만 손경수는 간염 악화로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입단 첫 해 시즌이 끝나고 임의탈퇴된 후 잊혀지고 만다.[* 당시 [[홍익대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던 [[박종회]]의 말에 따르면, 손경수는 야구부 숙소에서 있는 일수가 1년 중 100일이 안 될 정도로 자기관리가 굉장히 나빴다고 한다. 잦은 음주로 인해 [[홍익대학교]] 시절부터 [[간염]]이 발병했고, 음주폭행도 잦았다고 한다. 이미 군 면제를 받았는지라 임탈 이후 3년 간 방황하고 나서 1998년 OB 복귀를 위해 입단 테스트를 받았는데, 결국 불합격하여 완전히 은퇴한 듯.] 한편 임선동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하는 대신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는데 [[연세대학교]] 4학년 시절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 호크스]]와 [[한국실업야구]] 팀 [[현대 피닉스]], 지명권을 주장한 [[LG 트윈스]] 사이에 3중 계약 파문을 일으키며 마찰을 빚었다.[* 일본 다이에 호크스가 임선동에게 입단제의를 한 배경은 한국에서의 국가대표 경력도 경력이지만 결정적으로 1995년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 결승전에서 구원투수(선발투수 [[문동환]]이 조기강판)로 나와 묵직한 속구와 타자의 바깥쪽과 안쪽을 정확히 찔러넣는 역투(경기 자체는 9회에 역전패당한다)를 펼쳐 일본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결국 임선동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내세우며 [[LG 트윈스]]에 소송을 걸었고 2년간의 법정 공방을 통해 승소했으나 이 사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는 [[KBO 리그]]의 지명권을 존중한다면서 영입에 손을 뗀 상태였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 소식을 들은 임선동은 격분하여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다가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여기에 학점 미달로 [[연세대학교]] 졸업이 늦어졌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때 이 문제로 논란을 빚었다.] 현대 피닉스를 프로화하려던 [[현대그룹]]의 계획은 무산됐기에 [[현대그룹]]은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서 1996년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한 상태였다. 임선동은 울며 겨자먹기로 법원의 조정안에 따라 [[LG 트윈스]]에 입단했는데 당시의 조정안이 우선 지명권을 지닌 LG 트윈스에 입단 후 2년 뒤에 자신이 원하는 팀으로 [[트레이드]]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런 임선동의 행위는 [[KBO 리그]]의 질서를 심각나게 어지럽히는 일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선 프로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는 계약관계를 무시했으며 전체적으로 전력이 평준화돼야 보는 즐거움도 있고 판 자체가 커지게 돼있는 프로스포츠에서 [[현대 유니콘스]]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 팀에 대한 비정상적인 전력 집중이 일어나면 전체적인 흥미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비정상적인 선수 수급으로 강해진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판을 지배하던 2000년대 초중반은 [[KBO 리그]] 역사에서도 관중 동원력이 가장 떨어졌던 시기였다. 700만 관중을 돌파한 2012년의 반도 안 되는 300만도 못한 수준이었고 1995년에 500만관중을 돌파하면서 엄청난 붐을 일으켰던 상황에 비해서도 엄청난 관중 감소가 일어났다.[* 물론 현대와 삼성이 무자비하게 돈지랄을 한 것도 원인이긴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으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끼쳤다.][* 현대는 창단 초기에 무지막지한 재력을 이용해 박경완, 조규제, 전준호, 마일영 등의 선수들을 편법으로 긁어 모아 강해진 전력이 있다. 삼성도 이에 영향을 받고 쌍방울로부터 김기태, 김현욱 등을 털어먹었다.] 다만 애초에 드래프트라는 제도 자체가 명백한 담합 행위에 해당하며,[* 구단 마음대로 지명할 선수를 선택하고, 거절하면 모든 구단이 계약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임선동은 어쨌건 법원에서 승소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 스포츠계는 대부분 드래프트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위 항목에서는 프로의 기본인 계약을 무시하였다는데, '''애초에 LG는 임선동과 계약을 한 것이 아닌, 일방적으로 지명을 했을 뿐이다.''' 따라서 드래프트는 원활한 리그 운영을 위해 선수노조가 자신들의 자유로운 계약 권리를 일부 포기하였기에 성립할 수 있는 제도이고, 선수노조가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의 KBO 리그에서 드래프트를 이유로 계약을 막은 것은 '''원칙상으론 엄연한 불법행위가 맞다.''' 사실 미국식 프랜차이즈 제도에 익숙한 대한민국 스포츠 팬들에게는 드래프트 제도가 익숙해서 별 말이 안 나오는 것이지, 드래프트는 '''근본적으로 헌법에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무시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종목을 가리지 않고 이와 관련된 잡음은 꾸준히 터져나온다. 독일로 떠난 [[문성민]], 1:8 트레이드로 이적한 [[황선홍]], 상무로 도피한 [[양준혁]]이 대표적이며, 여자축구계에서는 팔자에도 없는 군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로 상무를 거부한 [[최유리(축구선수)|최유리]]같은 사례도 있다. 리그 전체의 이득을 위해 개별 선수의 권익을 제한하는 제도이니만큼 한번쯤은 생각을 해 볼 문제. 이는 트레이드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임선동의 소송은 [[KBO 리그]] 선수 전체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본인의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행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훗날 선수협 창립 당시 동료들을 외면하고 프런트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의혹도 있는 것을 보면 더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런지 임선동이 법적으로 승소는 했지만 이 시기를 전후해서 LG 팬들로부터 도덕성 문제로 무수한 욕을 들어먹어야 했다.[* 특히 LG에서의 2년차에 사실상 태업성 플레이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 프로 시절 == 1996년에는 소송 등을 겪으며 프로 입단이 미뤄졌다. 그래도 아마시절에 화려한 명성을 얻었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선출될 정도로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났기에 [[1997년]] 입단 첫 해에는 11승 7패 [[평균자책점]] 3.52를 기록하며 신인 투수로서도 [[나름]] 잘해줬다. 그러나 [[1997년 한국시리즈|코시]]에서 탈탈 털렸고 다음 해에 태업을 하면서 추락한다.[* 2년차 징크스라기보단 다이에 호크스행을 무산시킨 소속팀 LG를 위해 열심히 뛸 의욕이 전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1999년 1월 LG 측에서 [[안병원(야구선수)|안병원]]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현금 트레이드된 후[* 전년도에 해태로부터 조계현을 데려왔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삼성이 7억을 지르자 현대가 1억 더 얹은 8억을 불러 성사시킨 것. ]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첫 해에는 별로 신통치 못한 성적 '''0승 1패''', '''ERA 8.05'''을 찍으면서 팬들의 빈축을 샀다. 하지만 2000년에 갑자기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이 시기 때 투수코치였던 [[김시진]]이 임선동을 상당히 신경써서 관리한 영향이 크다. 러닝훈련을 직접 감독하고 야식 먹는 것까지 일일이 감시했을 정도였으니. 사실 임선동은 연세대 시절 병역면제 판정을 받기 위해 엄청나게 체중을 불린 일이 있고 그 뒤로 구위가 상당히 저하된 상태였다. 그걸 되돌려서 포텐셜을 터뜨리게 만들었으니 정말 ㅎㄷㄷ하다.] 18승 4패 평균자책점 3.36 174개의 [[삼진(야구)|삼진]]을 기록하면서 다승왕, 탈삼진왕을 동시에 거둔다. 이 활약으로 [[KBO 골든글러브]]도 수상하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도 출전해 동메달도 수상했다.[* 한편, LG로 간 안병원은 4년간 [[추격조]]로 뛰다 은퇴했다.] 2000년 시즌 후에 에이스 [[정민태]]가 [[일본]]에 진출함으로써 임선동은 팀내 실질적인 [[에이스]]로 급부상하게 된다. 2001년에는 14승 8패 방어율 4.40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임선동은 갑자기 허리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해 이듬해 2002년에는 8승 6패[* 팀내 다승 3위, 1위는 12승 10패 ERA 4.88을 기록한 [[김수경(야구)|김수경]]] 4.51을 기록, 8월 말 시즌 중에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시즌아웃'''되었다. 그래도 2002년까지는 나름대로 활약은 해줬지만 이후 부상이 심화됐고 훈련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2003년 이후로는 팀의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승수를 쌓지 못한 채 2007년 소속팀 현대에서 방출당하고 곧바로 은퇴했다. 결과적으로는 잠시 잘 나가기도 했지만 재능에 비해 롱런하지는 못했고 아마에서나 프로에서나 '''게으른 천재'''로만 남은 선수. 그래도 한 시즌이나마 골든글러브와 다승왕, 탈삼진왕을 거머쥐며 정상에 올랐던 점이 그의 넘치는 재능을 증명해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임선동을 [[탈쥐효과]]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가 애초에 역대급 재능을 지닌 선수였고 LG에서 1년차에 좋은 성적을 거뒀고 2년차는 태업이었음을 생각하면 틀린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1990년대]]에 매년 대박을 거두던 LG의 1차지명 역사에 [[이정길(야구)|이정길]] 이상으로 찬물을 끼얹은 ~~빅 엿을 먹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고 덕분에 1997년이 되면 [[조성민]]을 1차지명으로 얻고 임선동과 함께 '''원투펀치'''로 써서 도합 30승은 거둘 수 있을 거라고 꿈꾸던 LG 팬들은 쓰라린 좌절을 맛봐야 했다. == 은퇴 이후 == 풍운아라는 별명답게 은퇴 후에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 [[스튜어디스]] 출신 아내를 만나 잘 살고 있다고 하니 나름대로 승리자.[* 은퇴 전 [[용인시|용인]]에 투자한 부동산이 대박이 나서 수백억원대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 때 돈을 왕창 번 탓에 더 이상 야구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은퇴했을 거라는 설이 제기도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방송인 ~~절대동안~~ [[박소현(배우)|박소현]]과 사귀었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방송인''' 맞다.][* 박소현이 임선동보다 2살연상이다.] 야구계에서 떠나 잠시의 휴식을 가진 뒤 덕수중학교 투수코치로 잠깐 있다가, 2014년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투수코치로 부임하였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77272|살이 정말 많이 쪘다]]. ~~임선뚱~~ 2018년에는 휘문고-연세대 동기인 [[석주일]]이 진행하는 [[아프리카TV]] 방송에 간간이 출연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진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청룡기 대회에 참가한 이후 두 번째 출전 만에 팀을 16강에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2021년 1월 18일 근황을 다룬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무난하게 인터뷰 한 편. [[http://naver.me/xcKbEJ84|1편]], [[http://naver.me/5pNr2Zpt|2편]] 참고로 키움이 현대의 후신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임선동 뿐만 아니라 야구인들이 대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야구선수들 입장에서 후원처만 바뀌었을 뿐 같이 운동하고 시합하는 구성원이 바뀌진 않았기 때문에.. == 기타 == [[응답하라 1994]]에서 잠시 [[https://youtu.be/OeI_p7JuQEQ?t=48|언급]]되었다. [[칠봉이]]의 설정과 같은 [[연세대학교 야구부]] 출신 거물 유망주였기 때문. 그리고 대학 시절에는 자신이 칠봉이와 외모가 비슷했다는 망언(?)을 했다(...). 운동선수들은 은퇴하면 먹는 것은 현역 시절 그대로인데 운동을 안 하니 칼로리 소모를 못해서 살이 찌는 경우가 많은데, 임선동은 특히나 대학시절 [[병역면제]]를 위해 무리하게 체중을 불린 적까지 있어서 위장이 커지다 보니 은퇴 후 리바운드가 더 심하게 온 것. 루키 시즌인 1997년의 LG트윈스 팬북에서도 선수들의 Q&A 페이지가 있었는데, 그 중 임선동은 '효과적으로 체중 감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요?'에 답하는 것으로 나왔다. (물론 선수가 답변을 했을 리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체중 조절에 대해서는 현역때나 은퇴 후나 반면교사와도 같은 인물이다. 얼마나 위장이 컸냐면, 방송에서 푼 썰 중에 현역시절 전지훈련을 가서 [[짜파게티]]를 5봉을 한 냄비에 먹었는데, 먹고 나서 후배가 "선배님 치울까요?" 하고 묻자 "냅둬 2세트 시작해야지" 하고 말하고는 잠시 휴식 후 ~~2세트~~5봉을 또 먹어 총 앉은 자리에서 10봉을 해치웠다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썰이 있을 정도. 저 몸을 보면 신빙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임선[[선동열|동열]]이라는 이름 말장난이 있다(...). 실제로 잘 나가던 휘문고 시절에는 이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재미있게도 투수 트레이닝 교본 "[[김건우(1963)|김건우]]의 투수훈련법"에서는 임선동의 투구동작이 좋지 못한 투구동작의 표본으로 실려있는데, 대조되는 좋은 투구동작의 표본으로는 [[선동열]]이 실려 있다.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은 임선동의 화려한 입담을 칭찬했다. 박명환야구TV에 꼭 나와줬으면 한다고. == 연도별 주요 성적 == ||<-14><table align=center><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c30452>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출장 경기수}}} || {{{#ffffff 이닝}}} || {{{#ffffff ERA}}}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사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WHIP}}} || || 1997 ||<|2> [[LG 트윈스|LG]] || 22 || 135⅔ || 3.52 || 11 || 7 || 0 || - || 129 || 10 || 47 || 77 || 1.20 || || 1998 || 15 || 59⅔ || 6.94 || 1 || 6 || 0 || - || 71 || 11 || 27 || 29 || 1.53 || ||<rowbgcolor=#007f55> {{{#fab93d 연도}}} || {{{#fab93d 소속팀}}} || {{{#fab93d 출장 경기수}}} || {{{#fab93d 이닝}}} || {{{#fab93d ERA}}} || {{{#fab93d 승}}} || {{{#fab93d 패}}} || {{{#fab93d 세}}} || {{{#fab93d 홀}}} || {{{#fab93d 피안타}}} || {{{#fab93d 피홈런}}} || {{{#fab93d 사사구}}} || {{{#fab93d 탈삼진}}} || {{{#fab93d WHIP}}} || || 1999 ||<|8> [[현대 유니콘스|현대]] || 9 || 19 || 8.05 || 0 || 1 || 0 || - || 33 || 3 || 7 || 10 || 2.00 || || 2000 || 29 || '''195⅓''' [br] (3위) || '''3.36''' [br] (4위) || '''{{{#red,#ff0000 18}}}''' [br] (1위) || 4 || 0 || 0 || 177 || 13 || 68 || '''{{{#red,#ff0000 174}}}''' [br] (1위) || 1.22 || || 2001 || 24 || 159⅔ || 4.40 || '''14''' [br] (3위) || 9 || 0 || 0 || 201 || 10 || 46 || 77 || 1.53 || || 2002 || 21 || 105⅔ || 4.51 || 8 || 6 || 1 || 0 || 118 || 12 || 31 || 61 || 1.34 || || 2003 || 4 || 13⅓ || 9.45 || 0 || 2 || 0 || 0 || 23 || 2 || 4 || 4 || 1.95 || || 2004 || 2 || 3⅔ || 17.18 || 0 || 0 || 0 || 0 || 9 || 0 || 6 || 1 || 3.27 || || 2005 || 3 || 3⅔ || 17.18 || 0 || 1 || 0 || 0 || 9 || 0 || 3 || 3 || 3.27 || || 2006 || 1 || 1 || 0.00 || 0 || 0 || 0 || 0 || 1 || 0 || 1 || 1 || 1.00 || ||<-2><bgcolor=#ffff88><color=#373a3c> '''[[KBO 리그|KBO]] 통산''' [br] (10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130 || 696⅔ || 4.50 || 52 || 36 || 1 || 0 || 771 || 61 || 239 || 436 || 1.39 ||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 [[LG 트윈스/선수단]] * [[현대 유니콘스/선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