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2년 출생]][[분류:1970년 사망]][[분류:논산시 출신 인물]][[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문화, 예술]][[분류:극작가]] [목차] [[1912년]] [[2월 5일]] ~ [[1970년]]? == 개요 == 林仙圭, 본명은 임승복(林勝福). 창씨명은 하야시 나카로(林中郞, 임중랑) [[일제강점기]], [[북한]]의 극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종북주의자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우지마라)'의 제작자이자 [[문예봉]]의 남편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당대 신파극 극작가의 대표자로 일제강점기에 많은 흥행을 한 연극의 작가였으나, 친일, 종북 행위로 후대에 평가가 좋지 못하다. == 생애 == === 친일 부역 이전 === [[충청남도]] [[논산시|논산군]] 출신으로 [[1912년]][* 일부에서는 1910년, 1914년 생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기록자체로 얼마 없어서 정확한 생년이 아닐 수 있다.] [[2월 5일]]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강경상업고등학교|강경공립상업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었다고 한다. 1932년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많은 습작으로 실력을 쌓아왔던터라 얼마 안가 중요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이듬해에 배우 [[문예봉]]과 결혼하였다. 1936년에 집필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크게 흥행하자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 친일 부역 === 태평양전쟁 시기에 아내 문예봉과 함께 연극분야에서 친일 부역행위를 하였으며, 이 시기의 내 놓은 작품들이 일본 제국을 미화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 공산당 활동 === 광복 이후 많은 친일부역 연극인사들이 그랬던 것 처럼 부인과 같이 좌익계열로 활동 하였으며, 남조선로동당 소속으로 활동 하였으나 별다른 활동 없이 부인을 따라 [[1948년]] [[월북]]을 하게 된다. 월북 이후 두드러진 활동 없다가 1970년 경 결핵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만 있다. 하지만, 월북직후 사망했다는 설이 있는 등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지 않다. 아내인 문예봉이 숙청되었던 70~80년대 상황을 봤었을 때 같이 숙청되어 있을 수도 있다. == 기타 == [[동양극장]]에서는 [[권해효]]가 맡았으며, 문예봉([[정선경]])의 비중이 있는편이라 그 역시 주요인물은 아니지만 조연으로써 역할을 하였다. [[야인시대]]에도 등장하였으나 단역 수준이다. 다만 같은 단역인 아내 ~~무뇌봉~~[[문예봉(야인시대)|문예봉]]과 달리 대사가 전혀 없었다. 대사가 없는 탓에 [[야인시대/합성물]]에서도 지나가는 단역으로 쓰는 정도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무뇌봉이 자신을 버리고 [[심영(야인시대)|심영]]이나 [[황철]]과 연인이 되어도 대사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한다~~ ~~[[NTR]] 피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