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19세기 [[조선]]의 [[승려]] 풍계 [[헌정]]이 풍랑을 만나 [[일본]]에 [[표류]], 체제하면서 겪은 경험을 서술한 [[표해록]]. 분량은 짧지만 매우 세밀하게 기술되어 있어 사학계에서도 굉장히 소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 상세 == 능주(綾州)[* 현 [[화순군]] 능주면.] [[쌍봉사]](雙峰寺)의 화원승(畵員僧)인 풍계 현정(楓溪賢正)은 [[해남군|해남]] [[대둔사]] 천불전의 천불 조성을 담당했던 승려였다. 그는 [[경주시|경주]]에서 천불 제작에 쓸 [[옥]]과 자재를 구해 장진포(長津浦)에서 자재를 배에 싣고 [[해남]]으로 출항했으나 1817년 11월 27일, 일본 [[후쿠오카]] 인근 [[오시마]](大島)에 동해상에서 큰 풍랑을 만나 일본까지 흘러가게 된 것. 오시마에서 [[나가사키]], 그리고 [[대마도]]를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 동안 보고 들은 일을 세세히 기록했는데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상의 서술을 줄이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하였다. 표해록 전체에서 헌정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보이는 대목은 두어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금욕하는 승려로서는 당연히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본 특유의 성풍속에 관한 것이다.] 딱딱한 역사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의외의 사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었는데도 양국 사이에는 해상 조난자에 대한 구호체계가 존재했다. 하긴 왜란 이후 3백여 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니.]도 알 수 있어서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무엇보다 분량이 짧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지만 저자인 풍계 헌정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생몰연도를 포함해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알려진 저서도 이거 한권 뿐이다. == 여담 == 여담으로 이 기행문은 일본에서 승려 일행이 겪은 고난이나 차별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을 보면 상당히 친절한 대우를 받았고 저자인 헌정도 대부분 친절한 사람들이었다고 기술한다. 당연한 것이 일본은 [[불교]]가 오랫동안 국교였던 시절이 있었고, 이후로도 [[신토]]와 공생하며 성장했기에 옆나라 사람이라도 승려이므로 잘 대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던 시절이었다. == 해석본 == 일본표해록의 해석본이 출간되어 있는데 홍보용으로 써먹으려고 책 소개에 '대마도는 조선땅이었다!'라고 광고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대마도 사람 중에는 조선말을 할 줄 알며 조선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냥 대마도인이었다."라고 언급할 뿐이다.[* 표해록을 보면 대마도주에 대한 표현이 좋지는 않다. 대마도주가 표류민에게 지급할 구호식량을 빼돌린다던지, 숙적 영주를 모함해서 3대를 죽게 만든다던지. 비슷한 기록은 [[간양록]]에도 나온다. [[대마도]] 항목 참고.] [[분류:조선의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