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양의 풍수지리)] || [[파일:7S08KAh.jpg|width=350]] || [목차] == 소개 == {{{+1 仁王山/仁旺山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우백호.}}}[* 경복궁 정전에서 남쪽을 봐라 봤을때 오른쪽에 인왕산이 있기에 우백호이다. 마찬가지로 좌종묘•우사직에 해당되는 [[사직단]]도 인왕산 인근에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높이 338.2 m의 [[산]](참고로 한양도성의 산으로는 북악산이 가장 높으며 인왕산과는 3.8 m 차이). 바위산이다. 진경산수화의 대표격으로 흔히 언급되는 '''겸재 [[정선(화가)|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가 바로 인왕산을 그린 산수화. 예로부터 한자 표기는 仁'''[[王]]'''山과 仁'''[[旺]]'''山 모두 병기하여 쓰였으나 현재는 仁'''[[王]]'''山이 표준 표기이다. 항간에는 인왕산의 표기가 원래는 仁'''[[王]]'''山이었으나 [[일제강점기]]때 [[일본 제국|일제]]가 이를 억지로 仁'''[[旺]]'''山으로 바꾸었으며, 1995년에야 뒤늦게 원래 이름인 仁'''[[王]]'''山으로 되돌려 잘못을 바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떠도는데, 이는 명백히 근거없는 얘기이다. --일부 피해망상 일본어 잔재론자들에 따르면-- 仁'''[[旺]]'''山의 '''[[旺]]'''을 [[파자]]하면 '''[[천황|日王]]'''이 되고, 이를 풀이하면 '''‘인자하신 일본왕의 산’'''이 되며, 이를통해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식민사관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王]]'''을 '''[[旺]]'''으로 [[일본 제국|일제]]가 억지로 바꾸었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이 낭설[* '''[[천황|日王]]'''은 일왕, 곧 일본의 왕('''[[천황]]''')을 의미할 것이라는 흔한 망상 연쇄 논리이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는 ‘'''천황'''’도 아닌 ‘'''일왕'''’을 기리고자 '''[[王]]'''을 '''[[旺]]'''으로 고칠 이유가 없다. [[일본]] 당국은 천황과 일왕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보고 있으며, 실제로 현재까지도 '''[[천황|日王]]''' 표기를 쓰는 한국 언론사 측에 '''‘[[천황]]’이라는 표기를 따르고 있는데 왜 자꾸 ‘일왕’이라고 하냐며''' 시정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왕실에서도 신과 동급인 하늘의 '''[[황제]]'''를 일개 '''[[왕]]'''으로 격하시키는 ‘일왕’ 표기를 대단히 불경스러운 행위로 여긴다. 한때 조선은 일본의 실권자인(다만 엄밀히 따지면 천황의 신하인) '''[[정이대장군|쇼군]]'''을 일왕으로 인식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사회 정서를 일본에 밑도 끝도 없이 그대로 대입해 버리면서 만들어진 잘못된 [[루머]]이다.]인 근거는 여럿 존재한다('''[[일본어 잔재설]]''' 문서 참조). 이미 仁'''[[旺]]'''山이라는 표기는 일제강점기보다 200년이나 훨씬 앞선 '''[[영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id/kua_13805026_002|#]]에도 등장하며[* 다만 딱 한 번 仁旺山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전부 仁王山으로 표기되어있기는 하다. 고종실록에도 마찬가지로 딱 한 번 仁旺山이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신뢰성의 문제로 정통 실록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는 논외로 한다.] '''[[승정원일기]]'''에서는 仁'''[[旺]]'''山표기가 일제 강점기 이전, 무려 총 102회나 발견된다. 또한, 조선 [[순조]] 8년(1808)에 편찬된 '''[[만기요람]] '''(萬機要覽)[* 군정편(軍政編) 훈련도감(訓鍊都監) 조에는 왕을 호위(扈衛)할 때 척후와 복병이 지켜야 할 도성 분담 구역을 거론하면서 북악,인왕산,안현,돈의문 바깥 삼거리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도 인왕산은 '仁旺山'이라고 표기돼 있다.] 에서도 仁'''[[旺]]'''山이라고 표기돼 있다. 따라서, [[일본 제국|일제]]가 멀쩡한 仁'''[[王]]'''山을 仁'''[[旺]]'''山으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근거없는 이야기 이다. 참고로 '''[[旺]]'''은 '혈기'''왕'''성하다' 할 때의 그 '왕'이며 [[한자/급수별/2급|어문회 2급자]]로 지정될 정도로 예로부터 인명용, 지명용으로 널리 쓰이던 한자이다. 이를 모르고 XTM 편성 [[M16(TV 프로그램) #s-3|잡식남들의 히든카드 M16]] 34회차 방영분(2016.9.5.)에서 "[[일본 제국|일제]]는 '''[[천황|日王]]''', 즉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 시키기 위해, 仁'''[[王]]'''山이라는 우리의 이름 대신 仁'''[[旺]]'''山을 썼다.", "1995년에야 원래 이름을 되찾은 인왕산(仁'''[[王]]'''山)"이라고 언급하는 일이 일어났다. 심지어 인터넷 기사에도 버젓이 올라와버렸다. 망상 논리와 불필요한 피해의식으로 멀쩡한 한자에 누명을 씌우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旺|이와 같은 이유]]'''로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 제국|일제]]는 '''[[旺]]'''표기를 불쾌하게 여겨 '''[[王]]'''으로 바꾼 사례마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왕시|경기도 의왕시]]의 표기인데, 기존에 儀'''[[旺]]'''市였던 것을 [[일본 제국|일제]]가 불경하다 하여 義'''[[王]]'''市로 바꿔버렸다. 재밌게도 훗날 [[의왕시|의왕시청]] 측에서는 이 같은 사실에 무지하여 [[2007년]]에 원 표기인 儀'''[[旺]]'''市를 원래 이름으로 되돌린답시고 다시 義'''[[王]]'''市로 바꿔버렸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0229|의왕시 한자 지명 '儀旺'을 '義王으로' 어때요? (오마이뉴스)]])실로 탁상행정이 아닐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일본어 잔재를 청산한다는 사람들이 원래 이름을 [[일본 제국|일제]]가 바꿨던 이름으로 다시 되돌린 것이다.''' == 상세 ==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이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 [[태껸]]의 [[송덕기]] 옹의 [[별명]]도 인왕산 호랑이였다고...] [[정조(조선)|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참고로,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 바위산이다보니 기암 괴석이 있고 암벽이 있어서 규모는 작으나 경관이 좋은 편이다. 다만 높이도 그다지 높지 않은데다 규모도 작아서 지형보다는 역사/문화 쪽으로 더 유명한 산이다. 사실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서울 사람에게도 [[존재감]]은 없는 산. 다만 [[택견]]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에 가깝다. [[구한말]] 택견꾼들이 마지막까지 수련했던 곳이 바로 인왕산이었기 때문. 지금은 [[감투바위 수련터]]가 복원됐다. 사진 촬영이 많이 까다로운 곳이다. 이는 [[청와대]] 외곽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때문에 청와대를 경호하기 위한 [[제1경비단|군사시설]]이 있다. 그래서 인왕산에 가면 산 중턱이나 정상에서 경비를 선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사진 촬영 금지 구역에서 함부로 사진을 촬영하면 이들에게 제지당한다. 이 문제 때문에 이따금 등산객과 군인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최근에는 청와대 방향이 아닌 경복궁과 도심 쪽으로 촬영하는 것은 거의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도심의 스카이라인과 야경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데에는 별 문제는 없다. === 겸재 [[정선(화가)|정선]]과 인왕산 === || [[파일:jinRBbK.jpg|width=350]] || || <[[인왕제색도]]> '''위 사진과 암벽의 모양을 비교해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사실과 가까운지를 알 수 있다'''. || || [[파일:K054pdB.jpg|width=350]] || || <수성동>과 그에 기초하여 복원된 수성동 계곡 ||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화가)|정선]]의 고향이 바로 인왕산 옆 현재의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등지.[* 당시엔 '장동'이라고 불렸다.] 인왕산이 코앞인 데다가 동네 어디에서나 인왕산의 암벽이 보이는 곳이다보니 인왕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잘 알려진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당대 장동팔경(壯洞八景)의 하나로 꼽혔던 인왕산의 수성동 계곡을 그린 그림도 유명하다. 실제로 2000년대에 아파트와 콘크리트로 복개된 수성동 계곡을 복원할 때 정선의 그림을 참고했을 만큼 사실과 비슷한 작품. == 인왕산의 명소 == || [[파일:NcXNZBF.jpg|width=350]] || || [[파일:cxfL0lB.jpg|width=350]] || ||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문학관. 2005년 철거된 구 청운시범아파트 자리에 [[윤동주]]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인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은 과거 이용되던 상수도시설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18위에 오를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니 방문을 권한다.] 그 옆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연결된 청운공원에서는 도심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싶다면 [[서울 버스 1020]], [[서울 버스 7022]], [[서울 버스 7212]]를 이용, 자하문고개 정류장에 하차하면 된다. || || [[파일:CtYjAVu.jpg|width=350]] || || 수성동 계곡.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지으면서 콘크리트 속에 묻혔던 계곡을 2012년 복원했다. 중간에 [[정선(화가)|정선]]의 그림을 반영한 '기린교'라는 돌다리가 있다. || * 황학정: 인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활터로, 1898년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세워진 국궁장이다. || [[파일:external/www.ntmnews.co.kr/1277185767-12.jpg|width=350]] || || [[국사당]] || [[분류:서울특별시의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