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이회창)] [목차] == 개요 == 전 국무총리 [[이회창]]의 논란을 담은 문서. == 1997년 대선 당시 [[전두환]]과의 전두환 사면에 대한 거래 논란 ==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이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감옥에 있는 전두환이 이회창에게 "고맙다"며 "우리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냐"고 화답할 만큼 매우 기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329104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32&pageNo=4&printNo=16224&publishType=00010|옥중 전 씨 사면 건의 이회창 대표에 고맙다, 구두 메세지]] 그에 대해 이회창 후보도 전두환의 화답에 "고생 많으시다. [[추석]] 때 나오시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다"고 전두환 측에게 화답한 것으로 밝혀졌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19970923/7286213/1|李(이) 대표-全(전) 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 후 변호사 통해 동아일보 1997.9.24]] 당시 [[한겨레]]에서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추석 전 전두환 [[노태우]] 두분의 석방을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게 됐다"고 전두환 측근들에게 화답하였다고 보도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89126004&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8&pageNo=26&printNo=2991&publishType=00010|사면 노력해줘 고맙다” 전 씨, 이회창 대표에 인사말 1997.9.24 한겨레]] == 엘리트주의 논란 == 이회창 비판자들에게는 엘리트주의에 극도로 찌든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에 따르면 [[고려대]] 출신 기자에게 "[[고려대]] 나오고도 기자 할 수 있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145#Redyho|#]] 만약 사실이라면 대선에서 고작 [[고졸]]인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패배한 것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이 영입한 인사들 중에서는 [[연세대학교|연세대]] 출신인 [[최경환(1955)|최경환]] 경제부총리나 [[고려대학교|고려대]] 출신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비[[서울대]] 출신 인사들이 많고, 이회창의 분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최측근인 이흥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명지대학교|명지대]], 오랜 세월 이회창을 보좌한 이채관 총재 정무특별보좌관은 [[경남대학교|경남대]]를 나왔다는 사실로 볼 때, 공적으로는 유능한 사람을 두루 뽑은 편이었다. 이 발언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다. 마음 속 깊이 묻혀 있던 엘리트주의가 술자리를 빌어 표출되었다는 해석, 아래의 '빠순이' 발언처럼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 그냥 세상으로 퍼져버렸다는 해석, 진짜로 자신과 안면이 있는 기자들이 전부 서울대 출신이라 고려대 출신 기자가 신기해서 물어봤다는 해석 등이 있다. 한편 이건 그가 대학생이던 시절을 감안해야 한다. 전국적으로도 4년제 [[종합대학]]이 손에 꼽을 정도인 시절인 [[1950년대]]에 학교를 다닌 데다가 [[고려대]]나 [[연세대]]는 [[전문학교]]에서 출발하였고, [[경북대학교]]는 그나마 [[서울대]]와 비슷하게 기존에 있던 전문학교들을 모아 통합하여 종합대학교로 출발하였으나 대구에 있었고, [[부산대학교]]는 출발이 종합대학이긴 했지만 부산에 있었다. 따라서 [[경성제국대학]]의 적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는 [[서울대학교]]의 위상은 원톱 그 자체였다. 거기다가 1950년대에 언론인은 아무나 하는 직업이 절대 아니였다. 1957년 실시된 해방 이후 최초의 민간 통신사인 '합동통신사' 공채에 합격한 언론인 [[리영희]]는 선발된 4인 중 꼴찌가 자신이었고, 나머지 3명은 전부 [[서울대]] 졸업자 또는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인재들이었다고 회고했다. 경쟁률은 무려 1:50이었고, 심사에서 탈락한 [[고려대]] 졸업생은 외교부로 발탁되어 갔다고 한다. 건국 이래 펜대를 굴려 먹고 살 수 있는 직업 중 그 명예나 자부심으로서는 원톱 그 자체였던 직업이 기자였다. 이러니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 [[서울대]] 출신 주류 엘리트들 중에서 학교에 대한 소위 '''부심'''이 큰 사람들은 SKY라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 [[총풍사건]]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총풍사건)] ==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법살인 관여 논란 == [[5.16]] 쿠데타 직후 [[혁명재판]]소 1심 재판관으로서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사법살인행위 중 하나로 꼽히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 대한 사형선고에 참여한 바 있다. [[http://wonheebok.khan.kr/273|참고자료]] 이 사건에 대해 이회창 본인은 초임 판사 시절에 혁명재판소 재판관으로 강제로 차출된 것이며 자신으로서는 해당 판결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하였다.[* "막 군법무관에 임관된 상태에서 혁명재판소로부터 인원 차출 지시가 왔는데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해 나이 어린 순으로 차출되다보니 세명의 재판관 중 한명으로 참여하게 됐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할 수 없다며 사표를 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조용수의 용모는 준수했으며 심문에도 똑똑히 대댑해 사형을 내리기엔 아까운 젊은이였다" 원희복 <사후 37년만에 진상규명위원회 발족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신동아 1999년 2월 483쪽]법률의 위헌적 소급적용에 의한 정치탄압 및 사법살인극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는''' 본인도 부정하지 못한 이회창의 대표적인 흑역사이다. 어찌보면 민주항쟁 진압에 동원된 경찰이나 군인같은 입장이라 볼 수 있다. ==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판결 관여 논란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100817018247010|이회창 대법관의 화성연쇄 8차 판결…20년 옥살이 무기수 만든 '오판'?]] 진범 [[이춘재]]의 등장으로 논란이 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8차|화성 연쇄 살인 8차 사건]]의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의 주심이 이회창 당시 대법관으로 알려졌다. 아직 본격적으로 재심이 진행되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변호인과 검찰/법원과의 치열한 싸움에[* 경찰은 벌써 백기를 들었지만 검찰과 법원은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아 자신들의 무오류성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주심으로 유죄 판결을 확정지었던 이회창이 가장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2월 6일, 재심 사건 재판부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감당해야했던 윤씨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검찰 역시 [[이춘재]]의 진범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있는 걸 재판 중 인정했기 때문에 재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지는 건 거의 확정된 상황이다.[[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6/2020020602118.html|#]] 윤씨는 당시 재판을 맡았던 판사들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재심 끝 무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상기했다시피 3심의 주심이었던 이회창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주목받고 있다. 결국 2020년 12월 17일, 수원지법에서 재심 끝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의 무죄가 선고되었다.[[https://www.chosun.com/national/2020/12/17/HQCYT2RKN5DFBDJ424G6M5UGXY/|#]] 검찰 역시 항소를 포기하면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사실이 드러난지 1년이 넘도록 이회창은 당시 본인의 판결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회창, version=1020)] [[분류:이회창]][[분류:대한민국의 인물별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