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이항진(李恒鎭) || || 자 / 호 ||유중(侑仲) / 소암(素巖) || || 본관 ||[[광주 이씨]][* 좌통례공파(左通禮公派, 칠곡파) 22대손 '''진(鎭)''' 석(錫) 항렬.] || || 생몰 ||[[1916년]] [[2월 8일]] ~ [[2008년]] [[8월 25일]] || ||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왜관면]] 석전리 귀바위마을[* 인근의 매원리와 함께 [[광주 이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이수택]]도 이 마을 출신이며, [[이수일]]은 관터마을 출신이다.] || || 추서 ||대통령표창 || 이항진은 1916년 2월 8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현 왜관읍) 석전리 귀바위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후 왜관면 왜관리로 이주하였다. 1930년 왜관공립보통학교[* 현 [[왜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31년에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32년, 일제의 황국신민화 교육을 거부하는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http://chilgok.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ilgok&dataType=99&contents_id=GC02302002|#]] 그후 귀향하였으며, 같은 해부터 고향 칠곡군에서 [[이석(1910)|이석]]·[[정칠성]]·최소복(崔小福) 등 동지 35명과 함께 독서회 및 노동자야학회를 조직하여 조선의 독립과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고취하는 등 지하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37년 12월 이영석(李寗錫)과 함께 농촌진흥조합과 농촌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1938년 2월 체포되었으며, 1939년 11월 4일 대구지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져 석방되었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702&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41003&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석방된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2008년 8월 25일 별세하였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분류:칠곡군 출신 인물]][[분류:광주 이씨]][[분류:1916년 출생]][[분류:2008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한국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공산주의자]]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항진(독립운동가), versio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