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법학자]][[분류:사회과학 교수]][[분류:담양군 출신 인물]][[분류:전주 이씨 양녕대군파]][[분류:1917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직속기관장]][[분류:가나자와대학 출신]][[분류:도쿄대학 출신]][[분류:감사원장]] [include(틀:역대 감사원장)] [include(틀: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chosun_400008887.jpg|width=150]] 李漢基 1917년 9월 5일 ~ 1995년 2월 2일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법학자, 관료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 1917년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 장전마을[* [[전주 이씨]] 집성촌이다.][[http://www.d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84|#]]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등학교]](28기)를 다니다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가서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現 [[가나자와대학]]) 및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52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법]]을 가르쳤다.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할 무렵 감사원장 [[서리]]에 임명되었다가 1980년부터 1982년까지 [[감사원]]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 및 은폐에 대한 책임으로 [[노신영]] 국무총리가 사임하자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되었다가 같은 해 7월 [[6.29 선언]]에 따른 내각 개편으로 정식 국무총리가 되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1984년 한일문화 교류기금 설립 이사장을 맡았고, 이 인연으로 1995년 1월 19일 미야자키현 남향촌의 '백제마을' 문화제 참관과 요양을 겸해서 부인과 출국했다가 2월 2일 인근 [[가고시마]]현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하였다. 조선 말기의 학자 석전(石田) 이최선(李最善.1825∼1883)의 고손이며, 월북 과학자 [[리승기]] 박사와 6촌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