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color=#ffffff,#191919><table width=100%> '''{{{#000000,#e5e5e5 이한권의 수상 및 영예 }}}'''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KBL 역대 기량발전상)] }}} || ||<-2><table align=center> [[파일:/image/003/2008/03/25/NISI20080325_0006433784_web.jpg]] || || '''이름''' || 이한권 || || '''생년월일''' || [[1978년]] [[11월 1일]] ([age(1978-11-01)]세)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학교''' || 토성초- 풍납중- [[낙생고등학교|낙생고]] - [[성균관대]] || || '''포지션''' || [[스몰 포워드]] || || '''신체 사이즈''' || 197cm, 88kg[* 누군지 몰라도 이전 버전의 문서에서 180/73으로 적었는데 이 분은 키가 2m 가까이(...) 되는 분이시다.] || || '''프로입단''' || [[2002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2002년 드래프트]] 1 라운드 5 순위 ([[서울 SK 나이츠]]) || || '''소속팀''' || [[서울 SK 나이츠]] (2002~2004) [br] [[부산 kt 소닉붐|부산 KTF 매직윙스]] (2006~2007) [br]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엘리펀츠]] (2007~2012.12) [br] [[전주 KCC 이지스]] (2012.12~2014) || || '''종교''' || [[개신교]] || [목차] == 소개 == 한국의 전 프로농구 선수. 별명은 이름인 이한권에서 유래한 책한권, [[케빈 듀란트|책란트]]가 있다[* 실제로 선수 시절 시즌 중에 관중들 중에 추첨하여 책을 한 권 선물하는 이벤트를 한 적도 있다(...). 이벤트 이름은 '''이 한권의 책(...)'''.]. == 선수 시절 == === 아마추어 선수 시절 === [[잠실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평범한 학생으로 취미로 길거리 농구를 즐기던 이한권은, 농구의 유혹(!)을 도저히 뿌리치지 못한 채 농구부가 있는 [[낙생고등학교]]로 전학을 시도했고, 전학 절차가 여의치 않자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재수(;;)를 통해 낙생고에 입학하게 된다.[* 이바람에 1살 어린 [[진경석]]과 같은 학년이 된다. 또 다른 낙생고 3인방 [[정훈(농구)|정훈]]의 경우, 명지고 시절 이미 1년 유급한 상태로 이한권과는 동갑이다.] 낙생고등학교 3학년 시절, 새롭게 부임한 박성근 감독의 지도 아래 이한권은 [[진경석]], [[정훈(농구)|정훈]]과 함께 고교무대를 휩쓸며 최강트리오로 불렸고, 이후 이들 낙생고 트리오는 대학 중하위권팀이던 [[성균관대학교]]에 98학번 동기로 다같이 입학하게된다.[* 이 트리오의 활약에 힘입어 1998년 [[농구대잔치]]에서 당대 최강 [[연세대학교]]에 13년만에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달성한다. 성균관대가 연세대를 격파한 건 1985년 농구대잔치에서 73-48로 승리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파일:낙생고 및 성균관대 3인방.jpg|width=420&align=center]] 이한권-진경석-박성근 감독-정훈(사진 왼쪽부터) 성균관대 시절 팀내 존재감으로는 [[정훈(농구)|정훈]], [[진경석]]에 밀렸으나, 센터임에도 다양한 플레이에 능한데다 외곽슛도 좋아 프로에서 재평가받을 만한 장신 포워드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 SK 나이츠]]에 1라운드 5순위로 지명된다. === 프로 선수 시절 === 첫 해에는 [[조상현]]의 군 입대와 팀 내 포워드진의 약해진 뎁스등으로 무주공산이 된 스몰포워드자리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신인치고는 준수한 활약이었지만, 주전으로는 부족한 성적인데다 [[조상현|전임자]]가 워낙 대단한 선수여서 상대적으로 묻혔다. 그리고 다음해에 SK는 [[전희철]]을 영입하게 됨으로서 [[식스맨]]으로 전락했고, 이후 군입대를 택했다. [[파일:이한권_KTF.jpg|width=420&align=center]] 군에서 복무하던중 SK는 [[조상현]]과 [[이한권]], [[황진원]]을 내주고 [[방성윤]], [[김기만(농구)|김기만]], [[정락영]]을 영입하는 3:3 빅딜을 행하게 되었고, 이 대형트레이드로 인해서 이한권은 [[부산 kt 소닉붐|부산 KTF 매직윙스]]로 이적하게 된다. 2006-2007시즌을 앞두고 제대했고, 이후 팀에 합류해서는 시즌 초 [[송영진(농구선수)|송영진]]의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빈자리를 맡기도 했지만, 역시 식스맨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한시즌만에 [[이홍수]]와 묶여서 신인인 [[김영환(농구)|김영환]], [[박세원]]과 2:2 트레이드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로 또 팀을 옮겼다. [[파일:전랜이한권.jpg|width=420&align=center]] 영입 당시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하고, 외곽슛이 괜찮은 식스맨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김성철]]의 부상공백을 틈타서 주전으로 도약했고, [[정영삼]]과 함께 팀을 이끄는 큰 활약을 펼쳤다. 전년도 평균 4.0득점에서 평균 10.4득점으로 발전을 해냈고, 모비스를 이끈 [[김효범]]을 제치고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다만 이후에는 공격력이 좋은 [[김성철]], 수비력이 좋은 [[이현호(농구)|이현호]], 신인 [[송수인]], 블루워커 [[이병석(농구)|이병석]], 태종대왕 [[문태종]]등에게 쭈욱 밀리며 식스맨으로 계속 활동했다. 2012-2013시즌은 게다가 팀에 신예 포워드인 [[김상규]], [[차바위]]와 베테랑 [[문태종]], 이현호 등이 팀에 포진해있어서 더더욱 출전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프로아마최강전에서 평균 12득점가량을 넣으며 괜찮은 활약을 보였고, 이 활약으로 당시 베테랑선수가 필요하던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다만 이 트레이드는 자신의 출전시간 보장을 위해 직접 요청한 트레이드라고 한다. [[파일:이한권 2012-13시즌.jpg|width=420&align=center]] [[파일:KCC 이한권 2013-14 시즌.jpg|width=420&align=center]] [[파일:2013-14시즌 KCC의 이한권.jpg|width=420&align=center]] [[전주 KCC 이지스]]에 시즌 중 트레이드되었다. KCC는 선수진이 붕되되면서, 최하위권을 달리고 있는 와중에 득점을 이끌어줄 국내선수가 필요했는데, [[허재]] 감독의 요청에 따라 당시 전자랜드에서 뛰지 못하고 있던 이한권이 이적해 온 것이다. 이적후 허재 감독의 기대치에 맞게, KCC 선수단을 혼자서 캐리하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서울 SK 나이츠]]전에서 대패하는 와중에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16득점을 하고, 5경기동안 15득점 가까이 해주며, 듀란트의 이름에서 딴 별명인 '''책란트'''라는 별명으로 극찬받는 등 팀의 공격의 핵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아쉽게도 시즌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2013-2014시즌에는 다시 식스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으며, 현재는 삼일중학교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1978년 출생]][[분류:2002년 데뷔]][[분류:2014년 은퇴]][[분류:스몰 포워드]][[분류:서울 SK 나이츠/은퇴, 이적]][[분류:부산 kt 소닉붐/은퇴, 이적]][[분류: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은퇴, 이적]][[분류:전주 KCC 이지스/은퇴, 이적]][[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