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rokps.or.kr/357.jpg|width=150]] 李鶴林 1907년 5월 5일 ~ 1972년 1월 10일 [[대한민국]]의 교육자, [[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 다음은 출처 사진이며[[파일:이학림 아내 족보.png]], 덕양군파 13세손 림(林)자 항렬을 쓴다.]다. 그의 [[장인어른]]은 [[신성모]] 전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청주공립농업학교(현 [[청주농업고등학교]]),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강습과를 졸업사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음성보통학교(현 음성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45년 [[8.15 광복]] 후 만방기업주식회사 [[사장]], 중앙사과공사 사장, 주식회사 삼흥사 광업회장, 한국해양개발주식회사 [[회장]] 등을 지내며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이의상(1889)|이의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군수용 원면 부정처리 사건인 원면 사건의 진상 조사에 노력하였다. 같은 해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김주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정석(1917)|이정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 이후로는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무소속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음성군 출신 인물]][[분류:1907년 출생]][[분류:1972년 사망]][[분류: 전주 이씨 덕양군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