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rokps.or.kr/1122.jpg|width=150]] [목차] == 개요 == 1935년 01월 27일 - 2012년 05월 07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이다. 호는 춘강(春江)이다. 1935년 [[경기도]] [[시흥시|시흥군]] 수암면 고잔리(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안산)|고잔동]])에서 태어났다. [[인천고등학교]](52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판사]]를 역임하다가 사직하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시흥시|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민주공화당 [[이영호(1913)|이영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흥시|시흥군]]-[[부천시]]-[[안양시]]-[[옹진군(인천)|옹진군]] 선거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각각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 민주공화당 [[윤국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4년 9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 출범에 따라 신민당 대변인이 되었다. 그러나 1975년 [[김옥선]] 파동 과정에서 김영삼 총재가 보인 어정쩡한 태도로 김영삼과 결별하고 비주류가 되었다. 1976년 전당대회에서 [[이철승]]을 지지하였다. 이후 이철승의 중도통합론이 비판을 받자 1979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소장파 의원들과 자민동지회를 결성하여 다시 김영삼을 지지하였다. 1979년 6월 김영삼 체제가 출범하자 신민당 정책위의장이 되었다. 한편 신민당 국회의원 시절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밀월관계를 유지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1980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입건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정치규제도 당하였다. 이 때 모진 고문에 못 이겨 허위사실을 자백했다는 논란이 있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고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시흥시|시흥군]]-[[광명시]]-[[안양시]]-[[옹진군(인천)|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에 반기를 들고 [[이철승]], [[이택희]] 등과 [[이민우 구상]]을 지지하였다. 이 때의 상황을 [[제5공화국(드라마)]]에서는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사주를 받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안양시 갑(현재의 [[만안구]])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이인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김용남(1950)|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이 말썽이 되자 잠적하였다가 김영삼 정권 때 사법처리되었다. == 관련 문서 == * [[정치인/목록]] * [[법조인/목록]] [[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안산시 출신 인물]][[분류:제8대 국회의원]][[분류:제9대 국회의원]][[분류:제10대 국회의원]][[분류:제12대 국회의원]][[분류:신민당(1967년) 국회의원]][[분류:신한민주당 국회의원]][[분류:1935년 출생]][[분류:201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