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九 1920년 11월 3일 ~ 1998년 10월 29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아호|호]]는 백사(白史)이다.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이인]]의 맏사위이다. 1920년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과정을 졸업하였다. 1963년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여 민정당 당무위원을 지냈다. 그러다가 [[한국독립당(1963년)|한국독립당]]으로 당적을 변경하여 한국독립당 당수를 지냈다. 이후 통합야당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몸담았다. 1969년 [[3선 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73년 신민당을 탈당하여 [[민주통일당]]에 몸담았고, 민주통일당에서 간사장과 부총재를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남재희]] 후보와 신민당 [[김영배(1932)|김영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여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제2번)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한국당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제1번)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1986년 [[유한열]] 등과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1986년)|민중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이후 민중민주당이 다시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자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있다가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였다. [[분류:제11대 국회의원]][[분류:제12대 국회의원]][[분류:민주한국당 국회의원]][[분류:신한민주당 국회의원]][[분류:민중민주당(1986년) 국회의원]][[분류:1920년 출생]][[분류:1998년 사망]][[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와세다대학 출신]][[분류: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