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池田屋事件''' }}} [목차] == 개요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QGdxMjtscM)]}}} || || [[NHK 대하드라마]]에서 재현된 이케다야 사건[* 당시 이케다야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고 한다.] || 이케다야 사건은 1864년 7월 8일, [[조슈 번]]과 [[도사 번]]의 [[존황양이]] 지사(志士)들이 [[아이즈 번]]의 [[다이묘]]이자 교토수호직[* 교토의 치안 및 경비를 담당하는 직위. 오늘날로 따지면 수도경비사령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하고 [[고메이 덴노]]를 [[하기 시|하기]]로 납치하려는 모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막부]]의 [[신선조]]에게 즉결 처분 및 체포된 사건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메이지 유신]]을 1년 늦춘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 상세 == [[시모노세키 전쟁]]과 8.18 정변으로 조슈는 사실상 교토에서의 실권을 모두 잃어버린다. 게다가 고메이 덴노와 아이즈, [[사쓰마]]가 막부와 타협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자, 도막파였던 조슈는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당시 교토에서 조슈, 사쓰마, 아이즈, 게다가 막부까지 [[낭인]]들을 고용하여 반대 파벌을 죽이고 다녔는데,[* 막부의 [[신선조]]가 대표적인 예.] 그 중에서 조슈 번의 낭인들은 주로 산조 키야마치(三条木屋)의 이케다야(池田)라는 여인숙에서 만나 회의를 하였다. 그러던 와중, 6월에 [[신선조]]의 부장이었던 [[히지카타 토시조]]는 조슈 번의 지사 [[https://ja.wikipedia.org/wiki/古高俊太郎|후루타카 슌타로]]를 체포한다. 토시조는 잔혹한 고문 끝에 후루타카로부터 조슈 번의 지사들이 [[https://ja.wikipedia.org/wiki/一会桑政権|이치카이소 정권]] 요인[* 교토 수호직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https://ja.wikipedia.org/wiki/禁裏御守衛総督|금리어수위총독]](교토 어소와 [[https://ko.wikipedia.org/wiki/오사카만|오사카만]]을 방어하는 직책) '''[[도쿠가와 요시노부]]''', 교토소사대(교토 치안 담당)이자 [[https://ko.wikipedia.org/wiki/구와나번|구와나 번]] 번주 '''[[https://ko.wikipedia.org/wiki/마쓰다이라_사다아키_(1847년)|마쓰다이라 사다아키]]''', 황족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들을 암살하고, '''교토에 불을 질러''' 혼란을 야기시킨 후, 그 사이에 아이즈 번의 다이묘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하고 덴노를 하기로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히지카타가 조슈 번의 지사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 자백을 조작했다는 설이 있다. 납치를 모의했다는 내용이 막부 측의 기록에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때 자백을 한 후루타카가 얼마 안 있어 일어나는 [[금문의 변]] 때 죽게 되면서 진실을 확인할 방법마저 사라진다.] [* 목조건물이 밀집한 당시 일본의 특성상 아무리 소방설비와 인력을 갖추어도 잠깐의 화재로 도시가 전소될 위험이 있었던지라 [[방화죄]]는 미수조차도 극형으로 다스릴정도로 인식이 안좋았다. 요즘으로 치자면 테러행위와 같은 것이었기에 진위여부를 떠나 이 일로 한동안 유신지사들의 인식이 상당히 안좋아졌고, 신센구미는 테러로부터 도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해져 막부로부터 확실한 인정과 지원을 받게 된다.] 국장 [[곤도 이사미]]는 이를 듣고 바로 신선조를 출동시켰고, 7월 8일 밤 10시, 신센구미가 조슈 번의 지사들이 모여있던 여인숙인 이케다야를 급습한다. 신선조는 이 과정에서 대원 1명을 잃고[* 사망한 대원은 [[https://ko.wikipedia.org/wiki/오쿠자와_에이스케|오쿠자와 에이스케]]. 사건 당시 곤도 이사미 부대 소속이었다.] [[토도 헤이스케]]가 부상당했으며, 조슈 번은 7명이 죽고 24명이 체포된다. 이 때 많은 지사들을 잃은 조슈는 또 다시 교토에서의 세력이 크게 위축된다. 당시 [[기도 다카요시]]는 옆의 [[https://ko.wikipedia.org/wiki/쓰시마_후추_번|쓰시마 후추 번]]저에 있어서 체포는 면하고, [[금문의 변]] 때는 추격을 따돌리며 어소 경비를 맡은 번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의 여인숙이었던 이케다야는 수족관[* 유일하게 원래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수족관 폐업 후에 건물 자체는 철거하고 다시 지었다. 현지에 있는 비석은 수족관 관계자가 세운 것.], [[KFC]], 파칭코 등을 거쳐 2009년 부터는 교토의 신선조 테마로 꾸며진 이자카야가 되었다. 대부분의 창작물에서는 1번대 대장인 [[오키타 소지]]가 여기서 각혈하고 시한부선고를 받는 것으로 나온다. [[https://ko.wikipedia.org/wiki/이케다야_사건|참여 신선조 명단과 관련자 명단은 이 사이트 참고.]] [각주] [[분류:메이지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