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satoman.fc2web.com/tsuneo_ikeda.gif]] 남편 이케다 다카마사와 함께 찍은 사진. 池田厚子, [[1931년]] [[3월 7일]]~ (현재 [age(1931-03-07)]세) [목차] == 개요 == [[쇼와 덴노]](히로히토)와 [[고준 황후]](나가코)의 2남 5녀 중 4녀. [[아키히토]] 덴노의 넷째 누나. 미혼 시절의 이름은 요리노미야 아츠코(順宮厚子) 내친왕. 결혼 후 딸만 줄줄이 4명을 낳은 [[나가코 황후]]는, 사람들로부터 '''온나바라(女腹)'''[* 딸만 낳는 여자]라고 불리며 비난을 당했다. 심지어는 [[후궁]] 제도의 부활까지도 거론될 지경이었다고. 실제로 신하들은 [[화족]] 가문의 딸들 중에서 후궁 후보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가코 황후]]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쇼와 덴노]]가 이를 거부했고, 2년 후인 1933년 장남 [[아키히토|츠구노미야 아키히토]] 친왕이 태어나고 4년 후인 1935년 차남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이 태어나면서, 후궁 제도 부활론은 잠잠해졌다. == 성장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Princess_Atsuko.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Crown_Prince_Akihito_and_sisters1950-9.jpg]] 남동생 [[아키히토]] 황태자, 여동생 [[스가노미야 타카코]] 공주와 함께. [[일본 황실]]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친부모 대신 시종들에 의해 양육되는 것이 전통이었다.[* 이 오랜 전통을 깬 것은, 1959년 [[아키히토]] 황태자에게 시집온 [[쇼다 미치코]]였다. [[미치코 황태자비]]는 2남 1녀 모두를 자신의 곁에 두고 키웠고, 이때부터 [[일본 황실]]에서도 아이들을 친부모의 곁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아츠코 공주도 1936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구레타케(呉竹) 기숙사에서 첫째 언니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 셋째 언니 [[다카쓰카사 가즈코|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와 함께 자랐다.[* 둘째 언니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는 생후 6개월 때 병으로 죽었다.] 1939년 태어난 막내 [[스가노미야 타카코]] 공주도 구레타케 기숙사에 합류했다. [[가쿠슈인|여자 가쿠슈인]]에 입학하였는데, 아츠코 공주가 재학 중이던 시절에 학제가 바뀌어 오늘날의 가쿠슈인 [[여중|여자 중등과]]와 가쿠슈인 [[여고|여자 고등과]]가 되었다.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졸업한 후에는 [[가쿠슈인]] 여자단기대학[* 오늘날의 [[가쿠슈인]] 여자대학] 문과에 입학, 2학년 때 가정생활과로 [[전과]]하여 졸업했다. == 결혼 == 1951년 [[시코쿠]]를 방문하였다가 [[오카야마]]에서 '''이케다 다카마사(池田隆政)'''를 만나, 선을 보고 약혼했다. 당시 아츠코 공주의 할머니 [[사다코 태후]]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쇼와 덴노]]는 [[궁내청]] 장관에게 명하여 약혼을 정식으로 발표하도록 했다. 그리고 1952년 10월 10일, 아츠코 공주는 다카마사와 결혼하여 황족의 신분을 이탈했다. 옛 [[화족]] 가문의 아들이지만[* 다카마사의 아버지 이케다 노부마사(池田宣政)는 1947년의 [[신적강하]] 이전까지 [[후작]]이었다.], [[공주]]의 신랑감이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오카야마]]의 농장주'''라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다카마사의 농장은 1953년 이케다 산업 동ㆍ[[식물원]]을 거쳐 1960년에는 주식회사 이케다 [[동물원]]이 되었고, 다카마사가 원장으로 취임했다. ~~결국 동물원 원장 사모님이 되었네?~~ 한편 다카마사는 아츠코의 작은올케인 [[히타치노미야 하나코 비]]와 육촌 친척이기도 하다. == 질병 및 활동 == 1965년 무렵, 이케다 아츠코는 '''[[패혈증]]'''으로 [[오카야마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 '''장기 입원'''했다. 이미 차녀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생후 6개월)와 장녀 [[히가시쿠니 시게코]](만 35살)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슬픔을 겪은 [[히로히토]] 덴노와 [[나가코 황후]] 내외는, 아츠코마저 앞세울까 크게 걱정하여 [[도쿄]]에서 [[오카야마]]까지의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자주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아츠코는 병에서 회복하였지만, '''자녀는 끝내 낳지 못했다.''' 병에서 회복한 아츠코는 일본 [[적십자]] 오카야마 지부 유공회 명예회장 등을 맡기도 하였고, 1988년부터는 셋째 언니 [[다카쓰카사 가즈코]]의 뒤를 이어 '''[[이세신궁]]의 [[신관]]'''을 맡았다. 아츠코가 점점 늙고 쇠약해짐에 따라, 2012년부터는 '''조카 [[구로다 사야코]]가 보조 신관'''이 되어 [[고모]]를 도왔다. == 과묵한 성품과 조용한 말년 == 활달한 성격과 화려한 언동으로 유명한 막내 여동생 [[시마즈 타카코]]와는 대조적으로, 아츠코는 '''수수하며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데다가,'''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먼저 말하지 않는 등의 '''과묵'''하고 별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2006년 [[9월 6일]], 조카며느리 [[키코 비]]가 [[히사히토]] 친왕을 낳자, 아츠코는 남편 다카마사와 함께 '''"무사히 [[출산]]했다니 기쁘고 마음이 놓입니다. 축하하며 아기가 건강히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며 기쁨과 축하를 표현하였다. 2012년에는 다카마사와 사별하여 혼자가 되었다. 2020년 기준으로 [[아키히토]] 덴노의 여자 형제들 중 [[시마즈 타카코]]와 더불어 유이하게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노령으로 많이 쇠약해진 탓인지 2017년 6월부터는 [[이세신궁]] [[신관]]직을 퇴임하였고, 보조 신관이던 조카 [[구로다 사야코]]가 새 신관으로 취임했다. == 관련 문서 == * [[아키히토/가족관계]] * [[공주]] * [[딸/4녀 이상]] [[분류:일본의 공주]][[분류:1931년 출생]][[분류:치요다구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