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두산 베어스 1차 지명선수)] ||<table align=center> '''이름''' || 이진 || || '''출생''' || [[1966년]] [[9월 15일]] (만 [age(1966-09-15)]세), [[서울특별시]] || || '''학력''' || [[배명고등학교 야구부|배명고]] -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좌투좌타]] || || '''프로입단''' || [[1989년]] [[OB 베어스]] 1차 지명 || || '''소속팀''' || [[OB 베어스]](1989~1993) || [목차] == 소개 == [[OB 베어스]]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로, 보직은 [[투수]]. == 선수경력 == 지금의 야구팬들에게는 존재감도 없는 이 선수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지명 당시 [[OB 베어스]]가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 출신 김기범을 거르고 무명에 가까운 이 선수를 지명'''했기 때문. 그것도 [[OB 베어스]]가 '''주사위에서 {{{#ff0000,#ff0000 이겨서}}}''' 지명 우선권을 가져간 상태였다.[* 당시 서울지역 연고 우선권은 주사위로 결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실시리즈]] 문서 참조.] 지명 당시 OB가 [[김기범(야구)|김기범]]을 거른 이유를 설명할 때 한 발언은 '''"현재의 실적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했다."'''였다. 지금도 특이한 좌완 사이드암 투수였으며 최고구속이 150km를 넘을 정도로 강속구를 구사했으나 제구가 되지않는 치명적인 단점이 발목을 잡으며 결국 은퇴하게 된다. 첫 해인 [[1989년]]에는 김기범과 같은 7승을 거두면서 OB의 선택이 나름 괜찮은 것처럼 여겨졌으나 2년차부터 결국 본 실력을 드러내며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결국 통산 10승 10패 2세이브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방위병 소집해제 후 복귀하였으나 소리소문도 없이 야구계에서 은퇴했다. === 연도별 성적 === ||<-15><table align=center><bgcolor=#ed1c24><:>{{{#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131230>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볼넷}}} || {{{#ffffff 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WHIP}}} || || 1989 ||<|5> [[OB 베어스|OB]] || 39 || 97 || 7 || 4 || 2 || - || 4.36 || 86 || 4 || 76 || 1 || 81 || 1.67 || || 1990 || 21 || 38⅓ || 1 || 4 || 0 || - || 5.40 || 38 || 2 || 35 || 6 || 25 || 1.90 || || 1991 ||<-13> 1군 기록 없음 || || 1992 || 12 || 30⅓ || 2 || 0 || 0 || - || 4.45 || 26 || 4 || 18 || 0 || 15 || 1.45 || || 1993 || 10 || 18⅔ || 0 || 2 || 0 || - || 10.13 || 18 || 1 || 22 || 5 || 10 || 2.14 || ||<-2><bgcolor=#ffff88><color=#373a3c> '''[[KBO 리그|KBO]] 통산''' [br] (4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82 || 184⅓ || 10 || 10 || 2 || - || 5.18 || 168 || 11 || 151 || 12 || 131 || 1.73 || == 여담 == * 지명 당시 OB로서는 나름대로 참신한 지명이라고 생각했었겠지만 합리적인 근거없이 참신하기만 한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만 남겼다. 그리고 OB 베어스는 그 후의 신인지명에서도 주사위 승부에서 '신의 손'이라고 불리던 [[LG 트윈스]]의 정영수 과장에게 연전연패하면서 [[송구홍]],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심재학]] 등 서울출신의 대어를 놓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유지현]] 대신 [[류택현]]'''을 지명하는 등 신인 농사를 시작부터 망쳐서 90년대 초반 OB 베어스의 암흑기의 한 원인이었던 스카우트진의 썩은 눈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6년 출생]][[분류:투수]][[분류:좌완 투수]][[분류:좌투좌타]][[분류:두산 베어스 은퇴/이적]][[분류:성균관대학교 출신]][[분류:배명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