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 역대 육군참모총장)] ||<tablewidth=100%><bgcolor=red><tablebordercolor=red> {{{#FFF '''역임한 직위'''}}} || ||<bgcolor=whit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제1야전군사령관)] [include(틀: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 }}} || ||<-2><tablebordercolor=#dd0000><tablewidth=420><tablealign=right><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00, #f00 20%, #f00 80%, #d00)"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ffffff 대한민국 제28대 육군참모총장}}}]][br]{{{#ffffff {{{+1 이진삼}}}[br]李鎭三 | Lee Jin-sam}}}'''}}}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진삼 인터뷰.png|width=100%]]}}} || ||<|2><colbgcolor=#dd0000><colcolor=#ffffff><width=100> '''출생''' ||[[1937년]] [[2월 10일]] ([age(1937-02-10)]세)||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 '''본관''' ||용인 이씨[* [[이일]]과 동성동본으로, 용인 이씨 종친회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축사 자격으로 자주 참석한다.]|| ||<|4> '''재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28대 육군참모총장|| ||[[1990년]] [[6월 11일]] ~ [[1991년]] [[12월 5일]]|| ||<bgcolor=#f5f5f5,#2d2f34>제2대 체육청소년부 장관|| ||[[1991년]] [[12월 19일]] ~ [[1993년]] [[2월 25일]]|| ||<-2><:><bgcolor=#fff,#1f2023><color=#373a3c,#ddd>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 width=100%><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colbgcolor=#dd0000><colcolor=#ffffff> '''배우자''' ||강순정 || || '''자녀''' ||슬하 1남 2녀 || || '''학력''' ||은산국민학교 {{{-2 ([[졸업]])}}}[br][[부여중학교]] {{{-2 ([[졸업]])}}}[br][[부여고등학교]] 졸업{{{-2 ([[졸업]])}}}[br]육군보병학교 {{{-2 ([[졸업]])}}}[br]육군대학 {{{-2 ([[졸업]])}}}[br]국방대학원 {{{-2 ([[행정학]] / [[석사]])}}}[br][[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2 ([[행정학]] / [[석사]])}}}[br][[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2 (행정학 / [[석사]])}}} || || '''종교''' ||[[개신교]] {{{-2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 || '''의원 선수''' ||'''1''' || || '''의원 대수''' ||[[제18대 국회의원|'''18''']] || || '''경력''' ||제18대 국회의원[br]제2대 [[문화체육관광부|체육청소년부]] 장관[br][[국방위원회|국회 국방위원회 위원]][br][[자유선진당]] 최고위원[br]자유선진당 전당대회 의장 || ||<-2> '''군사 경력''' || || '''임관''' ||[[육군사관학교]] {{{-2 (15기)}}} || ||<|2> '''복무''' ||<bgcolor=#f5f5f5,#2d2f34>[[대한민국 육군]] || ||1959년 ~ 1991년 || || '''최종 계급''' ||대장 {{{-2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육군참모총장 || || '''주요 보직''' ||육군 제21보병사단장[br]육군 제3군단장[br]육군 [[제1야전군사령관]] ||}}}}}}}}}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자 [[군인]], 그것도 '''[[하나회]]'''에 몸담았던 [[대한민국 육군]]의 '''정치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대장(계급)|대장]]. == 생애 == [[1937년]] [[2월 10일]]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화산중석[* [[1993년]] 폐쇄된 청양중석]과 구봉광업소[* [[1971년]] 폐쇄. 대한민국 자유지구 중 최대의 금광] 중 1개 광구의 소장을 역임해서 나름 유복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 '''[[RADO]] [[손목시계]]'''를 찰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전고등학교]]를 다니다 3학년 때 [[부여고등학교]]로 전학을 와서 졸업했다고 한다. [[1955년]] [[육군사관학교]] 15기로 입학해 [[1959년]]에 [[보병]][[소위]]로 [[임관]]했다. 동기로는 [[고명승]], [[나중배]], [[민병돈]], [[권영해]] [[장군]]이 있다.[* 셋은 [[하나회]] 소속이고, [[권영해]]는 소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지만 후에 국방부 장관이 되어 하나회를 청산한다.] 임관자 성적 기준으로 176명 중 120등으로 졸업했으며 첫 보직은 [[제25보병사단]] GP장이었다고 한다. 본인 발언에 따르면 생도 시절 '''[[장준하]]의 [[사상계]]'''를 읽으며 [[이승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http://www.newstnt.com/news/articleView.html?idxno=28095|#]] === 군인 시절 === ||<table align=right><table width=25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진삼.jpg|width=100%]]}}}|| || 군인 시절의 이진삼 || 다른 [[하나회]] 장성도 그랬듯, 이진삼도 [[윤필용]] 라인에 속했다. 애초에 [[윤필용]]과 만난 계기가 [[전두환]] 때문이었다.[[http://www.newstnt.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66|#]] 한편 [[윤필용]]의 권유로 방첩부대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http://dongne.donga.com/2018/12/28/95-동아일보-사람들-조동화/|변영권, 조동화 테러사건]]으로 조사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월남으로 떠나게 된다. 1968년 11월, [[서산]] [[공비|무장간첩]] 섬멸작전에 투입되어 [[공비|무장간첩]] 2명을 [[포복]]으로 20m까지 가서 [[수류탄]] 투척으로 폭살한 바 있다. 중령 시절 [[제8기동사단|제8보병사단]] 21연대 3[[대대장]]을 맡았다.[* 당시 1군사령관은 [[최세인]] 대장, 5군단장은 [[류병현]] 중장, 사단장은 박노영 준장, 연대장은 [[노태우]] 대령이었다.] [[윤필용 사건]]의 여파로 [[제15보병사단]] [[부연대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사단장은 김학순 장군으로 박노영 장군과 동기생이다. 김학순 장군이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차장으로 발령받으면서 박완식 장군이 신임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이 당시 전역을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차규헌]]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소장), [[전두환]] 제1공수여단장, [[노태우]] 9공수여단장(준장) 등의 도움으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로 이동했다. 대령 때는 국방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제20기계화보병사단]] [[제61기계화보병여단|제61보병연대장]], 육군 사격지도단장직을 역임했다.[* 이 당시 [[박종규]] 대통령경호실장이 대한사격연맹 총재직을 맡고 있었고 서울 태릉에서 국제사격선수권대회를 개최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이 몹시 진노했다고 한다. [[청와대]]에 불려간 [[이세호]] [[육군참모총장]]은 후임 사격지도단장을 찾다가 주위의 추천으로 이진삼을 발탁했다.] 1980년 1월 [[육군사관학교|육사]] 15기 동기생 중 최초로 [[준장]]으로 진급했다. 1980년 7월 한일수 장군([[육군사관학교|육사]] 11기)에게 사격지도단장직을 이임하고 [[제9공수특전여단]]장으로 부임했다. 준장 시절 특전사 [[참모장]]을 지내며 [[특공무술]]을 고안한 창시자 중 하나라고 하는데, 정작 특공무술 항목에는 이진삼의 이름이 없다. 특공무술을 고안한 창시자 명단에 장수옥, 박노원, 이원익 밖에 없어 논란이 있다. 1980년에는 특전사 참모장에서 자리를 옮겨 [[육군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제9공수특전여단장]]에 취임했는데, 이는 단순히 운 좋은 수준이 아니라는 해석이 강하다. 바로 [[하나회]]의 자기 세력 챙기기이자 비 [[하나회]] 견제 차원에서 이뤄진 인사였다. 이진삼의 바로 전임 [[여단장]]인 윤흥기 [[준장]]은 바로 [[12.12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 측'''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갑종장교]] 출신으로 [[하나회]]가 아니었다. 윤흥기 장군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특전사 9여단 병력을 데리고 [[인천직할시]]에서 [[서울특별시]]로 출동했는데, 서울로 가던 도중에 진압군 측 최고 지휘관이었던 육군[[중장]] [[윤성민]]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육군참모차장]][* 참모총장 [[정승화]]는 합수부측에 납치되는 바람에 육본 2인자인 참모차장이 진압군 총지휘관이 됐다.]이 출동을 취소하고 부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군끼리의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해 상호 병력을 모두 철수시키자는 [[전두환]] 장군 측의 신사협정 제안을 진압군을 지휘하는 [[육군본부]] 측이 받아들이는 바람에 진압군측 총책임자였던 [[윤성민]] 장군이 윤흥기 장군에게 회군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윤흥기 장군은 반란군 측에 가담하지 않고 진압군의 명령에 따라서 [[전두환]]에게 밉보인데다가, [[하나회]]가 유달리 경계한 [[갑종장교]] 출신이라서 [[전두환]]의 말을 잘 듣는 [[하나회]] 인사로 갈아치울 필요가 있었고, 그 [[하나회]] 인물이 바로 이진삼이란 얘기이다. 이후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소장 때 [[제21보병사단]]장, 육군정보사령관[* 본인의 전공인 정보계통 보직으로 발령받아서 일했지만 정치테러를 사주하는 등 독재정권에 빌붙어 문제를 일으켰다.], [[제3군단]]장을 거쳤다. [[하나회]] 소속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겉돌았는데, 이는 당시 [[하나회]] 내에서 [[전두환]] 계파가 노태우 쪽 인사들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당장 21사단이나 3군단은 육군 내에서 가장 근무환경이 열악한 편에 속한다. 이후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자 [[노태우]] 라인에 속했던 이진삼이기에 [[노태우]]의 후광으로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육군참모차장]]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이진삼이 5공시절 한직에 있다보니 야전군사령관 등 군 수뇌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관례였던 육군참모차장을 거치게 한 것이다. 당시 육참총장은 [[이종구(군인)|이종구]]였다.] 그리고 이진삼은 당시 3군 사령관인 [[전두환]] 라인 [[고명승]]보다 중장은 1년, 대장은 1년 반이 늦었지만 1990년에는 [[고명승]]을 꺾어버리고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 또한 동기였던 [[민병돈]] [[육군사관학교|육사]] 교장도 1989년 3월에 [[육군사관학교|육사]] 45기 졸업식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항명하면서 자의반 타의반 군문을 나왔고, 마침내 이진삼은 [[육군사관학교|육사]] 15기의 실세가 되었다.] 여기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계산도 포함되었는데, [[전두환]] 계파인 [[이종구(군인)|이종구]]를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으로 영전시키면서 자신의 라인인 이진삼을 육참총장으로 올려서 일종의 대결구도로 만든 것.[* 다만 [[이종구(군인)|이종구]]는 [[노태우]]와 [[경북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여서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인 [[이종구(군인)|이종구]]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었는데[* 둘이 싸운게 나름 유명해서 훗날 이진삼이 기자들한테 '내가 [[이종구(군인)|이종구씨]]랑 사이 안 좋은거 다들 알잖아요?'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국방개혁 문제가 요인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중심의 권한을 줄이고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의 권한을 키우려고 했는데 여기에 이진삼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 반발했고 [[전두환]] - [[노태우]]간의 [[하나회]] 계파갈등이 얽히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다. 결국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전두환]] 라인인 [[김진영(군인)|김진영]][* [[김진영(군인)|김진영]]은 [[육군사관학교|육사]] 17기의 선두주자였고 33경비단 단장을 맡을 정도로 [[전두환]]이 여러모로 총애하던 인물이었지만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서 한직을 맴돌았다. [[노태우]]는 [[김진영(군인)|김진영]]도 날리고 싶어했으나 자신의 퇴임 이후 [[하나회]]가 분열될 것을 우려했고, [[김진영(군인)|김진영]]이 [[노태우]]에게 충성맹세를 하자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대장을 달아준 다음, 참모총장을 달아주게 된다.]에게 자리를 넘기며 퇴임한다. [[이종구(군인)|이종구]] 장관도 15일 뒤에 동반 경질되었다. [[김진영(군인)|김진영]]은 [[전두환]] 라인이었고, [[노태우]] 입장에서는 자신의 대통령 임기도 끝을 바라보고 있고 인망이 넓은데다가 [[전두환]] 라인의 수장격인 [[김진영(군인)|김진영]]을 버리기 부담스러운 것도 있어 임기 말에 일종의 유화책을 쓴 것.[* 당시 라이벌은 [[노태우]]계인 이문석이었는데, [[노태우]] 본인이 이문석을 앉힐 경우 생길것으로 예상된 [[전두환]]계의 반발과 결정적으로 이문석이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아 건강문제가 생긴 것도 원인이었다.] === 정치 경력 === ||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080410140254561.jpg|width=150]] || || 정치인 시절 프로필 사진 || [[1991년]] 예편 후에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s-6.1.2|체육청소년부장관]]에 임명, [[노태우]] 정권 만료 때까지 재직했다. 1993년 정보사령관 시절의 정치테러로 인해서 구속되었다. 이로 인해 징역 2년을 구형받았는데 당시 수사검사가 [[천성관]]이었다. 그래서인지 훗날 이진삼이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천성관이 비리 의혹으로 [[검찰총장]]에서 낙마하자 매우 역력하게 좋아했다는 후문.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종필]]을 저지하기 위해 [[신한국당]] 후보로 부여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김종필이 워낙 거물이었던지차 2배가 훨씬 넘는 차이로 참패하게 된다. 이후 [[1998년]] [[DJP연합]]으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자 나라의 2인자가 된 고향 선배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지구당 위원장 직을 사퇴함과 동시에 탈당함으로써 정계에서 잠정적으로 은퇴했다. 이후에도 부여 출신으로 이 곳을 기반으로 하는 [[김종필]]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그를 띄워주었고, 결국 [[김종필|JP]]가 은퇴하고 [[자유선진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 결국 [[2008년]]에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충남 [[부여군]]-[[청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제18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국회의원 임기를 거치며 여러가지 논란을 일으켰고 [[2012년]]에는 같은 1군 사령관(대장) 출신인 [[김근태(군인)|김근태]] 장군에게 패하여 재선엔 실패했다. 당선된 [[김근태(군인)|김근태]]가 의원직을 잃으면서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 의사를 표명한 바 있으나, 정식으로 출마하지는 않고 정계를 은퇴했다. === 근황 === 2016년에 '''별처럼 또 별처럼'''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중부대학교]] 등 충청권 대학교에 (측근들을 대동하고) 출판기념회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에는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8291|해당 기사(뉴스타운)]] 그리고 누군가가 불법으로 신형 [[전투복]]을 입수, 착용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거기에 입은 점퍼는 [[비행복|비행 점퍼]]로 조종사, 공수기 승무원, 기상무장사 등 공중근무자가 아니면 입으면 안 되는 거다. 물론 일선 행정직에 있더라도 입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원래 조종특기인 사람들이다. 게다가 전쟁 나면 전투기를 몰아야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이후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사건사고, 논란 == === 정치 테러 및 약속 불이행 === [[국군정보사령부|육군정보사령관]] 시절 자신과 이상범 정보사 감찰과장 등이 정치 테러에 가담한 이씨 일행 4명에게 각각 2억원씩 지급하기로 약속하고서는 일을 성사시킨 후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이진삼의 주도로 이뤄진 주요 정치 테러는 다음과 같다. 이쯤되면 이진삼은 거의 [[김태촌]] 수준의 [[정치깡패]]다. * 1985년 11월 15일: 상도동 [[김영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가택 잠입, 서류 탈취 * 1985년 12월 24일: 우이동 [[문익환]] 목사 가택 잠입, 서류 탈취 * 1986년 5월: 신대방동 [[양순직]] [[신한민주당]] 부총재 가택 잠입, 서류 절취 * 1986년 6월: 양순직 신한민주당 부총재 린치 사건([[신대방동]] 자택 앞) * 1986년 7월: 민주당 [[김동주(정치인)|김동주]] 의원 린치 사건(여의도 삼부아파트 앞) 1993년 8월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과 관련, 구속 기소돼 징역 2년이 구형되었고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를 적용,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동생 이진백 역시 1988년에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던 [[오홍근]] 기자에게 [[오홍근 테러사건|테러사건]]을 일으켜 정보사령관에서 쫓겨나 예편당했다. --[[똥별]]형제-- === 군번줄 지적 논란 === [[제18대 국회의원]] 재직 중 [[천안함 피격사건]] 관련 청문회에서 군기 문제를 들먹이며 각군 [[참모총장]]들에게 [[군번줄]] 안 차느냐와 [[경례]] 태도가 불량하다는 등의 다소 주제에서 벗어난 지적을 하였다. [[김태영(군인)|김태영]]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은 '''[[군번줄]]은 전시에 필요한 물건이지 평시인 국회 청문회에 차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하였다. 물론 군인이라면 항상 차고 있어야하는 [[군번줄]]을 평시에 차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는 점에서 김태영 장관의 태도도 비판을 받을 점이 많았고 이진삼도 김태영 장관을 질책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진삼이 과연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점과 ''''[[개소리|그 시점에서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는가]]''''라는 점. '''이 지적은 당시 [[천안함 피격사건]]이라는 한시가 급한 중요 주제를 다루는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시간낭비성 발언이었다.''' 실제로 이후 [[YTN]]이 [[돌발영상]] 코너를 통해 이진삼이 육참총장 시절에 경례를 불량하게 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올려서 그가 기초군기 상습위반자로 후배들 욕할 자격이 없음을 까버리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297534|링크]] 군내 불법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핵심 인 건 덤. 이진삼의 기초군기 위반 행위는 이것만이 아닌데, 당시엔 규정상 포제 모장을 달아야 했던 [[전투모]]에 근무모용 철제 모장을 달고 다니고, [[전투복]]이 아닌 육군 [[근무복]] 착용시엔 [[군사경찰|헌병]]이나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소속원, [[단화]] 미지급으로 인해 근무복에도 [[전투화]] 신어야 하는 [[수도방위사령부]] [[병(군인)|병]] 등을 제외하곤 [[단화]]를 신어야 함에도, [[버나드 몽고메리|지 계급을 내세워 근무복에 상시 전투화를 신고 다니는 위규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몽고메리여 뭐여~~ 모 네티즌의 말에 의하면 이진삼은 [[도조 히데키|"장성 시절에도 하사 위치에서나 생각하고 처리할 만한 자잘한 일에 신경 쓴다"]]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이진삼 [[하사]]''''였다고 한다. 저 발언 영상을 보고 예비역 뿐 아니라 이진삼의 실체를 아는 현역 간부들도 모두 비웃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해군참모총장]] [[김성찬(군인)|김성찬]] [[제독]]에게 "해군은 뭔데 [[장군]]이라고 안 하고 왜 [[제독]]이라고 하고, [[정복(의복)|정복]]에 [[수장(장식)|수장]]을 쓰느냐? 육군처럼 장군이라고 하고 별 계급장만 달고 다녀라"는 개념없는 ~~누가 [[하나회]] 끄나풀 아니랄까봐 [[전두환|지 오야붕]] [[이순자|마누라]]가 20여년 전에 씨부린 ~~[[망언]]을 재탕하면서 돌대가리 인증을 제대로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713483|#]] ~~당연히 [[김성찬(군인)|김성찬]] [[제독]]은 그냥 대놓고 씹었다.~~ === 그 외 논란 === * 국회 국방위에서 해공군 축소론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육군의 [[기계화보병|기계화]]와 [[병력]] 감축을 절대 반대하는 등 스스로 구닥다리 쪽수 위주 [[보병|보방부]] 마인드에 쩔은 [[퇴물]] [[똥별]]임을 또 다시 인증했다.[[http://blog.naver.com/joo99416/220637289644|#]] ~~이유는 간단하다. 1명이라도 더 입대해야 1명이라도 더 자기가 똥군기를 잡을 인원이 생긴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삼이 육군참모총장을 하던 시절에 [[이종구(군인)|이종구]]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갈등을 빚던 맥락을 생각해보면 그 때와 똑같은 수준의 행동을 하는 셈이다. * 같은 해에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4&aid=0000128378|여자 문제로 고발까지 당하는 등 여러모로 막장임을 인증했다.]] * 이런 이유에서 이진삼은 [[http://the300.mt.co.kr/newsView.html?no=201506 1616477688514|"예전엔 방산비리가 대형 비리였지만, 요즘은 '''생계형'''이다"]]라는 너무나도 황당한 발언을 한 [[한민구]]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국방부장관]], 갑질했다가 쫓겨난 [[박찬주(군인)|박찬주]] 예비역 대장, 훈련을 빙자한 갑질로 결국 좌천된 [[윤의철]] 육군 [[중장]]과 더불어 '''아예 대놓고 전 국민에게 개무시를 당하며 병졸 취급당하는 단 넷 뿐인 장성'''이다. 그러나, 똑같은 취급을 받아도 적어도 [[한민구]]는 이진삼, [[박찬주(군인)|박찬주]]처럼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사실 [[한민구]]의 경우 발언 자체는 비리를 옹호할 목적이 아니었지만 단어 선정이 잘못돼서 필요 이상으로 욕을 먹은 감이 없지는 않다. * 그 이후에도 2011년에는 초대를 받지도 않은 지역 [[축제]]에 간답시고 육군 [[헬리콥터]]를 사적으로 동원해서 타고 행사장에 착륙해 [[시민]]들과 군에 민폐를 끼치는 등[* [[헬기]] 제공은 국방부~~라고 쓰고 아첨꾼 후배들이 득시글대던 육방부~~가 제안하였으며 대책이 없던 이진삼 측은 이 제안을 승낙했을 뿐이긴 하나, 이건 자신이 안 타겠다고 했으면 그만이었다. 얼씨구나 하고 탄 시점에서 이미 [[똥별]]이라고 셀프인증을 한 셈이다.] 주제 모르는 [[똥별]] 마인드에 입각한 행보를 일삼다가, 결국 다음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공천에서 혼자 탈락했다.[* [[이회창]]도 안 나왔는데, 이 쪽은 당권을 잡은 [[심대평]]과의 갈등을 빚고서 ~~더러워서 안 한다.~~ 자진해서 공천을 반납했다. ~~대신 [[서상목]]이 올라오는데....~~] 그 뒤 무소속으로 나와서 한 자릿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치면서 재선에 실패했다. 이런 행보를 보이니 군대 동료들이 이 인간에게 '''하사'''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리는 게 당연하다. * 2011년 말에 [[셧다운제|게임 셧다운제]] 발의에 동참한 의원들 중 하나다.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M0V8J0D7H1C0G1C5G5Y4T3W5G1D4R6&ageFrom=20&ageTo=20|#]] == 여담 == * [[동생]]으로 역시 --[[똥별]]이자-- 예비역 육군[[소장(계급)|소장]]인 이진백[* [[형]]과는 2살 [[터울]]인 듯 하다. [[갑종장교]] 153기 출신으로, 최종 직책은 [[국군정보사령부|육군정보사령관]]이었으며, 그가 사령관으로 재임할 당시 [[오홍근 테러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대한중석 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이 있다. [[핑클]] [[이진]]의 아버지이며 이진삼은 이진의 큰아버지가 된다. * [[사위]]가 2명인데, 그 중 한명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과 [[차관]]급 직책인 [[대한민국 법무부]] 법무연수원장을 역임한 조근호 [[변호사]]([[사법고시|사시]] 23회)[* [[황교안]], [[박한철]] 등과 연수원 동기이다.]이다. * 2004년에는 부인상을 당했다. == 소속 정당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gray><tablebgcolor=#fff,#191919><rowbgcolor=gray> '''{{{#fff 소속}}}''' || '''{{{#fff 기간}}}''' || '''{{{#fff 비고}}}''' || || [include(틀:무소속)] || 1991 || 정계 입문 || || [include(틀:민주자유당)] || 1991 - 1995 || 입당[br]잠정 정계 은퇴 || || [include(틀:신한국당)] || 1995 - 1997 || 당명 변경 || || [include(틀:한나라당)] || 1997 - 2008 || 합당[*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 || || [include(틀:무소속)] || 2008 || 탈당[* [[자유선진당|신당]] 합류] || || [include(틀:자유선진당)] || 2008 - 2011 || 창당 || || [include(틀:자유선진당)] || 2011 - 2012 || 합당[* [[국민중심연합]]과 신설 합당] || || [include(틀:무소속)] || 2012 - || 탈당[* 총선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br]정계 은퇴 || == 선거 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tablealign=center><rowbgcolor=gray> {{{#ffffff 연도 }}} || {{{#ffffff 선거 종류}}} || {{{#ffffff 소속 정당}}} || {{{#ffffff 득표수 (득표율)}}} || {{{#ffffff 당선여부}}} || {{{#ffffff 비고}}}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부여군) || [[신한국당]] || 13,786 (25.03%) || 낙선 (2위) ||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부여/청양) || '''[[자유선진당]]''' || '''28,284 (55.37%)''' || '''당선 (1위)''' || [* 2012년 3월 14일 [[자유선진당]] 탈당]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부여/청양) || 무소속 || 3,115 (5.92%) || 낙선 (4위) || [* 이진삼의 육사 후배인 [[김근태(군인)|김근태]] 장군이 당선되었다.] || == 둘러보기 == [include(틀:제18대 국회의원/충청남도)] == 관련 문서 == * [[똥별]] [[분류: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분류:제18대 국회의원]][[분류:자유선진당 국회의원]][[분류:1937년 출생]][[분류:용인 이씨]][[분류:부여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성결교회 신자]] [[분류:부여고등학교 출신]][[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분류:노태우 정부/인사]][[분류:체육청소년부 장관]][[분류:군인 출신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