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1zVY2od.jpg]] [[1025년]], 동로마 제국의 강역 지도와 이즈니크의 위치. 니케아라 쓰인 곳이다. [목차] == 개요 == [[영어]]: Nicaea [nīˈsēə] [[터키어]]: İznik [이즈니크] [[라틴어]]: Nicaea[* 고전 라틴어로는 "'''니카이아'''", 이중모음의 단모음화가 일반화된 후기 라틴어로는 "'''니케아'''", 불가타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 정립된 교회 라틴어로는 이탈리아어와 비슷하게 "'''니체아'''"에 가깝게 발음한다.] [[고대 그리스어]]: Νίκαια [니카이아][* 이 발음은 기원전 5~6세기경 사용된 아티카 그리스어식이다. 코이네 시절만 해도 모음 단순화가 상당히 진행되던 시절이라 '니케아'라고 발음되었으며, 이 발음이 라틴어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스어]]: Νίκαια [니케아] [[이탈리아어]]: Nicèa [니체아] [[스페인어]]: Nicea [니쎄아] [[아나톨리아]] 반도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내륙에 있지만 도시 서쪽에 크고 아름다운 이즈니크 호수[* 면적 300㎢]를 끼고 있는 호안도시다. 터키에 속해 있는 현재는 '''이즈니크'''라고 부르나, '''니케아'''라는 명칭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 역사 == === 헬레니즘 ~ 고대 로마 제국 시기 ===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에 안티고노스 왕조를 개창한 안티고노스 1세가 기원전 316년에 자신의 이름을 따 안티고네이아(Αντιγόνεια)라는 이름으로 건설하였다. 이후 [[디아도코이]] 전쟁을 거치면서 기원전 301년에 리시마코스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리시마코스는 도시의 이름을 아내의 이름을 따 니카이아(Νίκαια)로 개칭하였다. 니카이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승리의 여신인 [[니케]](Νίκη)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라틴어에서 '승리'를 뜻하는 일반 명사이자 라틴어 문화권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잘 쓰이는 빅토리아(Victoria)라는 말과 어감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비티니아 왕국 시기에는 니코메데이아, 칼케돈과 함께 왕국의 중요 거점 도시였으며, 비티니아가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이후에도 중요한 거점으로 기능했다. === [[동로마 제국]] 시기 === 동로마 제국 시기에 이르러서도 두 번의 [[그리스도교]] [[공의회]]([[제1차 세계 공의회|1차]]와 [[제7차 세계 공의회|7차]])가 개최되었을 정도로 중심 도시로서 확고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11세기까지 니코미디아와 더불어 비티니아의 주요 도시로 군림하였고 반군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할 때 항상 점령하는 요충지였으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니케아에 면한 아스카니오스 호를 통해 [[마르마라 해]]로 진입이 가능하며, 비티니아에서 프리지아 등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향하는 관문 정도의 지리적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주목을 받는 도시는 아니었다. 이 도시가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에 [[룸 술탄국]]의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1081년]] 니키포로스 멜리시노스가 반란 중 [[튀르크]] 세력의 도움을 받으면서 니케아에 튀르크 군대를 진주시켰는데 멜리시노스가 [[알렉시오스 1세]]에게 굴복한 뒤 그냥 튀르크 군이 니케아를 낼름 장악했다. 이후 니케아는 [[룸 술탄국]]의 [[수도]]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코 앞에 있는 유서 깊은 대도시인 니케아가 아나톨리아 튀르크 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은 제국에 큰 위험으로 다가왔기에 니케아의 수복은 알렉시오스 1세의 대아나톨리아 정책에 있어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몇 차례의 수복 시도를 실패한 뒤에야 알렉시오스 황제는 1차 십자군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운 뒤 뒷공작을 통해 유서 깊은 대도시인 니케아를 무혈로 수복하였으며 이 이후부터 니케아는 재건된 제국령 아나톨리아의 주요 도시로서 군림하게 된다. 니케아는 콤니노스 3대 동안 집중적으로 요새화되었다. 성벽이 강화되고 이중 성벽이 설치되고 인근에 수 많은 자잘한 요새들이 세워져 니케아를 방어했다. 이 덕분에 [[1113년]] 룸 술탄국이 5만 4천 대군을 동원해 니케아를 포위하였을 때 수성에 성공하였고, 콤니노스 3대 시기에 인구 5만 가량의 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1204년]]에는 4차 십자군의 침공으로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포함한 서쪽 지역 영토를 빼앗기고 동로마 제국이 일시적으로 멸망하게 되는데, 이때 주요 도시인 니케아를 중심으로 동로마 제국의 망명 정권인 [[니케아 제국]]이 세워지기도 했다. 니케아는 [[126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 이후에도 서부 아나톨리아의 거점으로 남았고 [[13세기]] 말 ~ [[14세기]] 초까지 이어진 튀르크의 서부 아나톨리아 침략에도 굳건히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320년대]]에 이르면 주변이 튀르크의 손에 넘어가 고립되었고 니케아는 [[요새]]에 의존해 고립된 상황에서도 수 년을 제국의 기치 아래 버텼으나 결국 [[1331년]] 튀르크에 평화적으로 굴복하였고 서서히 [[몰락]]하게 되었다. === 오스만 제국 정복 이후 === [[1331년]], 서로마 제국 멸망 이래 1,000년 가까이 동로마 제국의 중요 거점이었던 니케아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어 이즈니크(Iznik)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한동안은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중요한 거점으로 취급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니케아가 아니라 부르사였기에 아나톨리아에서의 중요도가 차츰 감소했고 이후 수도가 [[에디르네]]와 콘스탄티니예로 이동하자 완전히 아웃 오브 안중 상태가 되었다. 더불어 오스만 제국이 급격히 성장하여 주변국들을 모조리 정복하고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더욱 떨어져서 쇠퇴하게 되었다. 이 지방의 명산품이었던 [[도자기]]도 17세기 경에 이르면 도자기를 만들만한 점토가 고갈되면서 이 또한 내륙의 퀴타햐(Kütahya)로 옮겨지게 되었다. 현대에도 인구 6만 5천 명 정도의 한산한 지방 도시로 남아 있으며 12세기 ~ 14세기 때랑 인구가 변함 없이 그대로다. 인구 280만 명의 터키 제3의 도시로 성장한 [[이즈미르]]나 인구 30만 명 정도의 그럭저럭 되는 규모로 남아있는 [[이즈미트]]에 비하면 그저 안습. [[분류:옛 수도]][[분류:터키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