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현 제주특별자치도청 고위공무원, rd1=이중환(공무원))]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측 대리인으로 활동한 법조인, rd1=이중환(법조인))] 李重煥 [[1690년]]([[숙종(조선)|숙종]] 16) ~ [[1756년]]([[영조]] 32) [목차] == 개요 ==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본관은 [[여주 이씨|여주]](驪州), 자는 휘조(輝祖), 호는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다. 이다. 삼종조부 [[이익(실학자)|성호 이익]](李瀷)[* 이중환의 고조부 이지정(李志定)의 동생 이지안(李志安)의 손자이다.]의 문인이다. == 생애 == 1690년 [[한성부]] 서부 황화방 군기사계 소정동(현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정동#s-1]])[* 종1품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5대조 이상의(李尙毅) 때부터 이 곳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상의의 후손을 '정동 이씨'라고 불렀다고 한다.[[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5005|#]]]에서 [[예조]][[참판]]을 지낸 아버지 이진휴(李震休)와 [[오(성씨)|함양 오씨]] 오상주(吳相胄)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5품 통덕랑(通德郞)의 품계를 갖고 있던 1713년([[숙종(조선)|숙종]] 39), 증광시 문과에 병과 24위로 급제하여[[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MN_6JOb_1713_007988|#]]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승문원정자, 김천도찰방, 승정원주서, 병조 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가 즉위하자 [[목호룡]]의 당여[* 이중환의 스승 [[이익(실학자)|성호 이익]]이 일단 [[근기남인]]의 주요 인물이었고, 첫째 부인은 [[사천 목씨]]로 [[목호룡]]의 일족이면서 [[사헌부]]대사헌을 지낸 목임일(睦林一)의 딸이었다.]라는 이유로 구금되어 여러 번 유배를 당하였다. 유배에서 풀려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라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조선 전역을 두루 답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전국의 인심과 풍속 및 물화의 생산지·집산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관직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보자는 동기였다. 그가 가장 좋은 곳을 선정하는 기본 관점은 인심과 산천이 좋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교류가 좋은 곳이었는데,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쓴 저서가 바로 [[택리지]]이다. --지리계의 고든 램지였다.-- 택리지에서 사농공상의 구분을 단순한 직업적 차이로만 보았다. 그리고 지리적 환경을 잘 이용할 것, 상업적 농업 등을 중시하였다. [[분류:조선의 실학자]][[분류:여주 이씨]][[분류:중구(서울) 출신 인물]][[분류:1690년 출생]][[분류:175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