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 역대 국방부장관)]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00><bgcolor=#f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00, #f00 20%, #f00 80%, #d00)" {{{#fff '''이종구의 역임 직위'''}}}}}}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 [include(틀:대한민국 역대 육군참모총장)] [include(틀:제2작전사령관)] [include(틀:국군기무사령관, 명칭=국군보안사령관)] [include(틀:역대 수도방위사령관)] }}} || ||<-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ff0000><tablewidth=4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00, #f00 20%, #f00 80%, #f00)" '''[[대한민국 국방부장관|{{{#fff 대한민국 제28대 국방부 장관}}}]][br]{{{#fff {{{+1 이종구}}}[br]李鍾九}}}'''}}}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1105271731434411.jpg|width=100%]]}}} || ||<colbgcolor=#ff0000> {{{#ffffff '''출생'''}}} || [[1935년]] [[11월 21일]] ([age(1935-11-21)]세) || || {{{#ffffff '''출생지'''}}} || [[경상북도]] [[칠곡군]] || || {{{#ffffff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ffffff '''기간'''}}} || 1958년 ~ 1990년 || || {{{#ffffff '''임관'''}}} || 육사 14기 || || {{{#ffffff '''최종계급'''}}} || 대장 || || {{{#ffffff '''최종보직'''}}} || 육군 참모총장 || || {{{#ffffff '''주요보직'''}}} || 육군 제20보병사단장[br] 육군 수도경비사령관[br] 육군 제2군사령관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군인]], [[관료]]. [[육군사관학교]] 14기로 [[하나회]]의 총무를 맡은 하나회 핵심 멤버로써 1980~1990년대 초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에서 군부의 핵심 요직들인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령관]], [[국군기무사령부/사령관|보안사령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국방장관]]을 모두 역임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하나회의 [[황태자]]'라고도 불렸다. == 생애 == [[동양척식주식회사]] 고위 간부를 지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이종구는 [[경북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14기로 졸업하였다. 이후 1966년 [[대위]] 시절 하나회가 창립되자 회장 [[전두환]] 밑에서 총무를 맡게 되는데 조직의 전체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총무 이종구는 조직의 핵심이었다. 덕분에 이종구는 [[대령]] 보직 중 최고 진급 코스인 수경사 30대대장을 물려받게 된다.[* 수경사 30대대장은 [[청와대]] 옆에 주둔하는 [[대통령]] 최근접 근위 부대로 지금도 중요하지만 늘 반란을 걱정해야 하는 군사 정권에서는 더더욱 중요했고 앞으로의 진급이 탄탄하게 보장되는 최고의 자리였다. 당장 30대대장을 역임한 인물들 중 3대 단장이 전두환, 5대 단장이 이종구, 9대 단장이 [[장세동]]이다.] 그런데 부임 중 [[윤필용]] 사건이 터지고 보안사령부의 수사 중에 하나회가 윤필용에 연루되어 적발된다.[* 하나의 설이지만 윤필용 사건은 평소 윤필용과 [[이후락]]을 질시하던 [[대통령경호처장|청와대경호실장]] [[박종규]]와 윤필용의 심복이자 하나회 최고의 실력자였던 [[손영길]](박정희의 부관 출신이라 전두환보다도 더 박정희에게 총애받았다. 하나회의 회장은 전두환이었으나 이 때까지만 해도 전두환이 손영길에 뒤쳐지고 있었다.)을 질시하던 전두환이 짜고 윤필용을 모함한 음모였다고 한다. 전두환은 손영길을 제거할 목적에서 윤필용의 실언을 [[박정희]]에게 알렸으나 그 와중에 하나회가 적발되어 버려서 본인도 군생활 최대 위기에 몰리게 된다.] 당연히 사조직은 제거해야할 대상이었고 [[강창성]] 보안사령관은 하나회를 제거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조직을 발본색원하기 시작한다. 총무인 이종구는 보안사령부 조사실로 끌려갔고 윤필용 사건에 격노한 박정희가 관련자는 철저하게 [[숙청]]하라는 명을 내렸기에 이종구는 [[군복]]을 벗고 [[죄수복]]을 입을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회는 다행히도 박종규[* 음모의 배후로 여겨지는 박종규는 이를 기반으로 이후락을 윤필용과 묶어 날리고 본인이 [[중앙정보부]]장이 되려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육영수]] 저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차지철]], [[서종철]], [[진종채]] 같은 [[영남]] 출신 장성[* 강창성의 의도를 '영남 장교 [[파벌]] 숙청'으로 간주하였고 박정희에게 달려가 영남 장교들 다 죽는다고 이를 말렸다. 이 때문에 강창성은 윤필용 사건 후에 오히려 보안사령관에서 쫓겨난다.]들의 [[쉴드]]를 받아 박정희는 윤필용 라인의 하나회[* 대표적으로 이 때 숙청된 하나회 멤버는 윤필용과 친했던 손영길, [[권익현]], [[안교덕]], [[배명국]], [[신재기]] 등이 있다.]들만 숙청하는 선에서 끝내도록 한다. 나머지 하나회 멤버들은 오히려 박정희의 암묵적인 묵인을 받으며 성장해 나갔고 이종구는 최대 위기를 피했다. 197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고 하나회는 대한민국의 [[정권]]을 탈취했다. 당시 그는 동해경비사령부 참모장으로 [[동해안]]에 있었기 때문에 반란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영남 출신에 집권자 전두환의 직계이며 집권 세력 하나회의 핵심이었던 이종구는 이제 [[한국군]]에서 가장 화려한 진급 코스를 달리게 된다. 이후 이종구는 즉각 중앙으로 컴백하여 작전 요직인 [[육군본부]] 작전처장을 맡았으며 1980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당시 [[사단장]] 중 최고 요직인 20사단장을 차지했다.[* 20사단은 당시 [[서울특별시|서울]]에 근접 배치되어 있었고 즉각적으로 서울에 출동이 가능한 근위 부대(이른바 '충정' 부대)로써 군사 정권에서는 가장 중요한 사단이었다. 하나회 정권에서 20사단은 당연히 하나회 실세들이 독점했다.] 20사단장을 마친 뒤에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 [[기무사령관]]과 더불어 군 내 3대 실세 보직인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관]]으로 영전했다. 임기 중에 수도경비사령부(지휘관 : 소장급)가 수도방위사령부(지휘관 : 중장급)로 확대 개편되어 [[중장]]으로 진급했고 임기를 마친 뒤에는 역시 최고 실세 보직인 보안사령관마저 역임한다.[* 이 코스를 먼저 [[노태우]]가 밟았는데 9사단장 - 수경사령관 - 보안사령관 순.] 각 [[계급]] 최고 보직들을 연이어 역임한 이종구는 1년 후 [[제2작전사령관]]으로 진급한다.[* 제2작전사령관은 군사령관 중 제일 한직이라 의외로 보이지만 그의 진급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맡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장으로 진급해야 되는데 빈 자리가 2군 사령관 밖에 없었던 것. 3군 사령관 [[최세창]](하나회 13기)의 임기가 1년 반, 1군 사령관 [[안필준]](하나회 12기)의 임기가 1년이나 남아 있어서 1년을 더 기다리느니 2군사령관으로 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중장 진급 때부터 14기 선두주자로써 13기 선두주자를 1년차로 추격하기 시작했던 이종구는 대장 진급 때는 13기 선두주자를 불과 6개월차로 추격하고 있었다. 공석이 발생해야 진급할 수 있는 대장 계급이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년 이상 텀을 두는 것이 기본인데 반란 [[공신]]이자 전두환의 총애를 받아 13기 선두주자로 가파르게 달리던 최세창만이 이종구 바로 앞에 있었다. 11기 선두주자 [[정호용]]과 12기 선두주자 [[박희도]]의 간격이 2년, 박희도와 최세창의 간격이 또 2년인데 이종구는 불과 최세창과 6개월차였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동기생들 중 그 누구도 이종구를 따라오지 못했는데 이미 소장, 중장 때부터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14기 2번째 대장 [[민경배]]가 이종구 진급 2년 후에야 대장으로 진급했다.] 1988년 이종구는 육군참모총장직에 오르면서 육군의 정점에 서게 되고 임기를 마친 후에는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군사 정권에서 실세라 할 수 있는 자리는 모두 꿰차며 거침없이 [[승승장구]]한 것.[* 군사 정권에서 최고 실세 보직인 육군참모총장, 기무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을 모두 역임한 인물은 한국군 [[역사]]상 이종구가 유일하며 지나친 [[권력]]을 갖게 될 것에 대한 견제를 위한 암묵적인 방침인데 이것을 깨뜨린 유일한 인물이다. [[선배]] 노태우가 수경사령관, 기무사령관까지는 모두 지냈는데 육군참모총장까지 맡을 경우 너무 힘이 쏠릴 것을 염려한 전두환계의 견제를 받아 반강제로 예편한 바 있다.] 이 때 이종구처럼 전두환계 하나회 군맥의 핵심들로 꼽히는 12기 선두주자 박희도나 13기 선두주자 최세창이 노태우 집권 이후 전두환계 군맥 정리를 위해 숙청당할 때도[* 하지만 최세창도 나중에는 노태우에게 부름을 받아서 국방부 장관으로 [[금의환향]]한다.] 이종구는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에 연거푸 오르며 계속 승승장구했다. 노태우가 자신의 직계들을 [[중용]]하기 위해 탈하나회를 가장했지만 결국 하나회에 기반한 정권이기 때문에 하나회를 버릴 수 없었던 노태우 입장에서 조직의 핵심이며 영남 군맥의 [[보스]]인 이종구까지 숙청하는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직계였지만 노태우의 경북고등학교 [[후배]]였던 이종구는 노태우에게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태우는 마찬가지로 전두환계 하나회 군맥의 중간 보스인 [[김진영(군인)|김진영]]도 끝내 버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막강한 [[파워]]로 보직을 거칠 때마다 예산이 들어가는 많은 [[사업]]들을 추진해 성공시켰다. [[제20기계화보병사단|20사단]]을 기계화 부대로 개편하고 수도경비사령부를 수도방위사령부로 확대 개편했으며 약체화되어 있던 [[제2작전사령부]]에 후방 [[군단]] 2개[* 그러나 후방에 군단을 2개씩이나 두는 것은 실용성이 적다는 비판을 받았고 2000년대 이후 국방 [[개혁]]의 일환으로 [[제9군단]]과 [[제11군단]]은 해체되었다.]를 창설하고 [[방위]]병 [[월급]]제를 도입했으며 육군본부에 밀리던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합참]]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했다. 이종구는 [[출세]] 가도를 달려왔고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마치고 [[예편]]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국방부 장관까지 맡게 되며 군인 [[경력]]의 정점에 서게 된다. 국방부 장관 시절에는 1기수 하나회 후임인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진삼]]과 극렬하게 대립했다. 노태우 정권에서 벌어진 하나회 내부의 전두환계와 노태우계의 권력 [[암투]]와도 연관이 깊은데 이종구는 비록 노태우에 나름대로 굽히기는 했지만[* 전두환계 군맥 중 노태우에게 굽히지 않았던 박희도는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끝내지도 못하고 중도 경질되었고 이후로는 [[정치권]]에도 들어오지 못하며 완전히 잊혀진 신세가 되고 만다. 특전사령관 직에서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좌천]]된 이후에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온 노태우를 대놓고 엿먹인 [[민병돈]]은 이 사건의 여파로 초기에 숙청당했다. 하지만 이종구는 전두환 라인이었음에도 경북고등학교 [[인맥]]으로 노태우와도 얽힌 덕분에 숙청을 면했다.] 어쨌든 전두환계와 영남계 하나회 군맥의 보스였다. 이에 반해 이진삼은 노태우의 직속 [[부하]] 출신으로 노태우계(이른바 9.9 인맥[* 노태우의 9공수여단장, 9사단장 시절 직계 부하들이다.])와 [[충청]]계 하나회 군맥의 보스였다. 전두환 정권에서 전두환계에 밀려 설움을 겪었던 이진삼 등 노태우계는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며 전두환계를 따돌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하나회 15기의 선두주자는 전두환계 [[고명승]]이었는데 이진삼은 1차 진급한 고명승보다 대장을 1년 반이나 늦게 단 4차 진급자였지만 노태우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고명승이 예편하고 반년이 지나서 육군참모총장을 차지했다.] 양 파벌의 보스로써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종구와 이진삼은 육군에 대한 국방부 장관의 권한 문제를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국방부 장관보다는 육군참모총장의 권한이 훨씬 컸고 군의 최고 실세는 육군참모총장이었다. 하지만 이종구는 국방부 장관이 된 후 국방 개혁의 흐름을 틈타 장관의 권한을 확대하고 육군참모총장 위에 서려했다. 이진삼과 이종구는 여러모로 [[악연]]이었는데 육군참모총장 시절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육군참모차장]]으로 이진삼을 휘하에 둔 이종구로서는 이진삼이 만만하게 보였던 것도 있었다. 1988년 [[오홍근 테러사건]] 당시 책임자였던 이진삼의 동생인 [[이진백]] 정보사령관(갑종)의 군복을 국민 [[여론]]을 구실로 벗긴 장본인이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종구였다.] [[기자]]들 앞에서도 숨기지 않고 [[막말]]까지 할만큼 극심했던 대립[* 둘이 싸운게 나름 유명해서 훗날 이진삼이 기자들한테 '내가 이종구씨랑 사이 안 좋은거 다들 알잖아요?'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은 이진삼이 임기 만료 6개월을 남기고 경질되며 이종구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으나 보름 뒤에 이종구도 국방부 장관에서 경질되며 [[무승부]]로 끝나게 된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대로 이종구를 둘 경우 지나친 파워로 제어하기 힘들 것에 대한 노태우의 견제 의도로 추측되고는 한다. 이진삼은 육군참모총장 경질 이후에도 입각하여 [[문화체육관광부|체육부]] 장관을 역임했으나 이종구는 이후 [[야인]]으로 남게 되며 화려했던 공직 경력을 마친다. 이종구의 국방부 장관 재임기는 [[북핵]] 문제가 처음 국제적인 이슈로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1991년 한 간담회에서 "북핵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군사적인 특수 조치가 요구될 것이다. 그 방식은 [[엔테베 작전]]을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발언해서 국내외적으로 한때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북핵 위협에 대한 군사적 선제 타격'을 처음 공개석상에서 거론한 사례였던 셈이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1991년 10월의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쟁]]을 막으려고 또 다른 전쟁을 감수할 수는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후 국방부 장관직을 떠나고 나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엔테베 발언'이 "북핵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국내외에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의도된 발언이었음을 인정했다. 하나회를 대숙청하고 그간 하나회가 저질렀던 [[범죄]]들을 단죄했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율곡]]사업 관련 방산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검찰]] 조사 결과 7억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감옥]]행을 앞뒀으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났다. 이 때 [[라이벌]] 이진삼 역시 정보사령관 시절 민간인 [[테러]]를 저지른 혐의로 사이좋게 구속당한 바 있다. 그런데 [[김영삼]]은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출소한 이진삼을 데려다가 [[신한국당]] 국회의원 [[공천]]까지 주면서 포섭했는데 이종구에게는 그마저도 없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부터 자신의 군맥들을 끌어 [[이명박]]을 지원해서 [[이명박 정부]] 초기 [[안보]] 라인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표적으로 [[종친]] 관계인 [[이상희(육군)|이상희]] 국방부 장관 인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재준]] 등 대부분의 [[보수]] 성향 예비역 장성들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가운데 이종구가 뜬금없이 이명박을 지지한 이유는 바로 [[이상득]] 때문. 육군사관학교 동기 중 1명이 몸이 안 좋아서 중도에 [[자퇴]]했으나 이후 절친한 친분을 유지하였는데 그가 바로 이명박 정부 최고 실세였던 이명박의 형 이상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상득은 육군사관학교 시절 절친들이 하나회 회원들이었고 정계 입문도 같은 하나회 출신 [[이춘구]]가 권유했다고 한다. == 기타 == *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의 10대 회장으로 당선되어 역임한 바 있다. * 이종구의 2남은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인데 농담으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고 할아버지가 동양척식주식회사 고위직이었다고 밝히면서 할아버지는 [[친일파]], 아버지는 방산 비리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 대중매체에서 == * [[제4공화국(드라마)]] 윤필용 사건편에서는 [[김기현(성우)|김기현]]이 이종구 역할을 맡았다. 보안사 수사관이 하나회 명부를 내놓으라 하자 진술을 이리저리 회피하며 "잃어버렸다, 없다, 배째라"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제5공화국(드라마)]]에서 김기현이 [[장태완]] 장군 역할을 맡아 하나회 반란 세력을 향해 터뜨린 분노의 일갈과 대조되는 재미가 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종구, version=77)] [[분류:하나회]][[분류: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분류:칠곡군 출신 인물]][[분류:1935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경주 이씨]][[분류:노태우 정부/인사]][[분류:전두환 정부/인사]][[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분류:국방부 장관]] [[분류:경북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