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0f0f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CD313A 30%, #CD313A 70%, #B71D27)" {{{#ffffff '''이장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성남 FC 감독)] ---- [include(틀:충칭 당다이 리판 감독)] ---- [include(틀:전남 드래곤즈 감독)] ---- [include(틀:FC 서울 감독)]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80ff><bgcolor=#cc0000> '''{{{#ffffff 광저우 헝다 역대 감독}}}''' || ||<width=30%> [[펑 웨이고]] (대행)[br] (2010) ||<width=5%> {{{+1 →}}} ||<width=30%><bgcolor=#990033> '''{{{#ffffff 이장수 [br] (2010~2012)}}}''' ||<width=5%> {{{+1 →}}} ||<width=30%> [[마르첼로 리피]] [br] (2012~2014) || ---- }}} || ----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aaaaaa><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 || ||<-3> [[파일:external/img.sportalkorea.com/SK004_20140705_640501.jp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이름 ''' }}} || {{{+1 '''이장수'''}}}[br] '''李章洙 | Lee Jang-Soo''' || ||<-2><height=40> {{{#000000,#e5e5e5 ''' 출생 ''' }}} ||[[1956년]] [[10월 15일]] ([age(1956-10-15)]세 /[br][[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안군]]) || ||<-2><height=40> {{{#000000,#e5e5e5 ''' 국적 ''' }}} ||[[대한민국]]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 ||<-2><height=40> {{{#000000,#e5e5e5 ''' 신체 ''' }}} ||[[키(신체)|키]] 178cm || ||<-2><height=40>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br][[코치(스포츠)|축구감독]] || ||<|2><width=15%><height=40> {{{#000000,#e5e5e5 ''' 소속 ''' }}} ||<width=15%><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선수 ''' }}} ||<width=70%>[[부산 아이파크/새한자동차와 대우 시절|새한자동차/대우 축구단]](1980~1981) [br] [[상주 상무|상무 축구단]](1981~1983 / ^^군복무^^) [br] [[유공 코끼리]](1983~1986) || ||<height=40> {{{#000000,#e5e5e5 ''' 지도자 ''' }}} ||[[호남대학교]](1987 / ^^코치^^) [br] [[일화 천마]](1988~1991 / ^^트레이너^^) [br] [[일화 천마]](1992~1995 / ^^코치^^) [br] [[성남 FC|천안 일화 천마]](1996) [br] [[충칭 리판]](1998~2001) [br] 칭다오 벨리에이트(2001~2003) [br] [[전남 드래곤즈]](2003~2004) [br] [[FC 서울]](2005~2006) [br] [[베이징 궈안]](2006~2009) [br] [[광저우 헝다]](2010~2012) [br] 청두 톈청(2014) [br] [[창춘 야타이]](2016~2017) || ||<-2><height=40> {{{#000000,#e5e5e5 ''' 국가대표 ''' }}} ||9경기 1골^^([[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축구인]].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창춘 야타이]] 감독을 맡았다. == 축구인 생활 == === 현역 시절 === 영남상고(現 [[부산정보고등학교]]) 시절 장신 스트라이커로 주목을 받으며 [[연세대]]에 입학했으나, [[고3]] 때 이중계약 파동[* 원래 [[중앙대]]에 [[입학]]하기로 했다가 영남상고 출신 연세대 [[선배]]의 집요한 회유에 넘어가 연세대로 진로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중앙대 선수들과 연세대 선수들이 이장수가 [[학력고사]]를 치는 시험장 앞에서 칼과 몽둥이까지 휘두르며 싸워 물의를 빚었다.]으로 인해 '''출전정지 2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아 기량이 쇠퇴했고, 결국 만 30세라는 한창 이른 나이에 [[은퇴]]를 택한다. === 지도자 시절 === ==== 대한민국에서... ==== [[중국]]에서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도 거론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평판]]이 그리 좋지 않다. 7년 동안 [[박종환]] 감독 밑에서 [[코치(스포츠)|코치]] 생활을 해서 그런지 선수 지휘에 좀 강압적인 면이 있었다 한다. 2005~2006 두 시즌간 [[FC 서울]]에서 감독 생활을 했는데, 2009 시즌까지 FC 서울의 골칫거리였던 거친 경기 스타일과 약한 멘탈은 이 감독의 지휘 아래 완성되었다. 서울빠들은 이장수가 있었으면 조광래가 발굴한 [[이청용]] 등의 유망주들이 출전하지 못해 썩었을 것이라며 잘 떠났다고 여기고 있다.[* 이청용을 윙백으로 그나마도 잠깐 써먹다 말았다.] 그러나 유일한 수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디(축구인)|아디]] 영입!! 그리고 감독 본인은 이런 지적에 대해 [[한동원]], [[고명진(축구선수)|고명진]], [[송진형]], 천제훈 등의 신예들을 기용해 컵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며 반론했다.[* 언급한 선수들 중 고명진과 송진형은 프로에서 알아주는 선수들로 성장했고, 국가대표 유니폼도 조금이나마 입어봤다. 반면 한동원은 07년 [[성남 FC|성남]] [[이적]] 이후 부상이 잦아지고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해 어느 팀에서도 중용받지 못하다 조용히 [[은퇴]]했다. 천제훈은 유망주 딱지를 떼지 못한 채 완전히 잊혀진 선수가 되었다가 2011년,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축구판을 영구히 떠났다.] ==== 중국에서.... ==== 다만, 중국에서는 다르다.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감독으로 이름이 높지만, 더불어 후술하듯이 온갖 구단 프런트와 갈등에서부터 언론과 소송 등 마음 고생도 많이 해야 했다.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충칭 룽신을 FA컵 우승으로 이끌며 충칭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활동은 2000년 KBS2 《인간극장》에서 [[https://youtu.be/Z-d5ewG90PQ|소개됐다.]] 이후 칭다오에서도 FA컵 우승을 안기고, 얼마 뒤 수도를 연고로 하는 만년 콩라인 베이징 궈안의 감독을 맡았고 리그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구단 측의 막장짓으로 인하여 짤렸다. 중국에서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까지 다 거론될 만큼 [[인지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다른 수퍼리그 팀으로 부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6개월만에 중국의 2부리그 급인 갑급 리그의 광저우 헝다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광저우 헝다는 이른바 '''중국판 [[맨체스터 시티 FC]]'''라고 부를 수 있을 팀으로,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100대 부호 중 1위를 차지한 쉬쟈인 회장이 운영하는 헝다부동산그룹이 인수한 팀이다. '안 하면 아예 안 하고 하면 최고로 한다'는 헝다부동산그룹의 기업철학으로 잡힌 지원금이 무려 '''1억 위안'''(한화로 176억 정도)으로, 구단 수뇌부는 이 감독에게 2010년 1부 리그 복귀, 2011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 2012년 아시아 정상정복을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현재 중국 최강팀들도 16강 못 뚫고 떨어지는게 [[AFC 챔피언스 리그]]라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어려운 목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2010년 들어 중국 국대로 뛰고 있는 [[정즈]], 쑨샹, [[가오린]]을 영입했다. 최소한 슈퍼리그 복귀는 쉬워 보이는 상황. 애시당초 이 팀은 성적을 못 내서 내려간 팀이 아니라 [[승부조작]]을 해서 내려간 팀이다. 그리고 2010년 10월 30일, 2부리그 우승을 하며 1부리그 승격을 확정지었고, 2011년 9월 28일에 중국 수퍼리그 우승도 확정지었다. || [[파일:lijangsu.jpg]] || || 2011년 광저우 헝다의 첫우승에서 외인선수[* 아시아 쿼터로는 [[조원희]]가 있었다.]들과 함께... 왼쪽부터 무리키, 클레오, 이장수, 파울랑, [[다리오 콘카]]. || 2012 시즌 막강한 선수 보강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K리그]] 우승팀인 [[전북 현대]]와 [[J리그]] 우승팀인 [[가시와 레이솔]]을 물리치며 상종가를 올렸으나, 의외로 [[태국]]의 [[부리람 유나이티드 FC|부리람]]에게 홈에서 패배를 당하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강에 진출하였으나, 결국 [[경질]]되었다. [[해임]] 후 국내로 돌아와서 휴식 중인데, 2012 시즌 초반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여 현재 감독이 없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성적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러브콜을 날리고 있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묻혔고, 2012 시즌 종료 후 기대에 못미친 성적을 낸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으로 부임한다는 루머도 있었으나, 이 역시 수원의 [[서정원]] 수석코치가 수원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묻혔다. 2014년 7월 중국 갑급리그(2부리그)[* 1부리그가 아니다. [[영어]]로는 리그원으로 표기하나, 1부리그는 슈퍼리그, 2부리그는 갑급, 3부리그는 을급 리그다.][* 대한민국에 대입해보면 [[K리그 챌린지]].] 청두 톈청의 감독으로 부임.[* 원래 맡을 생각은 없었지만 이 팀에서 일하고 있던 중국인 친구가 계속 부탁을 해와서 맡게 되었다.] 목표는 강등권 탈출이었고, 부임 초반 연승덕택에 놀랍게도 승격권까지 올랐지만 이미 감독부임 이전부터 이어지고있던 구단의 임금 체불 사건 등으로 인해 선수단의 사기가 저하 및 훈련 거부 사태까지 막장에 막장을 거듭하며[* 이장수 감독마저 부임하고 나서 월급을 못 받았다. 이장수 자신은 그걸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구단에 선수들 체불 월급 완전 지불을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선수들을 설득해가며 훈련, 경기에 참여시키는 등 팀과 선수들 가운데서 고생만 했다.] 결국 팀은 을급리그로 강등당했다. 이장수 감독은 [[아들]]의 [[결혼]] 관계로 한국에 돌아와 휴식 중이었는데, 팀이 2015년에 해체됐다. 중국에서 생활할 동안 제일 고생했던 때이지만 이 막장팀 감독 자리에 올랐던 걸 한 번도 후회하지는 않고 오히려 부탁을 해왔던 친구에게 팀을 일으키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는 대인배적인 소감을 남겼다. 약 1년 간 백수 생활을 하다가 2016년 5월 슈퍼리그 최하위팀인 [[창춘 야타이]]의 감독 자리에 오른다. 목표는 강등권 탈출. 그리고 마지막에 연승행진으로 스퍼트를 올려서 12위까지 올라가며 잔류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7 시즌에는 개막 후 5경기에서 1무 4패를 기록하고 해고됐다. == 인터뷰 논란 == [[2006년]] 플레이오프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서울이 0-1로 패배한 후 이장수 당시 감독이 '''심판이 고의로 오심을 저질렀다'''는 인터뷰를 한 사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이 발언이 프로연맹과 심판들의 권위를 실추시켰다고 판단하여[* 감독의 심판판정 비판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 건에서는 '고의로 오심을 했다'고 주장한 점 및 서울 구단측에서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도둑맞은 챔피언결정전 행 티켓' 운운하면서 심판판정에 과한 비난을 가했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상벌위원회를 소집하였으나 이장수 감독은 상벌위 참석을 거부하였고 결국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061123132819894|벌금 500만원을 물게 되었다]]. 그런데 심지어 이 감독은 이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중국 슈퍼리그 [[광저우 헝다]] 감독으로 취임할 때 시점으로 벌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아마 아직도 미납 상태인 것 같다. 여담으로, 이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해당 상황은 서울의 슈팅이 골인으로 인정되기 전에 [[박진섭]]이 아슬아슬하게 걷어낸 장면인데, KBS 스포츠의 축구 토크 프로그램인 <사커 플러스>에서 리플레이 분석을 한 결과 노골이 맞으며 오심이 아니라고 밝혀진 바 있다.[* 이 방송에 분석가로서 출연한 김대길 해설의원은 리플레이 분석을 마친 뒤 함께 출연한 FC 서울 관계자에게 "골이라고 해드릴까요?"라고 질문하며 출연진들은 물론 각종 축구 커뮤니티 회원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TV로 보고 있던 이장수 감독만 빼고...]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FC 서울/사건사고, version=버전)] [[분류:1956년 출생]][[분류:함안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은퇴, 이적]][[분류:상무 축구단/전역]][[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성남 FC/역대 감독]][[분류:충칭 당다이 리판/역대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역대 감독]][[분류:FC 서울/역대 감독]][[분류:베이징 궈안/역대 감독]][[분류: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역대 감독]][[분류:창춘 야타이/역대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축구감독]][[분류:1980년 데뷔]][[분류:연세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