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포천시 출신 인물]][[분류:제14대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91년) 국회의원]][[분류:여성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분류:1923년 출생]][[분류:2002년 사망]][[분류:전주 이씨 용성대군파]] [[파일:external/people.phinf.naver.net/chosun_400020761.jpg|width=150]] 李愚貞. 생몰기간: 1923년 8월 1일 ~ 2002년 5월 30일 (향년 78세) [목차] == 소개 == '''한국 [[기독교]] [[페미니즘]]의 대모'''. [[대한민국]]의 신학자, [[페미니스트]], [[인권|인권운동가]], 교수 출신 [[정치인]]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 생애 == [[경기도]] 포천군 포천면(현 [[포천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12대손이었으나 11대조 복평군이 인평대군의 동생 [[용성대군]]의 후계로 입적되어 법적으로는 용성대군의 12대손이 되었다. 이우정의 집이 바로 그 용성대군의 종가(宗家)였기에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그만큼 집안 분위기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할아버지가 [[신소설]]의 선구자인 개화지식인 [[이해조]]로, 그래도 당시로서는 의식이 깨어있는 편이었지만[* 이해조의 소설들을 보면 여성인권을 주제로 다룬 것들이 많다.] 아버지는 반대로 아주 가부장적인 인물이었고[* 의식있는 집안 어른이 있는데 그럴 수 있나 하겠지만 이해조는 이우정이 불과 5살 때 사망했다.] 이 때문에 어머니가 상당히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일찍이 봉건적 가족 제도에 반감을 품었다. 부모님을 모두 일찍 여의어서 오빠들과 상당히 힘든 시절을 보냈다. 둘째 오빠 이우경은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어 광산에서 노역을 하다 사망했고 큰 오빠는 페인트 공장을 운영했는데 역시 전쟁 때 인민군에게 압수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버지가 사주단지를 들고 와 결혼하라고 종용했다. 당시 결혼하지 않은 많은 여성들이 [[일본 제국|일제]]에 의해 [[정신대]]로 끌려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피해 숨어있는 동안 [[기독교]]를 처음 접하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게 된다. 이후 조선신학원(현 [[한신대학교]]),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엠마누엘 칼리지 과정을 졸업하였다. 조선신학원에서 진보 성향 목사인 [[김재준]]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1953년 [[한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70년까지 재직하면서 해방신학과 페미니즘을 강의하였다. 1953년 김재준 목사가 예수교장로회에서 이단으로 파문당한 뒤 세운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서기로 활동하였다. 교수직을 그만둔 뒤 서울지역 [[청계천]] 등 영세 공장단지 여공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작업장의 비위생과 사고 위험 요인을 목격했고 이후 노동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10월 유신]]에 반대하여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서명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76년 [[명동성당]]에서 3.1 민주구국선언문을 직접 낭독하였다. 이것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한국방송공사]]의 편파방송에 항의하여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에 참여하였고 1987년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양김 [[단일화]]를 성사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재야의 [[임채정]], [[박영숙]], [[김영진(1947)|김영진]] 등과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런 일련의 활동으로 1990년 [[보안사]] 사찰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900329212001&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32&pageNo=12&printNo=13859&publishType=00020|관련 기사.]] 1991년 [[평화민주당]]의 후신 신민주연합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신민주연합당에서 수석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제5번)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9월 1일부터 6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평화와 여성의 역할' 3차 토론회에 [[권영자]][* 당시 한국여성개발원 원장.], [[한명숙]][* 당시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윤정옥]][* 당시 민주당 의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과 함께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에서 상임고문을 지냈다. == 관련 문서 == * [[정치인/목록]] *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