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bgcolor=white> [[파일:이영환.jpg|width=300px]] || || 성명 ||이영환(李榮還) || || 일본식 성명 ||조야영환(朝野榮還)[* [[http://152.99.195.86/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851&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08003&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당시 판결문]]] || || 본관 ||[[이(성씨)|영천 이씨]] || || 생몰 ||[[1924년]] [[9월 9일]] ~ [[1964년]] [[8월 7일]] || || 출생지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 교촌동[br](현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인근의 문외동·창구동·성내동·문내동·과전동과 함께 [[이(성씨)|영천 이씨]] 집성촌이다.]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이영환은 1924년 9월 9일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현 영천시) 교촌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1937년과 1941년 각각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우리나라의 식량과 자원을 강제로 수탈하는 한편 징용·징병 등으로 조선인을 침략 전쟁의 일선으로 끌어가자 그는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1942년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816|김영길]](金永吉)·박기수(朴基秀) 등과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1943년 4월 동지 10여명과 함께 자신의 집에 모여 영천의 일본 [[신사(신토)|신사]][* 현 교촌동 영천향교 옆 야산 중턱에 있었다고 한다.] 방화 계획을 모의하고 영천 신사에 불을 질렀으나 마침 순찰 중이던 일본 경찰들에 의해 조기 진화되어 실패하였다. 이후 일본 국왕 및 정부요인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던 중 거사계획이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잡히기 직전에 [[만주]]로 탈출하였다. 1944년에 다시 국내로 잠입하였고 그해 5월 항일선언문을 작성하여 경상도 일대에 비밀리에 배부한 뒤 7월에는 조선인 징용자들이 탑승한 열차를 급습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해 10월에는 일본군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식수에 독약을 살포하고 일본군 병영을 방화하려다 미수에 그쳤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5212|#]] 이어 11월에는 대구헌병대에 방화하려 하였으나, 거사 직전 밀고로 인해 12월 4일 영천읍 교촌동 자택에서 체포되었다. 1945년 5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조선임시보안령 위반·방화 예비·불경죄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http://152.99.195.86/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851&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08003&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 복역하던 중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고 사후 1977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2004년 10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서부동 마현산공원에 이영환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영천시 출신 인물]][[분류:영천 이씨]][[분류:1924년 출생]][[분류:196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