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전 경북교육감, rd1=이영우(교육인), other2=소방공무원, rd2=이영우(소방공무원))]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6600><tablebgcolor=#ff6600> '''{{{#fff 이영우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bgcolor=#f7000d> '''[[1999년 한국시리즈|{{{#ffffff 1999}}}]]''' || ---- ||<table align=center> '''아시안게임 금메달''' || ||<bgcolor=#004687> '''[[김인식호/2002년|{{{#FFFFFF 2002}}}]]''' || ---- [include(틀:한화 이글스 주장)] ---- ||<-5><bgcolor=#ff6600><color=#373a3c> '''[[한화 이글스|{{{#fff 한화 이글스}}}]] {{{#fff 등번호 34번}}}''' || || [[정경훈]](1995) || → || '''이영우(1996~2004)''' || → || 마크 스미스(2005) || || 마크 스미스(2005) || → || '''이영우(2007~2010)''' || → || [[백승룡]](2011) || ||<-5><bgcolor=#ff6600><color=#373a3c> '''[[한화 이글스|{{{#fff 한화 이글스}}}]] {{{#fff 등번호 89번}}}''' || || 김호근(2007~2009) || → || '''이영우(2012~2015)''' || → || [[고바야시 세이지(1958)|고바야시 세이지]](2016~2016.4.13) || ---- }}} || ||<-2><tablealign=center> [[파일: 6F261E19-F918-4DB5-B5E6-DF339AD79389.jpg]] || || '''이름''' || 이영우(李榮雨 / Young-woo Lee) || || '''생년월일''' || [[1973년]] [[11월 27일]] ||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 '''학력''' || 서울남정초 - [[선린중학교|선린중]]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선린상고]] - [[건국대학교 야구부|건국대]][* 체육교육학과 (1992학번)] || || '''포지션''' || '''[[좌익수]]'''[* 선수생활 대부분을 주전 좌익수로 활약했다.], [[지명타자]][* 3년차인 98시즌에 1루수도 겸했지만 지명타자로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왔고, 말년엔 점점 지명타자로서 출전 빈도가 많아졌다.], [[1루수]][* 신인시절인 96시즌을 주전 1루수로서 보냈고, 그 이후로도 경기에 가끔 1루수로 나오기도 했다.], ~~[[중견수]]~~ || || '''투타''' || [[좌투좌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6년/신인드래프트|1996년 2차 2라운드 (전체 12번, 한화)]] ||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1996~2010)''' || || '''지도자''' || [[한화 이글스]] 타격코치 (2012) [br] [[한화 이글스]] 주루코치 (2013~2014) [br] [[한화 이글스]] 육성군 타격코치 (2014~2015) [br] [[kt wiz 2군]] 타격코치 (2016) || || '''응원가''' || early in the morning -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 ]][* (안!타!이영우!)최강한화 이영우~최강한화 이영우~최강한화이영우~X2~~겁나슬프다~~][* 당시 팬들의 공모로 만들어진 응원가였다.] || [목차] == 소개 == ||[[파일:external/dimg.donga.com/41820762.2.jpg|width=400]]|| ||현역 시절. 특유의 ~~농약~~미소가 인상적이다.|| ||[[파일:/image/076/2012/05/13/2012051301001058000079271_0_20120513152211.jpg]]||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그와중에 넋나간 [[고동진(야구선수)|고동진]].|| 前 [[한화 이글스]]의 야구 선수, 前 [[kt wiz]]의 2군 타격코치. [[한화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테이블 세터|1번 타자]]로 활약하며 1번 타자는 안타를 치고 도루하는 [[똑딱이]]라는 당시의 고정관념에 벗어난 선수였다. [[류지현(야구)]], [[이순철]], [[이종범]], [[장성호]], [[최익성]]과 더불어 선두타자 홈런이 많은 외야수였다. 수비는 약하지만 타석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장성호]]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였으며, 도루 능력이 특출하지 않지만 3할을 치면서 출루가 쏠쏠한 [[박한이]]와도 비슷한 파워형 1번 타자였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장성호는 98~00 해태시절 3년간 1번타자로 53개의 홈런을 쳤다. 박한이는 삼성 특유의 슬러거 타선에 가려진 숨은 중장거리 타자였으나 팀 사정상 1번 타자의 임무를 도맡아야 했다.] [[양세종]], [[노상수]], [[최계훈]]과 더불어 군 복무 후 급격하게 몰락한 선수다. 계속 꾸준했다면 장성호, [[이병규]]급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는점에서 매우 아쉬운 선수. == 선수 커리어 == === 신인 시절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선린상업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1992학번)를 졸업하고 1996년 [[한화 이글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드래프트 순위에서 알 수 있듯 아주 큰 기대를 받은 것도 아니고 기대를 안 받은 것도 아닌(...) 극히 평범한 유망주였다. 이 평범한 유망주가 데뷔 첫 해부터 1군 114경기를 출장한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69 출루율 .360 장타율 .414 8홈런 39타점 12도루'''.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신인 1년차로선 쏠쏠한 활약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활약에도 주목을 별로 못 받았다. 일단 팀 내 최고 유망주였던 1차 지명자 [[홍원기]]가 같은 해 데뷔했던 데다가, 정작 팀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신인은 이영우도 아니고 [[홍원기]]도 아닌 '''[[송지만]]'''이라는 매우 알쏭달쏭한 결과였기 때문. 게다가 한 팀에 너무 한꺼번에 신인 유망주가 [[갑툭튀]]한 탓인지 이 당시 언론과 팬들은 이 세 선수와 [[임수민]]까지 패키지로 묶어 '''신인 4인방'''이라 불렀다. 덕분에 이영우 개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거기다가 같은 해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신인 중 한 명이었던 [[박재홍(야구)|어느 빵의 황제]]가 등장하여 크보 역사상 최초의 [[30-30]]을 기록했다. 신인상은 당연히 [[송지만]]도 아니고 [[홍원기]]도 아니고 이영우도 아닌 그분에게 돌아갔다. 그야말로 [[안습]]. 어쨌든 이 당시 [[한화 이글스]]에 신인 4인방이 한꺼번에 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팀 타선이 완벽하게 [[시망]] 상태였기 때문. 이전 해인 1995년 [[한화 이글스]]에서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오직 [[장종훈]]뿐이었고, 3할 이상을 기록한 타자도 오직 [[장종훈]]뿐이라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2010, 2012년 한화의 투수진이 '''[[류현진]]과 나머지들'''이라면, 1995년 한화의 타선은 '''[[장종훈]]과 나머지들'''이었던 셈. 이로 인해 [[강병철]] 감독은 [[강병철의 양아들|젊은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출장 기회를 주었고]], 덕분에 이영우는 일찍부터 1군에서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1996년에는 부상이었던 장종훈을 대신해 1루수로 팀내에서 가장 많이 출전하였다. 이후 신인 2년차였던 1997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보이며 '''타율 .202'''로 부진, 1년 만에 주전 자리를 빼앗긴다. 그런데 이영우 대신 주전을 다시 꿰찬 [[정영규]] 역시 '''타율 .235'''를 기록하며 이영우와 별로 다를 게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신인 3년차인 1998년 [[정영규]]는 [[동봉철]]을 상대로 시즌 중 트레이드되는데, [[동봉철]] 역시 [[정영규]]와 마찬가지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결국 한화의 코너 외야수 한 자리를 당해 타율 .273의 3년차 이영우가 꿰차게 된다. 그리고 [[동봉철]]은 시즌이 끝나고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트레이드된 후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전성기 === 이듬해 신인 4년차인 1999년, 그야말로 [[요시 그란도시즌|포텐샬이 대폭발한다]]. 이 해 성적은 타율 .334 13홈런 49타점 83득점 142안타. 특히 타율은 타격 6위의 훌륭한 성적. 이듬해인 2000년에도 .318로 타격 10위를 차지했고, 장타력도 늘어나 25홈런도 쳤다. 그리고 2004년까지 '''매년 기본이 3할 1푼, 못 쳐도 2할 9푼의 정확성과 잘 치면 25홈런, 못 쳐도 15홈런의 갭파워를 선보이며 맹활약한다.'''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장성호]]와 비슷한 타입이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전성기(1999년~2004년) 동안의 시즌 평균 성적은 다음과 같다. * 129.8게임, 142.5안타, 17.7홈런, 60.2타점, 87.7득점, 14도루, 9.2도실 * 타율 .312, 출루율 .410, 장타율 .508 '''테이블세터의 [[OPS]]가 .918 이었다'''! 다만 주루플레이는 [[안습]]이었다. 팀 사정상 주로 1번, 2번 타자로 출전하면서 도루를 하긴 했는데 매년 15~20개 가량의 도루를 하면서 도루 실패도 매년 두 자리수에 가까왔다는 게 문제였다. 예를 들어, 2004년엔 '''도루 20개'''를 기록하면서 커리어하이를 찍는데, '''도루실패도 12개'''를 기록했고, 심지어 2000년엔 '''7도루 12도실'''을 기록하며 당최 도루를 왜 하는지 사람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주루능력을 선보였다. 이로 인해 당시 팬들 사이에선 이영우가 팀을 위해 도루를 안 하는게 더 낫다는 평가가 절대적이었다. 사실, 일반적으로 도루 성공율이 70% 미만이면 팀에 민폐라고 평가되는데, 이영우는 통산 112도루 81도실로 도루 성공율은 달랑 '''58%'''이다. 덧붙여서, 통산 10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타자 중 이영우보다 성공률이 낮은 타자는 '''없다'''. 수비능력을 말하자면... 신인 시절에는 [[중견수]]를 보기도 했으나 [[제이 데이비스]]가 들어온 이후로는 주욱 '''붙박이 [[좌익수]]'''였다. 이것만으로 감이 올 것이다. 혹자는 그의 수비범위가 세발자국이라고... === 몰락 ===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이 터진다. 사건 초기만 해도 당시 만 31살의 스타플레이어 이영우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당시 병역 비리가 발각된 선수 중에서 이영우가 '''만 31세'''로 최고령자였다. 그러니까 걸어다니는 커트라인이었던 셈(...). 이렇게 나이가 나이인지라 팬들 중에 이영우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사건에 '''연루된 선수 중에서 이영우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다.''' 수치를 통해 비교해보자. * 사건에 연루된 선수 중 모든 타자(1군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뛴 타자. 총15명)의 2004년까지 통산 홈런: 166개 * 이영우가 2004년까지 기록한 통산 홈런: 126개 ~~본격 15:1의 기상~~ 이 중에서 이영우 다음 2인자(...)였던 [[정성훈]]의 42홈런을 제외하면, 124:126으로 이영우가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둔다. 특히 안습인 점은 이영우는 당시 [[FA 제도|FA]]를 단 1년 앞두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이영우는 비리로 병역 면탈을 했음이 뒤늦게 밝혀져 별도의 사법적 처벌 없이 only 신검만 다시 받으라는 처분이 내려진 것이고, 그 재검을 통해 [[공익]]근무[* 이영우가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정대현(1978)|정대현]]과 마찬가지로 기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례.]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잘못한 게 맞긴 하지만 운이 지지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전까지 팀에 대한 공헌도와 FA를 코 앞에 두고 쪽박을 차게된 점(...)을 감안해 구단에서 2005년 연봉으로 2004년보다 8% 인상된 2억7천만을 안겨주었다는 것. 그야말로 베테랑에게 대인배 of 대인배[* 단, 군보류 수당이 적용되어 연봉의 25%만 지급되므로 알고 보면 대인배도 아니었다.]스러운 한화 구단다웠다. === 공익근무 후 ===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이영우는 2년간 공익근무를 마친 뒤 만 34살의 나이로 복귀한다. 올드팬들은 부활 이영우를 외치며 응원했으나, 정말로 만 34세 + 2년 공백의 타자가 예전같은 활약상을 보일 것으로 믿진 않았다. 그래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풀타임 주전은 아니지만 사실상 주전으로 매년 1군에서 80~90경기 가량 출전하며 어느정도 제 몫을 해준다. 이 3년동안의 성적은 타율 .267 출루율 .334 장타율 .378 9홈런으로 백업으론 그럭저럭 성적이긴 한데, 과거 이영우의 활약상을 아는 팬들에겐 그야말로 피눈물나는 성적. 한 마디로 말해 감각이 떨어졌다는 것. 그나마 일말의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매년 성적이 향상되고 있었다. * 2007년 - 97게임 타율 .238 출루율 .320 장타율 .313 0홈런 * 2008년 - 89게임 타율 .288 출루율 .345 장타율 .402 2홈런 * 2009년 - 93게임 타율 .277 출루율 .345 장타율 .427 7홈런 그러나 문제는 역시 수비. 전술했듯이 이영우는 붙박이 좌익수(...)일 정도로 수비능력은 낮은 편이었는데, 나이를 먹은데다 2년의 공백기까지 가졌으니... 결국 그렇잖아도 막장인 [[한화 이글스]] 수비에 막장 한 조각을 더할 뿐이었다. [[가네모토 도모아키]]처럼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공도 [[유격수]]가 중계를 해야 할 정도였으니... 복귀 후 3년 동안 [[숙녀]]어깨에서 [[소녀]]어깨를 거쳐 급기야는 [[유녀]]어깨(...)로 3단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실 복귀 이후 심각한 어깨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알고 있던 모 감독은 아예 한화와 경기할 땐 아예 좌익수 쪽으로 공을 많이 보내라고 했을 정도.] 결국 [[지명타자]] 말고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포지션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뭐, 이렇게 전부 본인 책임처럼 적어놨지만 [[김인식]] 감독의 혹사 역시 이영우가 몰락하게 된 이유중 하나. [[김인식]] 감독 항목 참조. 2007년에는 0홈런으로 마감하고 마는데, 사실 2007년 6월 28일에 기아를 상대로 역전 만루홈런을 때린 바 있다. 군 제대 후 때린 첫 홈런이자 개인통산 3번째 만루홈런이었지만, 3회 쏟아진 거짓말 같은 폭우로 노게임 된 것. 2008년 4월 11일에는 오심으로 인해 홈런 한개를 도둑맞았다. [* 결국 그해 5월 7일에 127호 홈런을 쳐냈고, 이 홈런은 126호를 친 이후 1,325일 만에 생산한 홈런이다.] == 은퇴 == 2010 시즌이 시작되고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제몫을 해주면서 팬들은 이영우가 타선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팀 상황이 ~~[[막장]]~~ 그다지 좋지 않은 가운데 [[이도형]]과 [[플래툰]]으로 지명타자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 개막 직후 달랑 3경기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하더니 갑자기 4월말까지 행방불명 * 4월 21일 복귀, 열흘동안 거의 매경기 대타로 출장하더니 5월이 되자 행방불명 이때 남긴 성적은 21타수 2안타로 달랑 '''9푼5리'''(...)이다. 그리고 이영우가 자취를 감춘 5월부터 [[한대화|입담만 좋은 팀의 신임감독]]의 [[장성호|예전 이영우와 비슷한 타입의 좌타자]]를 사달라는 징징거림이 심해졌다. 단, 한대화의 장징징(...)은 오프시즌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이영우가 더이상 통하기 어렵다는 게 확인된 5월부터 ~~구단 무시하고~~ 기자들에게 장징징을 2배로 시전하기 시작했던 것. 사실 장성호가 한화에 입단하면 이영우의 입지가 필연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둘이 서로 비슷한 타입의 좌타자인데다가 둘 다 ~~수비가 막장~~ 수비가 좋은 편이 아니라 맡을 수 있는 포지션이 [[지명타자]], [[1루수]], 가끔 눈 질끈 감고 [[좌익수]](...)로 완전히 겹치기 때문. 게다가 장성호는 이영우에 비하면 나이도 어리고 몸은 더 튼튼했고 부상으로 신음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2010년 9월 중순,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식은 9월 18일. == 은퇴 이후 == 이후 [[대전광역시]]에서 자동차 정비센터를 차리고, 선린상고 시절에 함께하였던 감독의 소개를 받아 간간히 대전고에서 인스트럭터로 학생들의 타격을 손 봐 주는 정도에서만 야구에서의 인연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결국 2012년 친정 팀 한화의 2군 타격코치로 복귀했다. 2군 코치라 아직 크게 눈에 띄는 역할이 없는데, 왠지 2군에 갔다온 타자들이 2군에 갔다온 직후 [[김경언|1주일 간 OPS 1.5를 치질 않나]], [[최진행|타율이 8푼까지 떨어졌다가 부활해서 월간 MVP급 성적을 내질 않나]], [[오선진|2년간 속 썩이던 놈이 갑자기 주전급의 성적을 내던가]]하는 등의 놀라운 변화를 단기간에나마 보여주면서 '''대체 2군에서 뭘 하고 있는거야!'''하고 팬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이정훈(1963)|악동님]] 이상으로 독하게 선수들을 다룬다는 듯. 그리고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1군과 2군 코치가 변경될 때 1군 코치로 승격되었다. 2014 시즌부터는 육성군 타격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 2015 시즌을 끝으로 [[전종화]], [[아베 오사무]] 등의 코치들과 같이 해임 통보를 받았다. ~~차라리 [[이상군]]을 [[프런트]]로 보내 버리던가 [[정민태]]를 자르지~~ 이후 [[kt wiz]]의 2군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2016년 시즌 종료 후 재계약하지 않게 되며 kt 유니폼을 벗었다. 2016년 말 부동산 사기에 연루되어 해설 자리에서 하차한 [[김병준(야구인)|김병준]]을 대신해, 2017년 시즌부터 김연선 아나운서와 함께 [[KBS대전방송총국]]의 라디오 야구 중계 해설을 맡게 되었다. 더불어 [[KBS청주방송총국]]에서 이해수 아나운서와 청주구장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 중계방송 해설도 맡고 있다. 2018년 2월경에 [[옥천군]]에 새로 생긴 리틀 야구단에서 총괄 인스트럭터를 맡게 됐다. 2018년 중순에 대전에 한 유소년야구단을 차리게된다. == 여담 == * 일세를 풍미한 공격형 [[테이블 세터|톱타자]]임에도 주목을 덜 받은 편이다. 그 까닭은 '''"비인기 지방구단 소속"인 데다가 "하필이면 50홈런이 빵빵 터지던 시대의 중거리형 타자"에 "하필이면 전성기가 프로야구 암흑기"'''라는 비인기 [[3종신기]]를 갖췄기 때문. * 소집 해제되어 복귀한 후에는 [[한국프로야구]]가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었으나 팀도 막장, 본인도 막장인 탓에 WBC 이후 유입된 팬들에겐 낯선 아저씨가 되었다(...). * 통산 1,275안타로 크보 역대 37위. 순위권이라 하기 민망한 순위이지만 공익 복무로 끌려가기 직전까지 보였던 안타 생산 능력만 놓고 보면 1,700안타도 가능[* 1,700안타는 역대 5위권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비슷한 타입의 장성호는 2010년까지 1,795안타를 기록하고 2년 후인 2012년 2,000안타 고지를 점령했다.]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통산 홈런과 도루를 보면 135홈런, 112도루인데, 공익복무를 끌려가기 직전까지 보였던 홈런과 도루능력을 놓고 보면 150홈런과 150도루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야만없]]~~ *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건 안타를 치건 잘 웃는 편이다. 타석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이래 왔다고. 타자판 [[김광현]]. 이 때문에 '''농민미소''' 혹은 '''농약미소'''란 별명도 있다. * 은퇴 직전에도 언론이 무관심한 편이었다.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양준혁]], [[구대성]]이 은퇴하는 바람에~~ 은퇴를 발표한 9월 14일 이후 9월 18일 은퇴식까지 인터뷰 기사가 '''하나도 없었다.''' 기자들이 구단홍보자료만으로 대충 때웠다. 결국 은퇴일에 일문일답 형식의 인터뷰 하나 달랑 나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38608|#]] '''그리고 이 날 후배들은 11:1로 깨지며 선배가 가는 마지막 길에 거하게 똥칠을 한다.''' '''엔하위키 역시 무관심했다.'''[* 이 항목이 생성된 2010년은 '''[[리그베다 위키]]도 아닌 [[엔하위키]] 시절이다.'''] 이 문서는 __은퇴 사흘 전__인 [[2010년]] [[9월 15일]]에서야 작성되기 시작했다(...). ~~온갖 듣보잡들도 따로 항목이 있는데!~~[* 원 작성자가 이런 문구를 적어넣은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바로 이 때가 '''[[야빠]]들이 위키에 진출하여 온갖 야구 관련 항목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B급, C급 선수들의 항목만 생성되는 와중에 나름 레전드였던 이영우의 항목은 아예 생성조차 되지 않았던 것.] * 이영우가 은퇴하면서 [[한화 이글스]]에서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현장에서 맛 본 선수는 없게 되었다.[* [[신경현]]과 [[박정진]] 정도가 당시 선수로 뛰고 있었지만 2군에서 기고 있던 탓에 우승 멤버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상열(야구)|이상열]]도 팀에 없다. --'에'에 '이'를 넣는 게 더 맞겠지만-- * 결국 일세를 풍미할 수 있었던 리드오프 장타자가 [[젊은날의 과오]]로 씁쓸하게 끝난 케이스가 됐다. 소리없이 강했던 [[김한수]]처럼 될 수 있었지만 [[서용빈]]과 같은 엔딩이다. * 사람좋은 외모와 달리 꽤 성격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농구계의 [[서장훈|국보급 센터]]를 배출시킨 일등공신(?)이다. 중학교 야구부 시절 후배들을 매섭게 갈구곤 했는데 이영우의 1년 후배였던 [[서장훈]]이 이를 견디다 못해 전학을 가고 농구를 시작한 것. 이영우의 [[똥군기]]가 아니었더라면 서장훈은 농구선수가 아닌 야구선수로 기억됐을지도...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706/sp2007061222593858130.htm|초교땐 야구… 군기 잡는 중학교 선배 싫어 농구로]] * [[재비어 스크럭스|응원가가 매우 슬픈 분위기]]다(...). == 연도별 주요 성적 == ||<-15><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ff6600>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bgcolor=#dcdcdc,#222222> 1996 ||<|15> [[한화 이글스]] || 114 || 353 || .269 || 95 || 21 || 3 || 8 || 39 || 59 || 12 || 51 || .414 || .360 || || 1997 || 31 || 109 || .202 || 22 || 6 || 0 || 3 || 12 || 12 || 2 || 6 || .339 || .241 || ||<bgcolor=#dcdcdc,#222222> 1998 || 97 || 297 || .273 || 81 || 19 || 1 || 9 || 31 || 34 || 6 || 38 || .434 || .354 || || 1999 || 128 || 425 || .334 || 142 || '''33'''[br](5위) || 4 || 13 || 49 || 83 || 16 || 49 || .522 || .399 || ||<bgcolor=#dcdcdc,#222222> 2000 || 128 || 478 || .318 || 152 || '''{{{#red,#ff0000 36}}}'''[br](1위) || '''{{{#red,#ff0000 5}}}'''[br](1위) || 25 || 64 || 91 || 7 || 60 || .571 || .392 || || 2001 || 126 || 381 || .286 || 109 || 25 || 3 || 15 || 65 || 72 || 10 || 62 || .486 || .385 || ||<bgcolor=#dcdcdc,#222222> 2002 || 133 || 476 || .315 || 150 || 26 || 1 || 24 || 52 || '''96'''[br](3위) || 13 || 81 || .525 || '''.415'''[br](3위) || || 2003 || 133 || 498 || .297 || 148 || 28 || 4 || 16 || 71 || 90 || 18 || 86 || .466 || .399 || ||<bgcolor=#dcdcdc,#222222> 2004 || 131 || 483 || .319 || '''154'''[br](5위) || '''31'''[br](2위) || 3 || 13 || 61 || '''94'''[br](4위) || 20 || 81 || .476 || '''.415'''[br](5위) || || 2005 ||<|2><-13>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 || 2006 || ||<bgcolor=#dcdcdc,#222222> 2007 || 97 || 294 || .238 || 70 || 14 || 4 || 0 || 28 || 31 || 4 || 37 || .313 || .320 || || 2008 || 89 || 271 || .288 || 78 || 21 || 2 || 2 || 27 || 41 || 2 || 27 || .402 || .347 || ||<bgcolor=#dcdcdc,#222222> 2009 || 93 || 260 || .277 || 72 || 12 || 3 || 7 || 35 || 32 || 2 || 28 || .427 || .345 || ||2010|| 12 || 21 || .095 || 2 || 0 || 0 || 0 || 0 || 0 || 0 || 0 || .095 || .095 || ||<-2><rowcolor=#373a3c><rowbgcolor=#ffff99> '''[[KBO]] 통산[br](13시즌)''' || 1312 || 4346 || .293 || 1275 || 272 || 33 || 135 || 533 || 735 || 112 || 606 || .464 || .378 || == 관련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출생]][[분류:1996년 데뷔]][[분류:2010년 은퇴]][[분류:외야수]][[분류:지명타자]][[분류:좌투좌타]][[분류:한화 이글스 은퇴/이적]][[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원클럽맨]][[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출신]][[분류:건국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