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패 존령(조선))]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972000><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ffd400 '''목조의 부친'''[br]{{{+1 '''先祖考 | 선조고'''}}}}}}}}}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0px" [[파일:준경묘.jpg|width=100%]]}}}{{{-2 이양무의 묘 준경묘(濬慶墓)}}} || ||<width=70><:><#bf1400> {{{#ffd400 '''존호'''}}} ||<(> '''[[선조#s-3|선조고고려장군존령]][br](先祖考高麗將軍尊靈)''' || ||<:><#bf1400> {{{#ffd400 '''관직'''}}} ||<(> 장군(將軍) || ||<:><#bf1400> {{{#ffd400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bf1400> {{{#ffd400 '''휘'''}}} ||<(> 양무(陽茂) || ||<:><#bf1400> {{{#ffd400 '''출생'''}}} ||<(> [[미상]] || ||<:><#bf1400> {{{#ffd400 '''사망'''}}} ||<(> [[1231년]] || ||<:><#bf1400> {{{#ffd400 '''능호'''}}} ||<(> [[준경묘]](濬慶墓) || ||<:><#bf1400> {{{#ffd400 '''부친'''}}} ||<(> [[이린(고려)|이린]] || ||<:><#bf1400> {{{#ffd400 '''부인'''}}} ||<(> 선조비(先祖妣) || [목차] [clearfix] == 개요 == {{{+1 李陽茂}}} ? ~ 1231년([[고종(고려)|고려 고종]] 18년) [[고려]]의 [[장군]]. 고려 무신정권 집권자 [[이의방]]의 동생 [[이린(고려)|이린]]의 아들, 고려 문신 [[문극겸]]의 외손자, [[조선]] 추존왕 [[이안사|목조]]의 아버지, 조선 [[태조(조선)|태조]]의 5대조이다. 그의 큰아버지들 이준의, [[이의방]] 2명 전부 역적으로 처형당했고 그의 아버지 이린은 이준의, 이의방 사망 이후의 기록이 부실하여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는데,[* 여러 기록 탓에 이의방이 몰락한 1174년에 형제들과 같이 암살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이린(고려)#s-2.1|이린]] 항목 참조.] 이양무는 살아남아서 장군까지 되었다. 아마 그의 숙부 이거가 고려 고종에게 궤장까지 받을 정도로 나라에 헌신한 충신이라는 점이 그가 역적들의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장군으로 승진할 수 있게한 요인이 아닌가 싶다. 왕조의 개창자가 자신의 선조(先祖)를 [[추존]]할 때, 4대조까지만 추존하기에 이양무는 왕으로 추존되지 않았다. 대신 [[고종(대한제국)|고종]]황제가 1899년 이양무의 묘소를 수축, 장식하고 묘호(墓號; 무덤(墓)의 이름)를 올려 예를 갖추었다. == 묘소 == [[파일:준경묘.jpg]] 준경묘. 높임의 의미를 담아 준경릉(濬慶陵)이라 칭하기도 한다. 본래 이양무는 [[전주]]에 살았는데 삼척 땅에 묻힌 이유는 그의 아들 [[이안사|조선 목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었다. 이 부분은 조선 목조 항목을 참조. 1899년[* 고종 36년.] [[고종(대한제국)|대한제국 고종]]이 그동안 위치를 알 수 없었던 황실의 뿌리 이양무의 묘와 거기에서 약 4km 떨어진 하사전리에서 부인 이씨[* 삼척 이씨(李氏).]의 묘를 찾았고 그들의 묘역을 정비하여 예를 갖추고 이양무의 묘를 준경묘(濬慶墓), 부인 삼척 이씨의 묘를 영경묘(永慶墓)로 올림으로써 이양무의 무덤은 준경묘로 불리게 되었다. 목조와 관련해서 한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百牛金棺)의 명당 터에 아버지 양무를 안장하므로써 5대에 이르러 [[태조(조선)|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준경묘 일대의 송림을 황장목이라 하는데, 이 황장목은 [[경복궁]]을 고칠 때 자재로 사용한 적이 있다. [[분류:고려의 인물]] [[분류:전주시 출신 인물]] [[분류:생년 미상]] [[분류:1231년 사망]] [[분류:전주 이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