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음이의어/ㅇ]] [[분류:이조전랑]] [[분류:조선의 성리학자]] [[분류:덕수 이씨]] [목차] == 옮겨심는다는 뜻의 한자어 移植 == 본래는 [[식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다는 뜻을 가진 단어. 이 뜻에서 파생되어 식물 이외의 문화 매체 등을 원래 발생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져가 퍼트리는 것도 이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장기 이식이나 소프트웨어 이식 역시 이 뜻에서 파생된 것. === 의학적인 의미의 이식 === [[장기이식]] 문서 참고. === [[소프트웨어]]의 이식 === [[포팅]](porting) 문서 참고. == 이탈리아 요리의 한자식 표기 == 伊食이라고 쓴다. [[이탈리아 요리]] 문서 참고. == 조선의 문장가 이식 == 이식(李植, 1584년∼1647년) 자는 여고, 호는 택당, 본관은 덕수이다. [[광해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이조좌랑이 되었다. 그 후 부제학·대제학·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1642년 [[김상헌(조선)|김상헌]] 등과 함께 청과의 화의를 반대하였다 하여 [[선양]]에 잡혀 갔다가 돌아올 때, 다시 [[의주]]에서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돌아왔다. 그는 또한 [[장유(조선)|장유]]와 더불어 당대 일류의 문장가였으며, [[이정구#s-3]]·신흠·장유와 더불어 조선중기 문장 4대가 월상계택(月象谿)으로 꼽혔다. 이는 네 명의 호를 딴 것으로, 이식은 택(澤)로 네 번째에 든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당송팔대가]]의 고문(古文)을 모범으로 삼은 점, 주자학적인 사고가 규범이 되고 있는 점, 이들 모두가 화려한 가문 출신이며 관료로서 출세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선조실록> 수정 작업을 전담하였다. 이식은 상당히 복고적인 문장가였다. 그 [[성리학]]적 결벽은 문장뿐만 아니라 자해서인 <초학자훈증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식은 [[주자(철학자)|주자]]의 제자인 진순의 <북계자의>를 참고하여 <초학자훈증집>을 저술하였는데, 진순이 '道'항목을 설명할 때 노장(老壯) 사상을 곁들여 설명한 반면 이식은 '도'를 설명할 때 [[노자]]의 노자도 꺼내지 않았다. 당시 조선에서는 양명좌파의 문장이 인기를 끌었는데, 중국의 양명좌파 문인들이 거친 행동을 한 것을 듣고는 조선의 문인들까지 이에 경도될까봐 걱정한 택당이 일부러 이런 식의 복고적 노선을 취했다는 주장이 있다. 죽은 뒤 [[숙종(조선)|숙종]] 12년(1686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로 문정(文靖)을 받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sa_11207018_002|#]] 저서로 <택당집>, <초학자훈증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