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時言 (? ~ 1624년) == 개요 ==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 생애 == [[1589년]]에 [[이산해]]의 천거로 오위(五衛) 사용(司勇) 에 등용되었으며 이후 사과에 오르고 1592년에 상호군으로 승진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황해좌방어사, 충청도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경주 전투]]에서 활약함으로서 가선대부로 올라갔다. 1594년에는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고 1596년에는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였다. 명군의 도산전투를 지켜보면서, 몽골용병 달자에게 머리가 깨져 도망가는 왜군을 보고 '일본군이 마치 조선군이 도망가듯이 도망가는구나'(麻貴所率㺚子二百餘名,皆持環鞭,亂打如雨疾雷,不及掩耳,銃筒亦不暇放.賊兵之走,亦如我國人之走)' 하고 자조적으로 평가한적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순신]]의 후임으로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 이어서 경상우수사와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1605년에는 함경도순변사, 1610년에는 공조판서에 올랐다. 1618년에 전흥부원군에 봉해졌고 훈련대장도 지냈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1624년에 [[이괄의 난]]에 협조할 우려가 있다는 누명이 씌워져 처형되었다. == 대중 매체에서 == [[정기룡(소설)]]에서는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며 타 장수의 공적을 탐하여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분류:조선군/군인]] [[분류:임진왜란/군인]] [[분류:생년 미상]][[분류:1624년 사망]] [[분류:조선의 사형수]]